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없고 콘텐츠는 너무 많다! 매번 어떤 콘텐츠를 볼까 고민만 하다 시작조차 못 하는 이들을 위해 일단 시작하면 손에서 놓지 못하는 웹소설을 소개한다. 키워드가 취향에 맞는다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5화’만 읽어보자.
글. 김윤지
현실에서는 평범한 농부였던 내가 이세계에서는 천사? 제목에서 내용을 짐작해볼 수 있는 작품은 부모님으로부터 농장을 물려받은 청년 농부 김이상의 신세 한탄으로 시작한다. 귀농 열풍에 휩쓸려 덜컥 시골로 내려갈 땐 언제고, 아무래도 자신들은 도시 체질인 것 같다며 아들에게 농장을 떠넘기다니. 마침 실직 상태라 거절할 길이 없었던 이상은 반강제로 4,000평대 샤인머스캣 농장의 주인이 된 참이다. 초반부, 5년 사이 제법 능숙한 농사꾼이 되어버린 이상의 모습이 묘사되며 언뜻 힐링 귀농물로 흘러가는 듯 보이던 작품은 이상이 심심풀이로 구입한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다른 국면을 맞는다.
14만 원이 넘는 거금을 주고 산 황숙소프트의 신작 ‘임모털 오더: 오리진’. ‘신세계로 이주하기’, ‘포기하기’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길래 고민 없이 마우스를 움직였는데 웬걸, 버튼을 누르자 컴퓨터 화면이 꺼지더니 먹통이 되어버린다. 분노로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고자 화장실로 향한 이상은 순간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한다. 5년간 햇빛 아래서 고생하느라 생긴 잡티가 거짓말처럼 사라져 있었기 때문. 순간 이상의 머릿속에 그간 읽었던 수많은 웹소설이 스쳐 지나간다. 어째 게임 시작화면이 이전 시리즈와는 다른 게 뭔가 꺼림칙하더라니. 회귀, 빙의, 트립. 뭐 이런 건가? 피부가 조금 좋아진 것뿐 특별히 더 어려진 것은 아니니 회귀는 아니겠고, 빙의도 아니다. 이제 남은 건 트립. 설마… 나 지금 다른 세상으로 온 건가? 급하게 주변을 둘러보지만 집도, 농장도 모두 그대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집과 농장‘만’ 그대로다. 한마디로 이상이 살던 집과 농장이 통째로 이세계에 떨어진 것.
자신이 떨어진 이세계가 어떤 곳인지 알아보고자 주변을 둘러보던 와중, 살려달라는 누군가의 외침을 들은 이상은 목소리를 따라간 곳에서 엄청난 광경을 마주하게 된다. 시대극에서나 볼 법한 옷을 입은 채 쓰러져 있는 사람들과 저를 향해 살려달라 외치는 백인 여성. 족히 서른 명은 되어 보이는 사람들을 바라보던 이상의 머릿속을 스친 것이 있었으니. 바로 게임 패키지 뒷면에 적혀 있던 소개 문구였다. “바야흐로 16세기, 엘리자베스 여왕이 다스리던 잉글랜드는 북미에 최초로 영구적인 식민지를 건설하기 위해 로어노크 섬에 개척민들을 파견한다. ‘우리세계’에서 그 시도는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과연 그 배후의 진실은 어떨 것인가.” 말로만 듣던 로어노크 식민지 생존자들을 마주한 이상은 자신이 게임 속 배경인 1588년 북아메리카 크로아토안 섬에 떨어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이 시점부터 작품의 장르는 대체역사물(“만약 인류의 지난 역사가 기존 사실과 다르게 전개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가정에서 출발하는 장르, 이하 대역물)로 전환된다. 현대인 이상의 개입은 어떤 변화를 불러올까.
앞서 언급한 대로 이곳은 1588년이지만, 이상의 집과 농장은 그대로다. 즉, 전근대 사회로 떨어진 대역물 주인공들이 가장 그리워하는 현대 문물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 이상이 낯선 곳에서 살아남는 데 큰 도움을 주는 현대 문물은 이상을 더욱 신비한 존재로 만들어주는 역할도 하는데, 손전등의 존재를 알 리 없는 과거인들은 손전등을 든 채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이상을 보고 ‘손에 태양과도 같은 빛을 든 남자’라 칭한다. 차마 다 죽어가는 식민지 생존자들을 모른 척할 수 없었던 평범한 청년 농부 김이상. 그 상황에서 그가 한 거라곤 굶주린 채 쓰러져 있는 사람들의 입에 초콜릿을 넣어준 것뿐이었지만, 그들에게 있어 이상은 살살 녹여 먹으니 몸에서 힘이 절로 솟아오르는 달콤한 열매를 내려주시어 죽어가는 우리를 살려주신 의인, 나아가 비유럽인의 모습으로 현현한 천사 그 자체였던 것. 하물며 현대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씨 없는 포도조차 과거인들에게는 신문물과도 같았는데, 이상의 농장에서 씨 없는 포도를 먹고 놀란 과거인은 씨는 자신이 없앤 거라는 이상의 발언에 그를 신적인 존재로 바라보게 된다.
이처럼 충분히 오해를 살 법한 발언에도 굳이 적극적으로 해명하거나 설명을 덧붙이지 않는 그의 태도는 더 큰 오해를 불러와 과거인들을 점점 더 깊은 착각 속에 빠지게 만든다. 이후 식민지 생존자들과 함께 북미 개척 공동체를 꾸려나가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이상의 비범한 사고방식과 행동은 독자들조차 그가 인간인지, 인간인 척하는 천사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지경. 어쩌면 그는 자신이 21세기 한국인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과거인들에게 천사로 숭배받는 인간의 ‘진짜’ 정체가 궁금하다면 첫 장을 펼쳐보자.
장르: 판타지
회차: 156화(미완결, 24년 9월 21일 기준)
플랫폼: 문피아, 네이버시리즈
키워드: #착각물 #대체역사 #농사 #종교 #게임빙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