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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25

INSP - 현금이 사라진 자리, 디지털 불평등이 오다

2024.07.26

현금 없이 결제하는 사회가 되면서 우리는 공과금을 내고 물건값을 지불할 때 점점 더 앱에 의존한다. 그렇다면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빅이슈》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전한다.


글. 일라이자 얀선 (Eliza Janssen) | 한글번역. 최수연 | 기사제공. 《빅이슈》 오스트레일리아

“현금으로 하시겠어요, 카드로 하시겠어요?” 다른 결제 수단이 등장하면서 점점 더 들을 일이 없는 질문이다. 현금 없는 결제는 물류 이동을 줄이고 환경 비용을 낮추기 때문에 환경 친화적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편리하고 투명하고 더 안전하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었을 당시 빅이슈 판매원뿐 아니라, 모두가 현금을 주고받는 일이 갑자기 불편해졌고 때로는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이후 많은 곳에서 더는 현금을 받지 않고 대중교통과 승차 공유 앱 같은 서비스에서는 고객 온라인 계좌에서 돈을 차감하는 방식으로 결제한다.

하지만 호주 통계자료를 보면 이런 변화는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오히려 불편함을 초래한다. 디지털 결제는 연령이 높거나 언어 소통이 원활하지 않거나 글을 읽고 쓰기 어려운 사람이 하기에는 어렵다. 디지털 서비스와 접점이 거의 없는 사람은 호주 인구 9% 이상으로 집계되고 이는 240만 명은 인터넷 사용이 어렵거나 사용할 줄 모른다는 뜻이다.

현금이 사라지고 있다

빅이슈 판매원으로 19년 동안 일하고 있는 프레드(Fred)는, 현금 없는 경제로 가는 변화가 고민스럽다. “은행에 가서 직원과 얘기하고 나서 돈이 거래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뭐가 어떻게 되는지 내가 이해할 수 있고, 지금 내가 얼마를 가졌는지 알 수 있으니까요.”라고 말한다.

프레드는 호주 4대 은행* 중 한곳과 40년 동안 거래했는데, 글을 읽고 쓰는 일이 쉽지 않고 시력까지 좋지 않아 그동안 은행에서 도움을 받았다. “내가 글자를 쓸 수는 있는데 읽는 건 잘 못해요. 휴대전화 쓰는 방법도 잘 모르고요. 차라리 은행에 직접 가서 얘기하고 싶은 겁니다. 나한테는 그게 훨씬 쉽거든요. 나는 휴대전화도, 컴퓨터도 모릅니다.”

2007년 호주 전역의 결제 방식에서 70%를 차지했던 현금은 2022년 13%로 급감했다. APRA** 보고에 따르면 호주 은행 지점 중 11%가 2022년 6월에서 2023년 사이에 문을 닫았다. 그중 절반은 지방에 있던 은행이었기 때문에 그 지역 주민들은 없어진 은행 대신 지역 우체국 등 금융 거래가 가능한 다른 곳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현금 취급 회사인 아마가드(Armaguard)도 현금 사용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파산 위기에 처했다고 밝혔다.

디지털 거래 뒤에 가려진 사람들

퍼스(Perth) 지역 중심으로 활동하는 빅이슈 판매원 빌(Bill)은 뱅크웨스트(Bankwest) 은행이 디지털화되면서 10월까지 서호주 지역에 있는 은행 지점을 닫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변해가는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디지털 문맹을 걱정했다. 뇌성마비 때문에 휠체어 생활을 하는 빌은 은행 같은 기관이 하는 결정을 보면서 자신이 소외된다고 느낀다. “정부는 소외 계층에 있는 사람들이 가만히 앉아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조용히 살기를 바라나 봅니다.”

로열 멜버른 공과대학교 부교수이자 금융학자인 에인절 종(Angel Zhong) 박사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호주 내 현금 사용 변화를 연구했고 2030년까지 호주는 현금 없는 사회가 된다고 예측했다. “현금 없는 사회라는 말은 현금을 쓸 일이 없는 사회를 말합니다. 지갑에 있는 현금이 어느 날 아무 가치가 없어진다는 뜻은 아니고요. 게다가 하루아침에 현금 없는 사회로 넘어갈 수는 없고 소비자 선호에 따라 단계적으로 변화가 생길 겁니다.” 디지털 리터러시를 높이려는 지역 단체가 등장해 변화를 주도할 수도 있다고 본다. “정부 기관과 지역 단체는 이런 변화에 따라 누가 취약계층이 될지 그리고 취약한 사회구성원을 어떻게 지원할지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디지털의 발전, 그럼에도 현금은 필요하다

2023년 오스트레일리아 준비은행(Reserve Bank of Australia)에서 진행한 연구에서는, 현금 사용이 어려워진다면 응답자 25% 이상이 ‘크게 불편함’ 또는 ‘곤란함’을 겪을 것으로 조사되었다. 인구 통계에서 현금 사용이 급격한 감소세를 보이고 있지만 65세 이상 노년층은 여전히 현금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연령층으로 확인되었다.

종 박사는 이렇게 설명한다. “디지털 리터러시와 연령은 반비례합니다. 연령대가 높으면 어떻게 앱을 깔고 어떻게 휴대전화에 카드를 등록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그렇기 때문에 현금 없는 사회는, 획기적인 결제 방식이라 하더라도 디지털 문맹까지 전체를 포용하는 형태가 되지는 못할 것으로 봅니다.”

현재 60대인 프레드는 현금을 찾기 위해 기계에 매달려야 하는 상황이 두렵다. “ATM에 도와주는 사람이 있거나 다른 방법이라도 있어서 나 같은 사람에게 안내를 해줘야 해요. 은행에서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은행은 기술을 잘 모르는 사람한테 너무 많은 걸 요구하고 있어요. 왜 그런 식으로 사람을 괴롭히는 건지. 나 같은 사람이 꽤 많을 텐데 돈을 찾을 수도 없을 겁니다.”

현금을 사용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사생활 우려와 보안 관련 불안이다. 그 예로, 가정 폭력을 겪은 사람은 학대범에게 은행 기록을 감시당하거나 추적당하지 않도록 현금 사용이 필수다. 한편 기상 이변이 자주 발생하면서 현금 없는 상황에 취약점이 예상된다. 산불과 같은 기후 이변 피해가 생겼을 때 복구 기간이 길어지면서 사람들이 각자 계좌에 바로 접근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2022년 리즈모어(Lismore) 홍수 당시 전자 결제 시스템이 망가져 이재민은 식품이나 연료 같은 생활필수품을 살 수 없었다.

그리고 현금 없는 사회로 전환된다면 홈리스만큼 영향을 많이 받는 이들도 없다. 종 박사는 “전체 호주 사람 중 40%는 지갑 없이 외출하는 데 불편함이 없습니다. 즉 현금 거래에 크게 의존하는 홈리스 또는 거리 공연을 하는 사람에게는 이 변화의 영향이 클 수밖에 없겠죠.”라고 말한다.

누군가에겐 너무 어려운 디지털 결제

디지털 결제로 전환하는 움직임에 호주 빅이슈 판매원도 동참한다. 약 절반 정도는 비접촉식***으로 보안 디지털 결제가 가능하고 열 명 중 한 명은 Pay ID****로만 결제를 받는다. 빌은 판매 절반을 현금 없는 결제 방식으로 받고 있다. 물론 비접촉식으로 판매하면 실제 계좌에 입금되기까지 하루 정도가 소요되기 때문에 가끔은 바로 받을 수 있는 현금이 좋을 때도 있지만, 디지털 결제가 “훨씬 쉽긴 합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프레드에게는 이것이 단순하지 않다. 비즈니스 주체가 어떤 결제 방식을 선택하든 법에서는 문제가 없다. 고객층이 디지털 결제를 명확하게 선호한다면 사업주는 현금 거래를 계속 거절할 수 있다는 의미다. 프레드는 이렇게 호소한다. “나는 물건을 살 때 직접 돈으로 사는 게 좋습니다. 그게 확실히 간단하죠. 정부는 기술적인 접근을 어려워하는 사람도 생각해야 합니다. 본인들에게 편리한 방법 말고, 읽고 쓰기 어려운 우리 같은 사람에게 편리한 방법을 생각해줘야 해요.”

호주가 정말 현금 없는 미래로 간다면 더 환경 친화적이 되긴 할 것이다. 다만 그렇게 되려면 디지털 전환이라는 변화에 취약하거나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가려고 노력해야 한다. 프레드는 큰 은행들이 더 폭넓은 태도로 소외 계층을 더 열심히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도 생각해줄 수 있지 않나요. 은행은 나처럼 기술을 잘 모르는 사람을 그냥 차단하려고만 하는데, 잘못하는 겁니다. 이런 변화를 힘들어하는 사람을 신경 쓰지 않고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려 하지도 않아요.”

빅이슈코리아는 INSP(International Network of Street Papers)의 회원으로서 전 세계의 뉴스를 전합니다.

*

ANZ(Australia and New Zealand Banking Group), NAB(National Australia Bank), Westpac, Commonwealth Bank

**

Australian Prudential Regulation Authority. 호주 금융기관에 대한 건전성 감독기구

***

tap and go. 교통카드처럼 NFC 지원 단말기에 태깅하기만 하면 결제되는 방식

****

고객 전화번호 또는 이메일 주소 등 간단 정보만으로 계좌이체가 가능한 간편 결제 시스템

*****

한국 《빅이슈》 역시 2013년 6월부터 카드 결제로 거래가 가능한 판매지를 늘려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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