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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14 인터뷰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여캐들> 기획자 전난년

2019.11.06 | 추억의 그 만화, 여성 캐릭터들이 바지를 입는다면?


추억의 그 만화,
여성 캐릭터들이 바지를 입는다면?



얼마 전 트위터가 추억의 만화 속 여성 캐릭터들로 물들었다. 기억 속의 긴 머리와 분홍색 드레스, 요술봉 대신 짧은 머리에 안경을 쓰고, 바지를 입은 모습으로.
일명 '탈코르섹 합작'으로 알려진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여캐들그우여>은 서브컬쳐계에서 흔한 '창작물 합작' 형태로 이루어진 기획이다. 그림을 그리고 즐기던 기획자 '전난년활동명'은 기존 만화 속의 성역할 고정관념이 반영된 여성 캐릭터 대신, 새로운 여성 캐릭터를 디자인할 창작자들을 모았고, 총 73명의 창작자들에 의해 88명의 여성 캐릭터가 새롭게 탄생했다.
지금도 어딘가에선 새로운 모습의 여성 캐릭터가 창작자들에 의해 만화 속 모험을 떠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우여>를 기획한 전난년을 만났다.

<그우여>를 기획하게 된 계기에 대해 설명한다면.
원래 '추억팔이' 콘텐츠에 관심이 많았다. 어렸을 때 접했던 문화나, 그때 한창 봤던 애니, 드라마, 좋아했던 노래 등을 즐기고 있던 와중에, '추억의 만화'를 즐길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특히 페미니즘을 알아가게 되면서, 창작물 안에서도 특히 여성 캐릭터로만 합작을 하면 어떨까 생각해보았다. 예전 만화 속 여성 캐릭터를 지금 보니 아쉬운 점이 많았다. 성적 대상화가 되지 않은 모습의 여성 캐릭터 합작을 기획하고 싶었고, SNS에 모집 공지를 올렸더니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여주었다. 홍보가 잘 돼서 신청모집 기간 이틀 만에 모집 인원이 마감되었다. 지난 7월 말 공지를 올린 후, 8월 말까지 그림을 받았다. 최종적으로는 88개의 여성 캐릭터가 탄생했다.

합작 과정에서 활발한 의견 교류가 있었을 것 같다.
직접 그림을 볼 기회가 생기면 그림에 대해 제안하기도 했다. '이런 자세로 고치면 어떨까?' 하고. 여성 게임 캐릭터를 생각하면 쉽다. 옷 전체에 라인이 잡혀 있고, 발끝이 구두를 신은 듯 서있다. 만화도 마찬가지다. 그런 지점을 함께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다. 우리도 '여성 캐릭터는 이래야 한다.'는 선입견에 익숙해져서 있어서, 동작과 자세 수정에 초점을 맞췄다. 무기를 사용하는 경우도 비슷하다. <세일러문>이나 <웨딩피치>를 떠올려보면, 여성 주인공들의 무기는 장식적이고 무해해보인다. 이걸로 과연 적을 무찌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이런 지점도 재해석해보면 어떨까 논의했었다. 서로 디자인을 보면서 영향을 받고 공부가 많이 됐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많이 주고 받았다.

예전에는 재밌게 봤는데, 지금 보니 이상한 애니메이션도 있었을 것 같은데.
거의 모든 것이 그렇다. 정말 작년까지만 해도, 여성 캐릭터와 여성 아이돌을 너무 좋아했다. 한마디로, 코르셋을 너무 사랑했다. 어릴 때도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공주들을 얼마나 좋아헀는지 모른다. 치마, 긴 머리, 하이힐 등이 멋있어 보였다. 그 영향인지 나도 어린 나이에 화장을 시작했다. 너무 좋아해서 따라하게 되었던 것 같다.
마음이 아픈 건 예전엔 '명작이다'라고 생각했던 작품에서 여성이 배제되고 있거나, 여성이 외형적으로 섹스어필만을 하는 캐릭터로 연출되는 점을 발견할 때다. 지금도 영화 연출이나 메시지는 좋다고 생각하지만, 여성 캐릭터를 허투루 소비하는 작품을 예전만큼 좋아할 수 없다. 이야기나 기타 요소가 취향이 아니더라도 여성 캐릭터를 건강하게 보여주는 작품을 많이 소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번 합작을 두고, 캐릭터의 외형을 '남성성'이 강화된 형태근육이 있고, 머리가 짧은 형태 등로 리디자인한 것이 단순한 변화에 그친다는 비판도 있다.
'왜 캐릭터들이 다 머리카락이 짧냐.'는 물음에 대해서는, 머리가 길고 화장이나 옷차림으로 꾸민 여성이 '정상'이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반대 지점을 부각했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만화의 장점은 좀 더 극단적으로 표현이 가능하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그우여>합작도 현실에 없는 진보적 디자인을 극대화해서 표현했다. 일관된 이미지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있던 캐릭터 이미지들이 오히려 일관되어 있다는 점을 드러낸 것이라고 생각해주면 좋을 것 같다.

그림 두목 / <디지몬 어드벤처> 엔젤우몬

그림 유수 <웨딩피치> 릴리

그림 냥남 / <원피스> 나미

그림 전난년 <카드캡터 체리> 유체리



최근 보는 만화 중 추천해줄 만한 작품이 있다면?
근래 제일 재밌게 본 건 딜리헙에서 연재되는 '고사리박사' 작가의 <극락왕생>이다. 이 웹툰은 아주 재씨기도 하고, 다양한 여성 캐릭터가 등장한다. 종교적 세계관을 품고 있지만 한국에서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또, 미디어에서 만들어내는 '연애'가 허상이라는 점도 이야기한다. 건강한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인 듯해 재미있게 보고 있다.

평소에 어떤 프로젝트나 작업을 하면서 보내는지 궁금하다.
아직은 휴학생이지만, 건강한 여성 캐릭터를 그리고 싶어서 연습을 많이 하고 있다. 전공이 디자인이라, 작업을 할 때도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고민을 하고자 한다.

건강한 콘텐츠가 무엇인지에 대해 많이 고민하는 것 같다.
그럴 수밖에 없는게, 나는 탈코르셋 자체도 미래세대 친구들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술 학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 초등학교 저학년인 경우 성역할 고정관념이 정말 심하게 자리 잡혀 있다. 여성을 그릴 때 무조건 속눈썹을 그리고 머리카락을 길게 그리고, 치마를 입힌다. 색깔도 빨강, 핑크, 보라색이 전부다. 수정 방향을 제안해도 거절한다. 한번은 2학년 학생이 수영장을 그리고 있었다. 여성 인물에게 비키니를 그려주더라. 그게 예쁘다고. 당장 아이들이 입고 오는 옷만 봐도, 여아들은 머리에 큰 리본이나 머리띠를 꼭 한다. 그림을 그릴 때 흘러내려 굉장히 불편한데도 말이다. 중학생들은 화장을 강박적으로, 열심히 한다. '생얼'이면 마스크를 착용한다. 수많은 미디어가 그 학생들의 취향을 만들었을 것이다. 작년에는 나도 화장을 하고 머리를 길렀다가, 지금은 일부러 화장을 하지 않고 출근을 한다.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선생님이지만 조금이라도 긍적적인 영향을 주고 싶다.

<그우여> 페이지에서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구성이 재미있다. 편성표, 사탕, 색연필, 불량식품 등. 또 자세뿐만 아니라 옷차림이나 그림체에도 변화가 많다.
이러한 변화를 주고자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기획 자체에 레트로함을 섞었다. 신문 편성표를 보면서 동그라미 치고, 학교 끝나면 신발주머니 던지고 TV 앞에서 본방을 기다리던 느낌을 살리고 싶었다. TV 페이지에는 옛날 화면처럼 노이즈를 넣었고.
최근 나온 작품일수록 노이즈가 적도록 연출했다. 비포 애프터는, 기획 초기 단계에서부터 넣고자 헀었다. 원작을 모르는 사람들도 이 합작을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캐릭터의 외형뿐만 아니라 스토리 자체가 여성 혐오적인 경우가 굉장히 많다. 강한 왕자와 연약한 공주의 구도 등.
얼마전 <세일러문>을 보는데, 결정적 순간마다 턱시도가 나와서 모든 것을 해결하더라. 오랜 시간 그런 이야기에 노출되었다는 게 <그우여>를 보고 실감이 났다.

나도 어릴 적 <웨딩피치>의 '릴리', <세일러문>에선 '넵튠'같은 캐릭터를 좋아했다. 변신 소녀물을 좋아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불편한 지점이 너무 많다. <웨딩피치>의 경우, 사랑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 남성을 여성과 짝지어주고, 그게 정답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사랑의 힘이 위대하다.'는 식으로 보는 사람을 설득하는 것이다. 모두가 연애와 결혼을 강요한다. 특히 <웨딩피치>의 캐릭터 '사루비아'의 경우, 등장했을 즈음에는 독자적으로 활동하다가, 마지막엔 결국 남성과 짝을 이룬다. <그남자 그여자의 사정> 주인공 캐릭터의 경우, 학교에서 예쁨을 유지하기 위해 시력이 좋지 않은데 렌즈를 꼬박꼬박 끼는 설정이 있다.
그 캐릭터에 안경을 씌워준 참여자가 있었다. 이번 합작에서 그런 디테일들이 정말 고마웠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헀던 여캐들(그우여)'이 '탈코합작'으로 많이 화제가 되고 알려졌다. 이번 기획이 어떤 지향을 가지고 있는지 와 닿는 명칭이다. 전난년 님이 생각하는 '탈코'는 무엇일까?
처음에는 '그우여'로 이름을 지으면서 너무 평범한 제목인가 싶어 고민이 되었지만, 많이 알려져서 좋다.
내가 생각하는 '탈코르셋'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억압받는 여성들의 모습에서 탈피하는 행위이다. 코르셋은 여러 모습이 있다. 외향뿐만 아니라 말투, 행동, 글에서 느껴지는 '애교스러운'말투 등. 결국 여성 스스로를 무해해 보이게 하거나 의도치 않게 성적 대상화가 되는 지점에서 벗어나기 위한 행동들이 탈코르셋 운동의 일환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합작을 기획하면서 말하고 싶었던 의도는 잘 전달되었다고 생각하는지.
페미니즘 의제에 관심 가진 살마들만 이번 합작을 보고 끝날 줄 알았는데, 예상 외로 널리널리 퍼져나가고 논쟁도 벌어졌다. 그것을 보면서 '탈코르셋'이라는 단어를 사람들이 자주 이야기하고, 이 캐릭터에 대해 논쟁이 벌어진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남초 커뮤니티에서도 비난을 받고 있었는데, 정말 재밌는 댓글을 봤다. "하나도 안 꼴린다." 정말 시사하는 바가 큰 댓글이다. 그런 반응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기획이었다고 생각한다.

콘텐츠 제작자로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제작자 및 작가들에게 제안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평소 갖고 있는 생각 중 하난데, 성차별적 요소가 계속 팔리니까 넣게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콘텐츠를 계속 만드는 건 너무 게으른 창작자의 행동 아닐까 싶다. 여성 캐릭터를 잘 고민해서 만든, 여성 창작자들의 콘텐츠를 보면 잘된 사례가 있고 충분히 재미있다. 캐릭터와 이야기가 건강하다고 해서 재미가 없는 게 아니다. 창작자로서 안주하지 않으면 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합작'이라는 형태로 많은 창작자가 함께 창작물을 기획한 것이 유의미하다. 함께 뜻을 모을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일단 추억의 요소를 가져왔다는 게 파급력이 컸고, 살마들의 마음을 울렸던 것 같다. 수가 적지만, 여성 서사를 소비하고 여성 작가를 응원해주자는 움직임이 크다. 반응이 좋았던 걸 보면서 많은 위로를 받았다. 합작 참여자 분들도 세상을 바꿔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조금씩이지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림 목목 <꼬마 마법사 레미> 도레미

그림 목목 <꼬마 마법사 레미> 오하나

그림 목목 <꼬마 마법사 레미> 장메이

그림 목목 <꼬마 마법사 레미> 진보라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여성 캐릭터들>은 이렇게 탄생했다!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여성 캐릭터들>의 타이틀을 노이즈가 들어간 TV로 표현해 어린 시절 사랑했던 만화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 TV 앞에서 기다렸던 설렘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사회가 여자아이에게 강요해온 분홍색이 아닌 파란색을 메인 컬러로 사용했고, 초등학교 시절을 상기시키는 줄넘기, 우유 급식, 불량식품 등의 소품들을 메인 페이지에 배치했습니다.

어린시절 보고 싶었던 프로그램을 신문의 방송 편성표를 보고 동그라미를 친 기억을 차례 페이지에 담아냈습니다. 여러 작품을 시대 순으로 나열해서 보는 사람마다 다른 자신의 유년 시기를 찾아볼 수 있게 했습니다.

페이지를 넘길 때 마다 리모컨으로 채널을 바꾸는 기분을 느낄 수 있게 했고, 캐릭터의 원래 디자인과 리디자인한 모습을 비교할 수 있게 같이 배치했습니다. 비교뿐만 아니라 원본을 알지 못하는 살마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TV 화면을 클릭하면 원본 그림이 리디자인한 그림으로 오버랩되는 연출을 했습니다.

황소연
그림제공 냥냠, 두목 목목, 유수, 전난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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