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먹한 어둠 속, 새어 나오는 빛을 보며 한참을 머물게 되는 공간.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의 맨 마지막 층에 앉아 ‘위로가 되는 장소’를 떠올린다.
글. 김선미 | 사진. 양경필
나는 종교가 없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부처님 오신 날 절에 가서 비빔밥을 챙겨 먹는 집에서 자랐으나, 고등학교 3년은 또 수녀님들이 계시는 가톨릭 학교에서 보냈다. 가늘고 얕은 종교 대통합(!)을 겪으며 절에서도, 성당에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적응력을 길렀다.
무체벌, 무감독 학교라는 안온하고 비현실적인 세계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수녀님이 교장 선생님으로 계셨는데 무체벌, 무감독 학교로 그 지역에서 꽤 유명했다. 학생을 때리는 선생님은 교장실로 불려 갈 중징계 대상이었다. 시험을 볼 때도 감독 없이 시험을 치렀다. 비평준화 지역이라 선발된 친구들이 온 것이기도 했지만 감독이 없어도 누구 하나 커닝 같은 부정한 행위를 하지 않았다. 모두 ‘믿어주는 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었던 것 같다.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학생을 전적으로 믿어주는 학교’가 얼마나 희소한지를, 내가 얼마나 안온하고 비현실적인 세계 안에 속해 있었는지를. 수능 100일 전 3학년 전체가 강당에 모여 다 같이 포도주를 나눠 마셨던 일, 수업 시간에 외신 기자가 촬영한 광주 5.18 민주화 운동 영상을 처음 보았던 일, 우리의 10대는 이 자유롭고 영양가 가득한 토양을 기반 삼아 각자의 방식으로 무럭무럭 자랐다.
학교는 치열하게 입시를 준비하는 곳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위로와 치유를 주는 공간이기도 했다. 그 중심에 우리만의 자연, 소명원이 있었다. 학교 건물 뒤쪽에 있는 학교 부지만 한 큰 정원 겸 동산이었는데 소명원의 나무들, 숲으로 둘러싸인 산책길, 자연 속에 폭 담긴 야외음악당과 수백 개의 벤치들은 우리의 또 다른 양육자였다. 여기 졸업생이라면 누구나 학창 시절, 소명원에 정서적 의존도가 있었을 것이다. 속상한 일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도,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설익은 꿈에 관해 재잘댈 때도 우리는 소명원을 찾았다. 대학 캠퍼스 같은 풍경 때문에 드라마 촬영 장소로도 종종 사용될 정도였다.
땅 위에 소명원이 있었다면 학교 제일 꼭대기에는 또 다른 위로의 공간이 있었다. 언제든지, 누구라도 문을 열어 마음과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는 기도실.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카펫 바닥, 미색 조명만이 공간을 채우고 있는 그곳에서 우리는 종교의 유무와는 상관없이 고요해지는 법을 스스로 배웠다. 말 대신 곰곰이 생각을 들여다보는 법을, 때로는 슬픔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익혔다. 아무도 없는 사각형의 공간에 앉아 머릿속에 꽉 찬 생각들을 하나하나 펼쳐놓던 열일곱 살의 어느 날이 지금도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 한 시간 남짓 앉아 있었을까. 보송보송하게 마른 생각들을 다시 넣고는 주름이 다 펴진 교복 치마를 툭툭 털고 일어났던 기억. 사방은 여전히 고요했고 창밖 소명원은 한없이 싱그러웠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경험했던 이러한 정서 때문인지 여행을 가도 그 지역의 성당들을 자주 찾아다녔다. 화재가 나기 전의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부터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 서울의 명동대성당과 강화도 온수리성당, 전주 전동성당 등 그 공간 안에서 가만히 앉아 있다 보면 위로와 평안의 기분이 금세 환기되곤 했다.
지상에 웅크린 땅속의 공간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은 이런 나를 잘 아는 건축가 친구가 꼭 한번 가보라고 말한 곳이었다. 꼭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공간 자체로 충분히 인상적인 경험이 될 거라는 이야기를 덧붙이며. 2019년 개관한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은 세 군데 건축사무소가 함께 설계한 추모의 공간이자 역사박물관과 공원으로 연결되는 공공 공간이다. 과거 서소문 밖 네거리라 불렸던 이곳에서 수많은 천주교인이 처형을 당했다. 이러한 이유로 로마 교황청은 2018년에 아시아 최초로 이 일대를 국제 순례지로 승인한 바 있다.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은 개관한 직후 코로나19가 발생하는 등 여러 부침이 있었지만 건축적 아름다움 때문인지 SNS에는 사진 찍기 좋은 명소로 많이 알려져 있었다. 서울 빌딩 숲 한복판에 있다고는 여겨지지 않는 거대한 규모의 붉은 벽돌, 다른 것들의 간섭 없이 마음을 집중할 수 있는 낮은 조도의 공간 사진들을 보며 내심 이곳이 궁금했지만 이상하게 발길이 잘 가지 않았다. 지하철 2호선 시청역과 충정로역 사이에 있으니 지척의 거리인데도 동선이 어쩐지 낯설었다. 도심 속 사각지대 같은 느낌이랄까. 연일 폭염이 이어지는 여름 안에서, 지상에 웅크린 숨은 공간 같은 이곳을 작정하고 찾아갔다.
지금은 접근성이 애매한 위치라 생각하지만 서소문 밖 네거리 지역은 예로부터 사람과 물자가 모이는 서민들의 핫플레이스였다. 양화진·마포·용산 나루터에 도착한 삼남 지방(충청·전라·경상)의 각종 물류는 이곳에 집결된 후에 비로소 도성으로 반입됐다. 자연스레 시장이 발달하게 되었고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이는 활기찬 생의 터전 역할을 했다. 그 이유로 서소문 일대는 조선 시대 국가 공식 처형 장소 중 하나로 지정되기도 했다. 군중이 모여드는 장소라는 건 처형의 본보기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말과 같았기 때문이다. 1801년 신유박해, 1839년 기해박해, 그리고 1866년부터 1873년까지의 병인박해기를 거치며 수많은 천주교인이 처형을 당했으며 동학농민운동의 지도자인 김개남의 머리가 서소문 밖에 효수(참형이나 능지처사 형을 집행한 뒤 그 머리를 장대에 매달아 사람들에게 죄를 경계시킨 형벌)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처형의 장면들을 목격했고, 이에 관한 묘사와 각종 소문은 나라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생과 사가 어지러이 얽혀 있던 장소. 실제로 사형을 집행하던 망나니들이 피 묻은 칼을 씻었다는 두께 우물이 공원 내에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후 1905년 경의선 철로가 이 지역을 관통하며 땅의 맥락이 바뀌었다. 1966년에는 서소문 고가가 이 지역 북쪽에 건설되면서 접근로가 교묘하게 차단되는 상황까지 이어졌다. 도성 밖 중 가장 번성했던 서소문 일대는 서울의 도시화 과정에서 점차 쇠락했고 또 고립되어갔다. 1973년에는 근린공원이 조성되었으나 공원 하부에 중구의 재활용쓰레기 처리장과 대규모 공영 주차장이 들어섰다. 일반인들의 접근은 점점 줄어들었고, 존재하지만 버려진 땅처럼 여겨지기 시작했다. 그간 땅의 맥락을 들여다보니 회사에서 가까운 거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발길이 잘 닿지 않았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래로 흐르는 동선 끝에 만나는 고요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서 가장 먼저 시선을 끄는 건 역시 높게 세워진 붉은 벽돌의 벽들이다. 모두 네 개의 지하층으로 되어 있어 땅의 안으로 향한 구조도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아래로, 아래로 향하는 동선에서 자연스레 만나게 되는 작품들, 빛과 어둠은 땅속으로 끊임없이 연결되는 느낌을 준다. 그렇게 맨 아래까지 내려오면 거대한 큐브를 천장에 매달아놓은 구조, 25×25×10m 규모의 입방체를 품은 콘솔레이션홀(Consolation Hall)을 만난다. 이름 그대로 ‘위로’의 공간인 이곳은 아래로, 아래로 동선을 모아 가장 낮은 곳으로 침잠시켰다가 극적으로 자연광을 만나게 하는 구조를 띤다. 이곳에는 다섯 성인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땅 속 14m의 깊이. 어둡고 차분한 정서의 콘솔레이션홀에는 갈 때마다 유독 혼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많이 목격했다. 먹먹한 어둠 속, 새어 나오는 빛을 보며 한참을 머물게 되는 곳.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의 맨 마지막 층에 앉아 ‘위로가 되는 장소’을 생각한다. 10대 후반이 고스란히 펼쳐져 있던 학교와 소명원, 생채기 난 마음을 안고 올라간 학교 건물 꼭대기 기도실, 아무도 아는 이가 없는 여행지, 그 낯선 감각의 위로도 떠오른다. 도심 한가운데에서 이 정도 스케일의 건축과, 이 정도 압축적인 고요를 경험할 수 있다니.
지상과 지하가 서로를 마주하며 하나로 연결되는 곳. 생과 사가 켜켜이 겹쳐지며 땅의 역사가 된 곳. 누군가는 깊은 종교적 울림을, 누군가는 건축학적 즐거움을, 누군가는 전시 작품들로 예술적 향유를, 또 누군가는 그냥 뜻 모를 위로를 경험하게 되는 곳.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은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문을 열고 월요일과 공휴일에 휴관한다. 입장료는 없다.
김선미
서울 북아현동에서 기획 및 디자인 창작집단 포니테일 크리에이티브를 운영하고 있다.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 결국 반짝이는 것들에 관해 꾹꾹 눌러쓴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