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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26 빅이슈

홈리스 여성 이야기 - 그녀들이 고립되지 않도록

2024.08.14

글. 김진미

매일 비슷한 어려움에 처한 홈리스 여성들을 만나다 보면, 우리가, 사회복지사라는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혹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둔감해질 때가 있다.

그러다가 SJ 님을, YH 님을 만나면 생각하게 된다. 홈리스 여성들을 위한 주거, 일, 의료 지원 같은 서비스가 너무나 중요한 것만큼 그녀들을 혼자 두지 않는 것, 서로를 보살펴줄 연계의 끈을 만들어주는 것도 귀중한 일이라는 것을.

SJ 님이 도통 고시원에서 나오질 않고 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그녀가 사는 고시원에 찾아간 것이 한 달쯤 전이다. 그녀가 며칠이나 결근을 해서다. 보통이라면 그녀는 내가 일하는 여성 홈리스 일시보호시설의 자활사업장에 누구보다 빨리 출근해서 씩씩하게 일하고, 시설의 급식도 꼬박꼬박 잘 챙겨 먹고 돌아갔어야 했다. 다른 여성들에게 혹시 무슨 이야기 들은 게 있냐니까 특별한 말이 없었다고 한다. 다만 결근 며칠 전에 자활사업장 자리다툼으로 약간의 언쟁이 있었다고는 한다. SJ 님이 어느 자리에 앉았는데 그 자리를 도맡다시피 하던 다른 여성이 와서 내 자리니 비켜달라고 했고, SJ 님은 여기에 무슨 정해진 자리가 있느냐 항의했던 일이란다. 여러 사람이 모인 곳이라 늘 소소한 다툼이 있었으니 그게 특별한 일 같지는 않은데 정말 그 때문인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고시원을 방문했다. 하지만 그날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다. 안에 있다는 걸 뻔히 아는데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열어주지 않았다.

일시보호시설 긴급 잠자리 이용이 끝나고 고시원에서 생활하던 지난 몇 달간 SJ 님은 꽤 긍정적인 변화를 보여 동료 사회복지사들이 매우 흐뭇해하는 상태였다. 시설에 있을 때만 해도 그녀는 너무 뾰족해서 이용인들과 자주 다투었고, 특히 사회복지사들에게는 더 예민하게, 왜 나를 건드리냐는 눈빛과 말투로 응대했다. 여러 사람이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시설이라는 곳이 여러 이용인의 불편을 예방한다는 목적으로 이런저런 규정을 두고 적용하게 마련인데, 그녀는 그런 것들을 크게 불편하다고 느끼는 듯했고, 불만 제기도 많았었다. 그리 예민하면 공동생활을 하는 다른 시설에 연계하기가 힘들겠다 싶어 고시원 월세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응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우려와 달리 열심히 고시원을 알아보고 다니더니 계약을 하고 왔고 고시원에 들어간 이후에는 시설에 있을 때는 하지 않던 자활사업장 일도 해보겠다며 출근하기 시작했다. 고시원 월세를 계속 지원받을 수는 없으니 생활비를 마련해야겠다며.

혼자 공간을 사용하니 전처럼 다른 이용인들에게, 혹은 실무자들에게 날을 세울 일도 많지 않고, 모든 게 편안한지 표정도 밝아지고 먼저 인사도 하고 묻는 말에 밝게 대답도 하였다. 역시 사생활이 보장되는 거처가 안정되는 게 중요한 것이지, 그런 생각이 많이 들게 했었다. 그렇게 사회복지사들에게 보람과 희망을 안겨주던 SJ 님이 고시원에서 두문불출하고 문도 열어주지 않으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사실 노숙 상황에 놓인 여성들이 그 상황을 벗어나 닿을 곳은 안전하고 독립적인 거처의 마련이다. 긴급 잠자리 정도를 공유해야 하는 일시보호시설이 안전하지만 가장 임시적이고 응급적인 거처라면 고시원, 그리고 임대주택같이 자신만의 공간을 점유하고 생활하는 단계는 홈리스 상황을 탈피하기 위한 과정에서 우리가 채택할 수 있는 가장 그럴듯한 대안이다. 그런데도 고시원이나 임대주택에 입주한 분들에 대한 걱정을 단칼에 내려놓게 되지는 않는다. 많은 홈리스 여성들이 가족과 연계가 단절된 상태이고 친구도 별로 없어서 물질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지지받을 수 있는 관계가 끊긴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처의 독립이 사회적 고립으로 귀결되지 않도록 끈을 만들어내는 게 후속 과제 중 하나다.

안부를 물어주는 것만으로도

SJ 님의 고시원 문을 열게 만들 방법을 궁리하다가, 마침 그녀가 지난달 급여를 받아 가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해냈다. 자활사업장을 담당하는 사회복지사는 급여 지급을 협의하는 핑계가 있으니 잘되었다며 다시 그녀의 고시원을 찾아갔다. 예상대로 급여 처리를 위해 문을 열고 잠시나마 이야기를 나누고 왔다고 한다. 왜 일을 하러 오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문을 나서면 누군가 자신을 쫓아와서 나갈 수가 없다고 했단다. 고시원 관리자의 말로는 그녀가 한동안 고시원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니 아마 쫓아오는 그 누군가는 그녀의 상상 속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

다시 동료들과 그녀를 어쩌면 좋을지 의논했다. 다음에는 SJ 님을 찾아가 정히 그런 두려움 때문에 고시원에만 있는 것이라면 당분간 출퇴근길에 길동무를 해줄 동료 여성을 찾아보겠다고 제안할 참이다. 길동무와 함께 움직이면서 실제 그런 위험이 있는지 살펴보자고. 글쎄, 그 제안을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그럼에도 그녀를 혼자 둘 수는 없으니 방법을 찾아 만나러 가야 할 것이다.

얼마 전 내가 있는 시설에서 자활근로로 무료 급식 조리를 도왔던 YH 님은 임대주택에 입주한 초기에는 서울시가 노숙인을 위해 제공하는 자활근로에 참여해도 된다는 연락을 해준 게 너무나 고마웠다고 전화를 받던 그때의 상황을 회고했다. 그때 그녀는 허리 디스크 통증이 심해져서 일도 못 하고 꼼짝없이 누워만 있었다고 했다. 정말 바닥이라고, 한계에 다다랐다고 느꼈을 때 우리 전화를 받았고, 그래도 몇 달 반일제 자활근로에 참여하면서 호구도 해결하고 끝도 없이 가라앉던 기분도 수습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 달에 한 번쯤 매입 임대주택 입주자 사례 관리를 위해 전화를 하거나 방문해주는 사회복지사 선생님이 얼마나 힘이 되고 고마운지 아냐고 했다. 드문드문이지만 잠깐씩이라도 얼굴이나 목소리를 접하고 밥은 먹었는지, 허리는 괜찮은지 물어봐주는 그런 선생님이라도 없으면 자신은 어쩔 뻔했냐며.

매일 비슷한 어려움에 처한 홈리스 여성들을 만나다 보면, 우리가, 사회복지사라는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혹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둔감해질 때가 있다. 그러다가 SJ 님을, YH 님을 만나면 생각하게 된다. 홈리스 여성들을 위한 주거, 일, 의료 지원 같은 서비스가 너무나 중요한 것만큼 그녀들을 혼자 두지 않는 것, 서로를 보살펴줄 연계의 끈을 만들어주는 것도 귀중한 일이라는 것을.


김진미

여성 홈리스 일시보호시설 ‘디딤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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