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상단으로이동
신간 · 과월호 홈 / 매거진 / 신간 · 과월호
링크복사
링크가 복사되었습니다.
글자확대
글자축소

No.326 스페셜

책 읽기라는 취향에 대하여 - 독서 메일링 운영자 주황

2024.08.07

당신이 맘에 드는 책을 고르는 데 걸리는 시간은? 또 책을 펼치고 넘기는 페이지의 수는? 책 선정과 읽기 모두 어렵게 느껴진다면, 사람들에게 책의 매력을 한껏 자랑하고 좋은 책을 추천하는 독서 메일링 ‘주황씨네’ 운영자 주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온라인 서점부터 도서관까지, 곳곳을 탐색한 그의 책 추천을 따라 독서를 하는 팬들이 있을 정도. 그는 책 읽기가 모두에게 유의미하진 않을 수 있지만, 자신에게는 의미가 있었다고 말한다.


글. 황소연 | 사진제공. 주황

진행하고 있는 독서 메일링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주황씨네’라는 독서 메일링을 운영하고 있는 주황입니다. 주황씨네는 두 가지 의미를 품고 있어요. ‘주황CINE’, 사실 저는 책보다 영화를 훨씬 많이 보는 사람이라서 언젠가 메일링에서 영화 이야기도 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 이런 이름을 붙였습니다. ‘주황의 집’, ‘주황 씨네’. 제가 산 책, 제가 재밌게 읽은 책 등 저의 독서 경험을 기반으로 메일링을 채워가고 있어 앞으로 메일이 차곡차곡 쌓여서 모이면 저의 책장 내지는 집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해서 붙여본 이름입니다.

주요 메일링 콘텐츠는 다섯 개입니다. ‘언박싱!’에선 온라인 서점에서 구매한 책을 소개합니다. 책을 사고는 싶은데 어떤 책을 사야 할지 모르겠다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더라고요. 제가 책을 고르는 과정이 어쩌면 그런 분들에게 조금은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실 제가 책을 고르는 이유도 별거 없긴 하지만요.(웃음) ‘오늘의 도서관 수확’에선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을 소개해요.

시를 소개하는 ‘시 읽어주는 주황’, 밑줄 그은 문장을 소개하는 ‘문장 수집가’, 최근 읽은 책 중 좋은 책이라고 자부하는 책들만 추려 간단한 후기와 함께 소개하는 ‘본격 책추천’이 있어요. 이외에도 어떤 콘텐츠를 추가하면 좋을지 계속 고민하고 있습니다. 저번 메일링에서는 ‘2024 서울국제도서전’에 다녀온 후기를 남기기도 했어요.

책을 추천하는 플랫폼이나 채널이 여러 가지인데, 독서 메일링을 시작하게 계기가 궁금합니다. 원래 추천을 좋아하시는 편이셨나요?

넷플릭스에서 무엇을 볼지 고르다 결국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앱을 종료하듯, 저도 책을 읽는 시간보다 어떤 책을 읽거나 구매할지 고르는 시간이 더 긴, 일명 책 디깅(digging)을 즐기는 사람인데요. 그러다 보니 장바구니에 담긴 책이 점점 많아지고, 또 장바구니에 담아놓은 책이 계속 아른거려 그걸 구매하게 되는 경우가 잦아지더라고요. 사놓은 뒤로는 책장에 꽂아놓다가, 어느 날 문득 책장을 바라보면 어떤 책에 시선이 확 꽂힐 때가 있어요. 그러면 읽게 되죠. 읽은 후에는 이 책이 나의 예상만큼 재밌었는지부터 이 독서 경험이 나에게 무엇을 주었는지 등을 생각하며 곱씹어요.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다 보니 어느새 제 또래의 평균보다 책을 많이 사고, 많이 읽는 사람이 되었더라고요.

제가 ‘책디깅’을 하기 시작한 계기는 어쩌면 지적 허영 때문인 거 같아요. 책 읽는 사람이 왠지 멋있어 보였고 저도 그렇게 되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추구미랄까요? ‘북튜브’ 시장이 그리 활성화되지 않았을 때부터 해당 시장을 주목하고 있던 사람 중 한 명이기도 해요. 북튜브 시장을 선도한 채널 중 하나인 ‘겨울서점’의 초창기 구독자이기도 하답니다. 생각해보니 저는 원래부터 남에게 무언가를 추천하는 일을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었네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친구들에게 음악 추천을 자주 했는데, SNS에서도 저는 매일 추천을 멈추지 않았어요. 추천이 반복되니 그 책을 따라 읽어주는 익명의 독자들이 나타나더라고요. 제가 추천한 책이 재밌다고, 다른 책도 추천해달라고 말해주시는데 왠지 뿌듯했습니다. 그래서 책을 추천하는 콘텐츠를 본격적으로 기획하게 됐어요.

읽기 루틴이 궁금합니다. 사용하시는 소품이나 독서 기록 등에 대한 이야기도 좋습니다.

특별한 루틴은 없고, 앞서 언급했듯 저는 사놓고도 바로바로 읽는 성격이 아니고 책장에 방치한 채 숙성시키는 기간을 가지는데요. 이런 제가 빌린 책을 반납 기한에 맞춰 제때 읽을 리가 없겠죠? 요새는 이런 걸 ‘책 산책’, ‘책 임보’ 등으로 부르더라고요.(웃음) 그래서 보통 구매해요. 제 책이니까 밑줄도 그으면서 자유롭게 마음대로 읽을 수가 있죠. 글을 쓸 때 서로 다른 책을 참고하기 위한 2단 독서대와 외출할 때 쓰는 휴대용 독서대를 구비했어요.

주로 책을 구입하는 채널과 읽는 장소는요?

완전 집순이라 온라인 서점, 특히 알라딘을 많이 이용해요. ‘오타쿠들의 서점’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서점이죠. 그만큼 큐레이팅이 잘되어 있고, 추천 알고리즘도 활성화되어 있더라고요. 책 읽는 장소는 당연히 집입니다. 책상이나 식탁에서 읽는 경우는 정말 가끔이고 보통 침대에서 읽습니다. 누워서 읽는 게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읽고 계신 책도 궁금해요.

영이 작가의 〈호르몬 일지〉(민음사 펴냄, 2024)를 읽고 있어요. 동시대성을 가진 연구들을 쉽게 풀어 전달하려는 기획 의도를 가진 민음사의 인문총서 시리즈인 ‘탐구’에 속한 책이에요. 〈호르몬 일지〉는 트랜스젠더 작가의 호르몬제 투약기를 담고 있습니다. 해당 책이 ‘일기들’이라는 기획으로 출간되었길래 에세이인 줄 알고 구매했어요. 따지고 보면 에세이가 맞긴 하죠.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에세이보다도 훨씬 날것의, 말 그대로 ‘일기’에 가까운 글이더라고요. 작가의 SNS를 들여다보는 것 같은 독서 경험을 하고 있어요. 이런 형식이 호불호가 좀 갈릴 수 있다는 생각은 드네요. 하지만 트랜스젠더 당사자의 생생한 수기를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접하고 싶으신 분들에게는 이 책이 흥미롭게 다가갈 것 같습니다.

양귀자 작가의 〈희망〉도 읽고 있어요. 제가 2년 전 즈음부터 지인들과 독서 모임을 하고 있는데 이번 순서 책이거든요. 모임이 다가오고 있어서 서둘러 읽어야 해요. 6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이라, 조금 막막하네요. 그래도 벌써 300페이지를 읽었습니다. 이제 다시 300페이지를 읽어야만….

독서 취향에 변화가 있었다면요?

예전에도 지금도 도서관 800번대의 책들, 문학을 제일 좋아해요. 그런데 아까 말했다시피 제가 지적 허영이 좀 있어서, 인문 서적도 꾸준히 읽어왔어요. 그렇지만 여전히 현대 한국문학을 가장 많이 읽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제 감에 많이 의존해서 골랐어요. 제목이나 표지의 느낌을 주로 봤죠. 당연히 실패가 많았고요. 그런데 이제는 읽은 책이 좀 쌓여서 제가 어떤 작가를 좋아하는지, 어떤 장르를 좋아하는지 알게 됐어요. 전작들이 마음에 들었던 작가가 신간을 내면 믿고 사는 편이에요.

SNS 활동을 하면서 주변에 책을 많이 읽는 친구들이 생겼어요. 그 친구들의 추천을 기억했다 구매해 읽어보면, 그 책이 재밌어도, 재미없어도 즐겁더라고요. 난 이거 별로인 거 같은데 그 친구는 왜 재밌다고 생각했을까 고민하며 읽는 재미가 있어요.

독서가 어려운 순간은 어떤 때인지, 어떻게 책에 몰입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책에 몰입하고 싶을 때는 아무래도 핸드폰을 멀리 둡니다. 핸드폰을 진동 모드나 무음으로 둔 채 멀찍이 떨어뜨려 놓고 읽고 싶은 책을 꺼내 다섯 장만 읽어보세요. 만약 더 읽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든다면 그날은 그 책과는 맞지 않는 날일 거예요. 하지만 대체로 그렇게 다섯 장을 읽으면 자신도 모르게 그다음 장을 펼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지도 모릅니다. 늘 시작이 어려운 것 같아요. 시작이 반이다!

주황 님의 관점에서, 책이 살아 있다는 증거는 어떻게 설명할 있다고 보시는지요?

영화 〈코코〉를 보면 사람들이 죽은 이후에도 ‘죽은 자들의 세상’이라는 곳에서 계속 살아가는 모습을 보실 수 있어요.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여전히 이승에 존재한다면 죽은 후에도 소멸하지 않고 생을 이어갈 수 있는 거죠. 비슷하게 책도 계속해서 누군가에게 읽히고 기억된다면 그게 살아 있는 거 아닐까요? 그걸 읽고 마음에 새긴 제가 살아 있으니까 책도 살아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책을 읽는 것이 여전히 유의미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독서가 보편적으로 유의미한 활동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독서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테니까요. 전 그분들을 설득할 자신도, 설득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합니다. 다만 독서가 ‘저에게는’ 유의미한 일이라고 확신합니다. 제가 책을 읽으면서 얻은 가장 소중한 것은 ‘세상에 대한 상상력’이에요. 소설을 읽을 때는 내가 만약 주인공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행동할지, 주인공은 왜 저렇게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인지를 생각해보게 되고, 비문학을 읽을 때는 저자의 주장에 어디까지 동의하고, 어떤 부분은 미심쩍은지를 고민하게 되죠.

독서는 기본적으로 저자의 말을 ‘듣는’ 행위입니다. 책의 말을 경청할 때 우리의 세계가 딱 그 책이 품은 세계만큼 확장된다고 믿어요. 저는 각자의 세계를 나름대로 잘 꾸려가는 게 곧 ‘인생’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독서는 인생을 어떻게 꾸려갈지를 고민하게 만들고 나름의 답을 찾도록 부추기는 촉매의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그게 독서가 가질 수 있는 유의미함이라고 생각해요.


1 2 3 4 5 6 7 8 9 

다른 매거진

No.327

2024.09.02 발매


결심했다, 소비와 멀어지기로

빅이슈 327호 결심했다, 소비와 멀어지기로

No.323

2024.06.03 발매


RE:VIEW POINT

< 이전 다음 >
빅이슈의 뉴스레터를 구독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