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이슈의 뉴스레터를 구독하세요!
topNewsLetterCloseButton
페이지상단으로이동
신간 · 과월호 홈 / 매거진 / 신간 · 과월호
링크복사
링크가 복사되었습니다.
글자확대
글자축소

No.213 커버스토리

굿모닝FM 장성규입니다

2019.10.14 | 경계선을 지운 사나이


“그거 봤어? <워크맨> 에버랜드 간 거.” 재미있는 걸 공유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장성규의 <워크맨>은 빼놓을 수 없는 대화의 소재다. 피시방, 놀이공원, 건설현장 등 누군가가 일하는 곳으로 들어간 <워크맨>은 몰랐던 정보를 알려줌과 동시에 ‘일터’에서 상상도 못했던 성역 없는 개그를 치는 ‘유튜브’다운 콘텐츠다. 영화관에 남X남으로 온 친구에게 “커플석으로 끊어드릴까요?”라고 묻고, 때론 일하기 싫다며 제작직관 몸싸움을 하며 3초에 한 번식 웃음을 주는 이는 진행자 장성규다.


장성규는 어찌보면 무례해 보이지만 절대로 선은 넘지 않으면서 연신 개그를 남발한다. 동방예의지국의 예절은 가뿐히 무시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 촬영이 끝나면 일반인 출연자들이 기분을 살피며 사과를 하고, 자기 기사에 달리는 악플에 댓글을 달며 해명을 하기도 한다. 소심하면서도 대범한, 무례한 것 같은데 예의 바른. 한국에서 그간 본 적 없었던 신대륙이 장성규라는 방송인이다.


프리 선언 6개월 만에 고정 프로그램 여섯 개 이상을 하면서 ‘지금 가장 바쁜 방송인’으로 불리는 장성규가 MBC 라디오 <굿모닝 FM 장성규입니다>를 시작한 것은 스스로에게 도전일 수밖에 없다. 분신술이라도 쓰지 않고서는 불가능해 보이는 스케줄 속에서 아침 7시 데일리 라디오를 시작한 이유는 ‘과거의 장성규가 꾸던 꿈을 무시하고 싶지 않아서’다. 프리로 일을 하겠다는 장성규에게 아내가 “당신은 자기가 선택한 것은 책임을 지는 사람이니까 믿는다.”고 응원해준 것처럼, 장성규는 라디오 청취자들에게 ‘나는 당신을 믿는다 그러니까 같이 힘내자.’라는 위로를 매일 전하고 싶다. 방송 일주일 만에 이제 제작진도 청취자도 내 가족이라고 말하는 장성규는 여기서도 거침없이 선을 넘는다. 그 선은 ‘넌 할 수 없어.’라는 누군가 그어둔 선이다.



<굿모닝 FM 장성규입니다>에서는 예능에서와는 다른 느낌의 목소리로 들린다. 아까 ‘MBC 라디오 캠페인 잠깐만’을 녹음할 때에는 또 세상 다정한 목소리더라.(웃음)
상황에 맞는 목소리에 대해 고민하는 게 본능적으로 있는 것 같다. 대본을 받으면 여기에는 이런 톤이 맞겠다 하는 생각을 먼저 한다. 프로그램에 따라 필요한 목소리가 몇 가지 있는 게 내 나름의 무기다.

라디오한 지 딱 일주일이 됐다. 해보니 어떤가.
긴장을 많이 하는 편이라 방송할 때 늘 떠는데 라디오 첫날에는 티를 안 내려고 노력했다. 안 떠는 척. 자신 있는 척. 잘 하는 척. 거의 처키다.(웃음) 라디오가 최고인 게, 허해진 나를 채워주는 매체다. 다른 방송에서는 소모되고 지칠 때도 있는데, 거기서 허해진 마음을 라디오로 채워 가는 것 같다.

아침 7시부터 9시까지, 두 시간 동안 혼자 진행하고 말을 어떤 방송보다 많이 해야 하는데 더 지치는 게 아닌가.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궁극적으로는 마음을 채워가게 되더라. 라디오 스튜디오에 들어서면서부터 괜히 마음이 놓인다. 제작진이 주는 가족적인 분위기도 한몫하는 것 같다. 다른 방송은 제작진과 일로 만난 느낌이 있다면 라디오는 가족적이다. 이분들이 나에게 마음으로 다가오니까 나도 금방 다 열어놓고 대하게 되더라. 일로 만난 사이가 아닌 것 같다.

일주일 만에 가족이 된 건가. 안 그래도 스튜디오 밖에서 하준이(장성규의 아들 이름, 주말이라 아빠의 라디오 스케줄에 따라왔다고-편집자.)가 제작진들과 너무 잘 놀고 있어서 가족인 줄 알았다.(웃음)
라디오가 내게 또 하나의 가족을 만들어준 것 같다. TV 프로그램은 몇 년을 해도 아직 어색한 사이도 많고, 일 끝나면 바쁘게 “바이바이” 하는데 라디오는 매일 아침 끝나고 시간이 되면 구내식당에서 같이 밥도 먹고 대화도 많이 나눈다. 개인적인 고민도 털어놓으면 진심으로 들어주고 위로해주고. 울타리란 느낌을 여기서 받는다. 사실 최근에 일을 많이 하면서도 ‘이게 맞는 건가’ 하는 고민이 있었다. ‘내가 누굴 위해 프로그램 8개, 10개씩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바쁜 게 감사하면서도 너무 빨리 소진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했다. 그간의 내가 가진 그런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꿔준 게 라디오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중요시하는 것 같다.
그런 걸 좋아한다. TV 프로그램 할 때에도 촬영 끝나고 억지로라도 회식 자리 만들어서 같이 밥 먹자고 하는 편이다. (후배들이 싫어하지 않나?) 아, 내가 아직 MC 중에 막내 라인이라 형들에게 밥 먹자고 먼저 얘기하는 것뿐이다.(웃음)

프리 선언 6개월 차라고 하면 다들 놀랄 정도로 빠르게 정점에 올랐다.
(고개를 숙이며) 아이고, 아니다.

그래서 매일 하는 아침 라디오를 선택하는 게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거다. 어쩌면 다른 방송에 매진하는 게 방송인 장성규에게는 더 이익이 아니었을까.
인기나 돈이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면 안 했을 거다. 아나운서가 되고 방송을 시작하면서부터 언젠가 라디오를 하고 싶단 마음이 있었다. JTBC에 있을 때에는 라디오국이 없어서 내심 ‘나는 다른 방송은 많이 해도 라디오는 못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나오자마자 MBC에서 기회가 온 거다. 일단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에 충실하고 싶었다. 내 상황이 바뀌었다고 과거의 내가 가졌던 꿈을 무시하고 싶지 않았다. 예전의 장성규가 보내왔던 모든 시간이 응집된 게 지금의 나이고 그때의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을 이제 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건데 ‘아, 나 이제 먹고살 만하고 바쁘니까 라디오 못해.’ 하는 건 과거의 장성규에게 미안한 일이란 생각을 했다. 그리고 워낙 소통을 좋아한다. 상대방의 피드백이 바로 오는 것도 좋아하고.

인스타그램도 보면 ‘소통왕’이다.
SNS를 하는 것도 소통하는 게 좋아서다. 거기는 내 공간이지 않나. 내 편들, 그분들과 대화를 나누는 게 재밌다. 내가 올린 글에 댓글을 달아주시면 나도 거기에 대댓글을 달고 그런 과정 속에서 어떤 분들은 ‘댓글 달아주셔서 고마워요.’라고 하는데 사실 내가 더 고맙다. 나는 관심받는 거 좋아하고, ‘관종’이라고 스스로 말하고 다닌다. 내가 관심받고 싶어서 하는 SNS에 사람들이 댓글 달아주고 즐거워해주는데 더 이상 바랄 게 뭐 있겠나. SNS가 글이나 사진으로 소통을 하는 창구였다면 라디오에서는 목소리로 소통을 하는 거다. 내가 하는 말에 청취자가 대답해주고, 또 청취자의 고민에 내가 같이 고민해주고. SNS와는 또 다른 방식의 소통이라 즐겁다.

아침 7시에 시작하는 방송을 하려면 새벽부터 움직여야 한다. 힘들지 않나.
아. 몸은 너무 힘들다.(웃음) 근데 그래서 용기를 낸 부분이 있다. TV 프로그램을 많게는 10개까지 했는데 라디오를 하면 나도 물리적인 한계가 있으니 선택을 하게 되지 않겠나.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기였다. 라디오를 하는 대신 TV를 세 개 정도 줄이자, 그래야만 가족에게도 미안하지 않겠다 하는 생각을 가지고 다른 선배들에게도 조언을 구했다. 그랬을 때 한 분이 “성규야, 그건 아니다. 아직은 네가 TV에 집중할 때야”라고 조언을 해주셨다. 그런데 그 말에 흔들리지 않더라. 원래 귀가 얇아서 선배들 말에 휘청휘청 잘 흔들리는데. 선배의 조언에도 속으로 1초도 흔들리지 않는 걸 보고, 라디오를 하고 싶다는 내 마음이 굉장히 뿌리 깊다는 걸 느꼈다.

첫 방송에서 라디오 DJ가 꿈이었다고 말했다. 어떤 방송을 들으면서 꿈을 꿨나.
이문세 형님의 <별이 빛나는 밤에>. 아주 어릴 때부터 네 살 위 누나랑 들으면서 자랐다. 너무 멋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상상도 못했다. 꿈을 가지기에는 나에 대한 데이터가 부족했고, 사실 나는 아나운서 준비도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편이었다. 뒤늦게 아나운서를 꿈꾸면서 ‘언젠가 라디오도 해야지.’ 그렇게 생각했다.


MBC <신입사원>의 도전자였고, 그때 떨어진 후 JTBC에서 아나운서 일을 시작했다. 8년 만에 다시 MBC로 돌아온 셈이다. 첫날 스튜디오 들어올 때 감회가 달랐겠다.
대박이었다.(웃음) 뭐든 긍정적으로 해석하려고 하는 성격이라, 그때에도 ‘떨어졌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대신 다른 기회가 생겼다고 생각해왔다. <신입사원>이 있었기에 JTBC에서 나에게 기회를 준 거니까. <굿모닝 FM> 하러 온 첫날에는 이런 느낌이었다. 누군가 ‘너 지금 되면 버릇 나빠져.’ 하고 어디론가 나를 보냈는데 8년 만에 내가 성장해서 ‘이제 됐다. 다시 와라.’ 한 거다. 근데 나는 그때 MBC에 합격을 했더라도 그 상황을 베스트라고 여기고 열심히 했을 거다. 나에게 주어진 상황을 베스트라고 여기지 못하면 안 될 것 같다. 물론 그땐 서운했을 수도 있다. “두고봐” 이런 마음도 내심 있었을 거다. 근데 그런 서운함도 지금은 감사하다.

라디오 들으면서 느낀 게 그동안 <워크맨>에서 일반인들을 직접 만나고 길바닥에서 토크했던 게 라디오 진행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더라.
맞다. 정말 도움이 된다. <워크맨>의 장성규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라디오를 들을 때 기대하는 건 “또 어떻게 선을 넘을 것인가. 어떻게 시원한 멘트를 해줄 것인가.”일 것이다. 예를 들어 상사한테 마음으로만 하던 얘기를 누가 입 밖으로 대신해줄 때 느껴지는 시원한 대리만족. 그런 속 시원함을 좋아하시는데, 라디오에서 그런 것을 기대하셨다면 실망스러울 수 있다. 오히려 라디오 시작할 때 “성규가 <워크맨> 하는 것처럼 라디오 생방송하면 큰일날 텐데.” 걱정해주는 분도 많았다. “조심해라, 한방에 훅 갈 수 있다.” 그런 걱정을 많이 들었다. 그런 걱정을 들으면 ‘아 사람들이 <워크맨>의 장성규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다른 곳에 있을 때의 장성규까지 걱정해주시는구나.’ 싶어서 고마웠다. 내가 라디오에 맞게 다른 모습을 보여드려도 좋아해줄 준비가 된 분들이구나. 괜히 라디오에서 무리해서 선 넘으면 안 되겠다, 그런 생각을 했다. <굿모닝 FM>은 생방송이고 나는 라디오가 처음이다. 그 어떤 매체보다 듣는 사람과의 공감이 중요하기 때문에 내가 더 열심히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청취자와 전화 연결이나 고민 상담 코너도 많은데.
그런 면에서 내가 교만했다는 걸 깨달았다. 고등학생 때 또래 상담반도 했었고 평소 낯선 사람과의 소통에는 자신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그게 아니더라. (또래 상담반?) 어른들에게 얘기하기 어려운 걸 또래의 친구에게 상담하는 건데, 상담교육도 이수하고 이후에 그런 경험들도 있었기 때문에 내가 타인과의 대화에는 꽤 익숙한 편이라고 여겨왔다. 그때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청’이라고 배웠다. 나는 늘 잘 듣고 상대의 말에 잘 대답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교만했던 거다. 라디오를 해보니 내가 놓쳐왔던 각자의 입장들이 있더라. 그걸 통해 또 나도 배우는 거다. 그런 교만함을 내려놓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청취자들 앞에서는 내가 뭘 숨길 수가 없다. 청취자들도 내가 진심이 아니면 다 느끼신다. 지금은 내 부족한 부분도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고, 앞으로 채워가고 성장해가는 걸 보여드리고 싶다.

둘째가 생긴 소식도 라디오에서 가장 먼저 전했다. 그런 이야기를 SNS나 다른 방송에서 하지 않고 라디오에서 한 것에서도 애정이 느껴진다.
아기 관련해서는 설레발치지 말자, 라고 아내와도 얘기해왔다. 처음 소식을 알았을 때 아내가 ‘인스타그램에 아직 올리지 말라.’고 했었다.(웃음) 첫 방송 때 아들이랑 깜짝 전화 연결을 하고 집에 들어갔는데 아내도 너무 좋아했다. 그리고 내가 정말 즐기면서 방송을 하는 게 느껴졌다고 하더라. 아내한테 “내가 둘째 얘기를 하게 되면 라디오에서 말할게.”라고 허락부터 받았다. 그런데 다음 날 마침 임신 12주라고 사연을 보내주신 청취자가 있었다. 망설임 없이 자연스럽게 우리 아기 이야기가 나왔다. 아내한테 허락을 받아놔서 마음이 편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비슷한 상황의 청취자 사연을 듣는데 너무 감사하고 기뻐서 내 아기 얘기도 나왔다.

유튜브 채널 <워크맨> 구독자가 280만 명이 넘었다. 100만 넘긴 지가 어제 같은데 정말 빨리 성장했다.
너무 감사하다. 안 믿기고, 꿈같고 그렇다. 방송인 출신의 유튜버 가운데 구독자 수가 가장 많았던 게 백종원 선생님이었는데 오늘부로 아마 넘어섰을 거다. 어제 확인했을 때 283만으로 백종원 선생님 채널이랑 같아서 캡처도 해놨다. 영상 조회 수도 ‘에버랜드’ 이런 건 천만이 넘었다. 너무 기쁘면서도 ‘어떻게 이런 일이 있지?’ 싶어 신기하다. 친한 유튜버 동생들이 많은데 유명한 크리에이터 친구들도 “형, 이건 말도 안 되는 속도야.”라고 하더라.

인기 요인이 뭘까.
제작진 덕분이다. 내가 치는 개그를 제작진이 잘 포장해준다. 나는 가끔 분위기 싸해지는 말도 많이 하는데 그걸 유머로 잘 편집해준다. 아마 장성규에 대한 관심이 있었던 제작진이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나 싶다. 메인피디인 고동환 PD가 경력직으로 JTBC로 오고 3일 만에 나와 첫 미팅을 했다. “저, 형이랑 하고 싶어요.”라고 하면서 내가 뭘 좋아하는지 묻더라. “나는 현장에서 부딪치는 게 잘 맞아.”라고 했더니 “안 그래도 그런 거 준비하고 있다.”고 하더라. “<체험 삶의 현장> 같은 거야?”라고 했더니 “맞다”고. 예전에 다른 영상으로 ‘포장마차 토크’를 찍어둔 게 있어서 보여줬더니 “그런 거 할 거예요.”라고 하더라. 지금 <워크맨>은 내가 예전에 했었던, 길에서 하는 그런 방식의 방송을 재미있게 편집해서 확장성이 더 커졌다.

원래부터 웃기는 편이었나. <김국진의 현장박치기> <씨유세끼>를 보면 듣는 사람의 반응을 고려한 개그가 많다. 이럴 때 이런 말을 해야지 그런 연구를 하는 편인가.
원래 학창 시절부터 반 친구들 웃기는 걸 좋아했다. 웃기고 싶어서 안달 난 스타일이었다.(웃음) 제가 수업 시간에 한마디 하면 애들이 빵 터지고 그런 걸 즐겼다. 이건 사실 전혀 안 웃긴 건데, 예를 들자면 중학생 때 선생님이 ‘너희 CF 알지? CF가 뭐의 줄임말일까?’ 해서 내가 ‘코닥필름’이라고 했다. 코닥은 사실 K로 시작하는데, 애들은 그게 웃긴 거다. 수업 시간에 그런 드립을 치면 앞에 나가서 혼나곤 했는데, 혼나는 것도 웃기게 혼나서 애들이 재미있어 했다. 근데 선생님들한테 버릇없는 학생은 아니어서 그런 유머를 선생님들도 좋아하셨다. 고등학생 때 사회 선생님이 앞으로 나를 불러내 때리려고 손을 드셨는데, 내가 “죄송합니다. 안 그러겠습니다.” 하면서 선생님 손에 하이파이브를 했다. 어떤 학생이 때리려는 선생님한테 하이파이브를 하겠나. 애들은 웃겨 죽는 거다. 또 미워할 수가 없게 하니까 선생님도 웃고 그냥 넘어가시는 일도 많았다.

‘선을 넘는다’라는 게 예능인 장성규의 캐릭터가 됐다. 하지만 진짜로 선을 넘을까 봐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그런 걱정을 해주시는 분들께 감동도 받는다. 그래도 나를 제일 가장 걱정하는 건 나 자신일 거다. 내가 우려가 가장 크지 않겠나.(웃음) 사실 지금은 개그를 못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다. 나를 지키고 싶은 욕심이 크기 때문에 내가 사랑하는 장성규가 바닥으로 가는 걸 원하지 않는다. ‘성규야 천천히 가.’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다. 내가 원했던 것보다 너무 빨리 여기까지 와버렸다.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고. 정신 차려야 하는 시기라는 생각도 했다. TV 프로그램도 애써 줄이면서 라디오에 집중하고 싶은 건 나에게 시간을 주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자신과의 대화가 너무 없었던 거다. 라디오 하면서 나 자신과 직면하게 됐다. 많은 대화를 할 것 같다. 나 자신과.

미디어를 내다보는 편인 것 같다. 유튜브를 가장 빨리 시작하고 SNS도 잘 활용했고.
멀리 내다보며 큰 그림을 준비하는 스타일은 아닌데 직관적으로 그런 감은 있는 것 같다. 이거 지금 해야 될 것 같은데? 이런 느낌들. 다른 분들도 생각은 할 거다. 그런데 내 경우엔 운이 좋았고 더불어 행동을 좀 하는 편이었다. 나도 생각만 하고 흘려보낸 게 무수히 많다. 그런데 정말 ‘지금 아니면 안 되겠다.’ 싶을 땐 과감하게 시작하는 편이다. 특히 내가 사랑하는 방송 일에 있어서는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하고 결단을 내리는 편이다.

JTBC에서 일할 때 아침뉴스를 그만두고 유튜브 <짱티비씨>를 시작하면서 손석희 사장에게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다.’고 했다고 들었다. 장성규가 생각하는 크리에이터는 무엇인가.
피디님, 작가님이 진정한 크리에이터라고 생각하고 나는 플레이어다. 그 당시에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단 게 명분은 아니었고, 도전하고 싶다는 게 명분이었다. 새로운 길을 열고 싶었다. 나는 최고보다 최초에 방점을 두는 스타일이다. 당시 현역 아나운서 가운데 유튜브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걸 내가 한번 열어보자.’는 마음이 있었다. 조금이라도 젊은 감성이 있을 때 요즘 친구들이랑 부딪쳐보고 싶었다. 그래서 <짱티비씨>도 시도했던 거다. 피디님이나 작가님, 내가 생각하기에 크리에이터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 속에서 그들이 구현하고 싶은 것을 100% 구현해줄 수 있는 플레이어가 되고 싶다. 그게 또 하나의 크리에이터일 수 있겠다 싶다.

Writer 김송희

Photo Providing MBC

  • 사기병

    지금도 시간은 흐르고, 나는 살아 있다.

  • 컬쳐

1 2 3 

다른 매거진

빅이슈의 뉴스레터를 구독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