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상단으로이동
신간 · 과월호 홈 / 매거진 / 신간 · 과월호
링크복사
링크가 복사되었습니다.
글자확대
글자축소

No.334(커버 B) 인터뷰

챌린저스 - [여성국극 끊어질듯 이어지고 사라질듯 영원하다] 유수연 감독

2025.04.22

다큐멘터리 <여성국극 끊어질듯 이어지고 사라질듯 영원하다> 속에서 웹툰과 드라마 <정년이>의 실제 모델인 ‘삼마이’(본래 일본의 전통 연극인 가부키(歌舞伎)에서 조연 배우를 뜻하는 말로, 값싸 보이는 사람이나 물건 따위를 얕잡아 이르는 말.) 조영숙 명인을 비롯한 여성국극 1세대 배우들, 조 명인의 제자인 여성국극 3세대 예인 박수빈, 황지영 배우는 여성국극 문화의 새로운 전성기를 꾀한다. 1세대에서 3세대로 이어지는 여성국극인들의 활동과 고뇌, 이들이 함께 모여 <레전드 춘향전>을 만들고 무대에 올리는 과정이 다큐멘터리에 담겼다.

유수연 감독의 전작 <수궁>의 주인공, 정의진 선생 역시 30년간의 경력 단절을 경험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규모가 축소된 여성국극의 예인들도 커리어와 마음의 쇠약을 경험한다. 마침내 맞이한 2020년대, 여성국극은 대중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가게 될까.

여성국극인들은 실패와 어려움 앞에서 작아지는 마음에 도전하고, 설득하기 어려워 보이는 1세대 예인들의 마음을 한데 모으는 것에 도전하고, 전통이 잊히는 시대에 여성국극의 원형을 고수하기 위해 도전한다. 콘텐츠가 초 단위로 쏟아지고 한 번의 스와이프로 새로운 유행이 탄생하는 시대, 전통과 진보의 조화로 예술의 긍지를 높이기 위해 도전한다. <여성국극>으로 그들을 담아내는 도전에 성공한 유수연 감독을 만났다.

글. 황소연 | 스틸제공. 시네마달

국극 1세대부터 3세대에 걸친 배우들이 전통과 작품의 변화, 진보에 대해 논쟁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레전드 춘향전>을 준비하는 단계에서 경험한 현장은 어땠나.
다들 그렇겠지만 6~70년간 알아왔던 분들은 서로 사랑하는 마음도 있지만, 미워하는 마음도 있다.(웃음) 오래된 갈등이랄까. 선생님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게 정말 쉽지 않았고, 수빈 씨가 선생님들을 한 분씩 찾아뵈어 말씀을 드려서 가능했던 일이다. 재미있는 게, 이분들이 서로 싫어서 얼굴을 돌릴지언정 자리에는 한데 모여 있다.(웃음) 한 테이블에서 같이 귤을 까먹으면서 다른 쪽을 보고 있고, 그런 귀여운 장면들이 있다.

관객들이 무대를 보다 중간에 나가거나, 캠핑카 안에서 공연 준비하는 모습도 등장한다.
수빈, 지영 씨가 여러 지역을 돌며 공연을 하는데, 자신들을 ‘장돌뱅이’라고 칭했다. 정말 그랬다. 대기실이 없어서 캠핑카를 살 수밖에 없었고, 잘 곳도 연습 공간도 없어서 상황이 열악했다. 영화에선 빠졌지만 조영숙 선생님이 성북구에서 무대에 올랐을 때도 대기실이 없으니까 주꾸미 집 한쪽에 앉아 계시고, 거기서 옷 갈아입고 연습하고 그랬다. 거울이 없는 상황에서 머리와 분장을 점검하는 걸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배우들의 모습이 가슴 아프면서도 꼭 들어가야 하는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3세대 예인들은 최근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여성국극 배우를 모집하는 2기 오디션이 4월에 열린다. 영화를 보고 젊은 소리꾼들이 많이 찾아와주시면 좋겠다. 7월에는 <대춘향전>을 무대에 올리는데, 1200석짜리 공연이다. 60년대 이후 한국에서 없었던 일이다. 이 공연이 문화재 지정이나 기업 후원 등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

기자간담회에서 조영숙 명인이 여성국극에 대한 국가의 지원을 강조했다.
여성국극은 군무와 합창의 규모가 관객에게 전달되어야 하는 장르인데, 그간 재정이 부족하다 보니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여성국극이 왜 존재해야 하냐.’는 공격을 받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영화에서 수빈 씨가 췄던 ‘한량무’도 10여 년 전만 해도 스무 명씩 무대에 섰던 파트다. 지금은 여덟 명이 전부다. 더불어 남성 역할을 여성이 연기했을 때 자아내는 특유의 분위기는 수요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가다끼(악역)와 삼마이(조연), 니마이(주연)는 서로 교류하는 한편 자신의 영역이 확실한 것 같다. 국극 한 편을 완성하는 목표와 자기 캐릭터를 구축하는 목표가 나아가는 방향은 어떻게 다른가.
<춘향전>을 예로 들면, 춘향과 몽룡 두 주연이 있다. 그 사이를 삼마이인 향단이나 방자가 오가면서 말을 전한다. 그 신의 주인공은 삼마이다. 삼마이가 대사가 가장 많으니까. 조연에게 더 힘을 실어주고, 한마디라도 더 하게 해주는 게 여성국극의 맛이고 특징이다. 변사또 같은 가다끼는 연기력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 그야말로 신 스틸러가 될 수밖에 없는 영역의 개척자다.

한 사람이 하루 동안 접하는 콘텐츠만 해도 정말 많은 시대다. 여성국극만이 갖는 콘텐츠로서의 장점, 독특함은 무엇이라고 보나.
우리 안엔 남성성과 여성성 모두 있을 수 있는데, 사회적으로 ‘여자는, 남자는 이래서는 안 된다.’는 규범이 많은 것을 잃어가게 만든다고 본다. 여성국극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잃어버린 나를 알아가는 감동을 주는 건 다른 장르에 없는 재미와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미래 지향적인 장르랄까. 어린이들, 젊은이들이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는 그런 경계가 없었으면 좋겠다. 그런 미래가 여성국극에는 있다.


여성국극이라는 장르의 ‘대’를 잇는 것이 여성 배우라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여성이 무대에 올라간 지 100년밖에 안 됐다. 여성이 공연을 하고 무대에 선다는 건 감히 상상도 못 했던 시절이 있었다. 가장 낮은 계급에 있는 여성들이 주축이 된 장르가 여성국극이다. 여성국극을 문화재로 지정해주기를 바라는 게 배우들의 마음이다.

영화 작업을 하며 전통의 전수와 진보에 대해선 어떤 생각을 했나.
모든 예술엔 생로병사가 있다. 내가 기록을 하는 이유는 기억하고 싶어서다. 선생님들께서 <춘향전> 원전에 맞게 토씨 하나까지 고치시는 걸 보면 원형을 완벽하게 기억하는 것에 대한 경외감도 들고, 3세대 배우들이 잘 배웠겠다는 안도감도 있었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장면 하나로 서너 시간씩 연습하는 게 국극 배우들이다. 과거가 무조건 대단하다는 건 전혀 아니다. 다만 전통문화를 고수하려는 이들의 고민과 현재의 고민을 연결하는 방식이 많아졌으면 한다.

5~60년대 여성국극 자료를 찾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다고 밝혔다. 사료가 부족한 상황에서 어떤 정보로 이 점을 보완하고자 했나.
국극 테이프 등이 있긴 했는데, 이미 다 녹아내려서 복구가 어려운 상태였다. 여성국극 역사는 보수적인 남성 권력에 의해서 거세된 게 맞다. 그들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여자들이 이렇게까지 경제적, 사회적 성취를 이룬 역사를 지우고 싶어 했을 것이다. 지금도 어느 집의 앨범에는 여성국극과 관련한 사진 등이 많을 거라고 예상한다. 꾸준히 아카이빙 해서 10년쯤 지났을 때 박물관 규모로 자료를 채울 수 있다면 좋겠다. 수빈 씨와 제가 하고 싶은 일이다. 또 조영숙 선생님은 책을 세 권 내셨는데 이소자 선생님은 한 권도 못 내셨다. 선생님이 가다끼 역으로 50년대에 정말 유명하셨다. 영화에 다 포함되지 않은 그분의 이야기를 책으로 담아 출판해드리고 싶다. 더불어 인터뷰, 구술의 가치가 있는 다른 분들의 이야기도 모은 책을 내고 싶기도 하다.

이 영화를 어떤 이들이 봤으면 하는지.
타깃으로 생각한 이들은 우울감이나 불안함,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젊은 여성들이었다. 수빈, 지영 씨의 이야기를 통해 용기를 주고 싶었다.

차기작도 전통무용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한국 전통에 대한 꾸준한 관심은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아주 작은 개인의 인생이 사실은 큰 역사를 뜻한다고 본다. 살기 힘들어질수록 우리의 근본을 알아야 그나마 덜 흔들릴 거라고 확신한다. 옛날 것을 무조건 지키자는 얘기가 아니다. 우리가 사는 데 어떤 도움이 될지, 그걸 전달하는 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다루고 싶은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면?
한 4년 전에 불교 영화를 찍다가 중단이 됐다. 1세대 여성국극인들의 얘기를 먼저 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는 아주 외딴 암자에 몇십 년 동안 계시는 여성 노스님, 그분을 따르는 보살님들의 이야기다. 그들의 연대와 생활이 젊은이들에게 힐링으로 다가갔으면 한다. 수행하는 스님들은 하루 열 시간 한 달 내내, 화두 하나를 고민한다. 그 결론이 뭔지 궁금하다. 조금 다른 차원에서 여성의 서사를 전하려 한다.

지상파나 OTT 서비스에서 여성국극을 만날 날도 올까.
배우분들은 당연히 그런 소망이 있다. “지상파 한 번 나가면 소원이 없겠다.”고 하신다. 많은 분들이 편안하게, 다양한 채널로 여성국극을 접하게 되면 좋겠다.


1 

다른 매거진

No.334(커버 A)

2025.04.01 발매


엄은향

No.333

2025.03.04 발매


최애의 아이

No.332

2025.02.03 발매


<극락왕생>

< 이전 다음 >
빅이슈의 뉴스레터를 구독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