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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29

녹색빛 - 플라스틱 오염을 끝장낼 가장 확실한 방법

2024.11.15

- 55회 지구의 날을 맞아 녹색연합이 ‘플라스틱 오염 끝내자’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녹색연합

글. 유새미

플라스틱. ‘원하는 모양대로 만들다.’는 뜻의 그리스어 ‘플라세인(plassein)’에서 유래한 단어라고 합니다. 그 어원에 걸맞게 플라스틱은 갖가지 모습으로 변신해 우리 곁에 있는데요. 제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노트북처럼 비교적 작은 물건부터 비행기나 아파트처럼 아주 커다란 것까지, 거의 모든 것에 플라스틱이 사용됩니다. 플라스틱은 처음 개발될 때만 해도, 당시 사치품이나 오락용으로 마구 착취되던 코끼리 상아나 거북이 등껍질을 대체하기 위해 ‘친환경’ 관점에서 발명된 물질이라고 하는데요. 지금은 UN이 지목한 ‘오늘날 지구가 겪고 있는 세 가지 위기’, 즉 기후위기·환경오염·생물다양성 손실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며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습니다. 99%가 석유로 만들어지는 플라스틱은 생산될 때부터 버려진 이후까지 생애 전반에 걸쳐 온실가스를 배출하며 기후위기를 앞당깁니다. 공기와 물과 흙을 오염시킬 뿐 아니라 여러 동식물의 서식지를 파괴하고 때론 직접 목숨을 위협하며 생물다양성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코끼리 상아와 거북이 등껍질을 보호하기 위해 대체 물질로 개발되었던 플라스틱이 왜 지금은 지구 파괴범이 되어버린 걸까요?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내구성 좋은 플라스틱 제품을 몇 번이고 다시 썼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제품을 너무 오래 쓰자 돈을 벌 수 없었던 석유화학 기업들이 꾀를 냈습니다. 편리함을 내세워 대중에게 플라스틱 제품은 ‘일회용’이라는 인식을 심기 시작한 거죠. 동시에 ‘플라스틱은 재활용이 가능하다.’고 홍보하며 한 번 쓰고 버리는 일에 대한 죄책감을 덜어주었습니다. 지금도 플라스틱은 잘만 버리면 재활용될 거라는 믿음을 가진 분들이 많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안타깝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OECD 자료 기준으로 전 세계적으로 버려지는 플라스틱 중에서 겨우 9%만이 재활용될 뿐입니다. 설령 재활용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 종류만 수천 가지인 데다 보통 여러 재질을 섞어 제품을 만드는 플라스틱의 특성상 재활용 이후 그 품질은 매우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다리가 부러져서 더 이상 못 쓰게 된 플라스틱 의자를 재활용한다면 다시 똑같은 의자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뜻이죠.

정교한 디테일로 완성된 기업의 그럴싸한 마케팅 전략이 먹혀들어가고 정부가 이를 손 놓고 방관하는 사이, 우리는 플라스틱 세상에 점점 익숙해졌습니다. 주문 후 반나절이면 도착하는 배송 시스템과 전 세계를 아우르는 유통망에 힘입어 소비량도 늘고 소비 주기도 빨라졌습니다.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배달 음식을 먹으며 설거지의 귀찮음을 덜고, 클릭 몇 번으로 문 앞까지 배송되는 플라스틱 옷을 주문하며 시간을 아낍니다.

- 녹색연합을 비롯한 국내외 15개 시민사회 단체가 연대한 플뿌리연대(‘플’라스틱 문제를 ‘뿌리’ 뽑는 연대)가 강력한 국제 플라스틱 협약을 촉구하고 있다. ©플뿌리연대

우리는 모두 하나의 지구에 살고 있다

불과 몇십 년 사이에 빠르게 변해버린 우리의 생산-소비 패턴만큼이나 지구도 빠르게 변해갑니다. 지구에서 가장 높은 산인 에베레스트 해발 8,440m 지점에서도, 지구에서 가장 깊은 심해인 마리아나 해구 수심 1만 898m 바닥에서도 플라스틱이 발견됩니다. 전 세계 곳곳에서 버려진 플라스틱 쓰레기는 해류를 따라 돌며 거대한 쓰레기 섬을 만듭니다. 코에 플라스틱 빨대가 꽂힌 채 죽은 바다거북이나 플라스틱 컵 뚜껑이 장기를 막아 죽은 거대한 보리고래의 사진도 더 이상 충격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플라스틱 오염의 심각성을 다룬 기사를 읽고 나면, 일회용 컵에 담긴 커피를 마시는 데에 죄책감을 느끼다가도 이내 ‘그럼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생각하며 그 순간을 넘깁니다. 또는 반대로 텀블러를 들고 다니며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라고 여깁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는 플라스틱 세상을 만든 적이 없습니다. 일회용 세상을 원한 적은 더더구나 없습니다. 똑똑하고 사악한 기업의 전략에 속았고 그들이 만든 플라스틱 세상에 익숙해졌을 뿐입니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플라스틱 오염과 그로 인한 여러 피해는 적절한 정책을 만들지 못한 정부가, 소비자를 속이며 막대한 이윤을 거둬들인 기업이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또한 플라스틱은 국경 없이 공기와 흙과 물을 오염시키기 때문에 어느 한 국가, 기업이 아니라 전 세계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래서 지금, 늦게나마 정신이 번쩍 든 전 세계 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2022년에 열린 UN환경총회에서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한 법적 구속력 있는 국제협약’을 만들자고 만장일치로 결의한 이후, 지금까지 네 차례에 걸쳐 협상하며 협약문을 다듬고 있습니다. 그런데 플라스틱 생산부터 규제하는 법적 구속력 있는 국제협약을 만들겠다고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막상 협상이 시작되니 각국의 서로 다른 이해관계 속에서 합의 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닌가 봅니다. 플라스틱 생애 전 주기의 어떤 단계부터 어떻게 규제할 것인지부터 협약을 어떻게 지키고 그에 드는 돈을 어떻게 마련할지까지, 무엇 하나 정해진 게 없습니다. 물론 나라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우리는 모두 하나의 지구 위에 살고 있고 속도는 다르더라도 결국 피해는 모두에게 돌아갑니다.

기억해야 할 건 ‘국제 플라스틱 협약’을 애초에 왜 만들기로 했는가입니다. 지구 생태계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엄청나게 많은 플라스틱을 만들고 (짧은 시간 동안 사용한 뒤에)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은 명확합니다. 우선 플라스틱을 지금보다 훨씬 적게 만들어야 하고, 한번 만든 제품은 마르고 닳도록 오래 써야 하며,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면 재활용해야 합니다. 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첫 번째 단계인 ‘적게 만들기’고요.

협약문이 완성되기까지 이제 단 한 번의 협상만이 남아 있습니다. 그 마지막 협상이 이번 달 말부터 일주일 동안 한국의 부산에서 열립니다. 플라스틱 생산을 줄이자는 내용이 들어가는 강력한 협약문이 만들어지도록, 완성된 협약은 전 세계가 법적으로 지켜야만 하도록, 우리가 함께 요구해야 합니다. 마지막 협상이 열리기 직전 토요일인 11월 23일, 각국 협상단에 ‘강력한 국제 플라스틱 협약’을 요구하는 행진이 부산에서 열립니다. 기업에 속고 정부에 실망한 우리가 플라스틱 오염을 끝내기 위해 지금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강력한 국제 플라스틱 협약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 11월 23일 부산에 모여주세요. 플라스틱 오염을 끝내달라고 우리나라와 전 세계 정부에 요구해주세요. 직접 오시기 어렵다면 국제 플라스틱 협약에 대해 주변 사람과 이야기 나눠주세요. 지긋지긋한 플라스틱 중독에서 벗어날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유새미

녹색연합 녹색사회팀. 천천히 즐겁게 춤추며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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