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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14 에세이

당신이 듣고 싶은 육아 리뷰

2019.11.06 | 나는 내 아이를 사랑한다.

미리 말해두지만 나는 내 아이를 사랑한다. 아이가 태어나 처음 예방접종 주사를 맞던 날 아이보다 내가 더 많이 울었고, 핸드폰에 '똥'폴더를 만들어 아이의 대변 상태를 기록하며 하루라도 대변을 거르면 항문이 막히기라도 한 것처럼 안절부절못한다. 가끔은 보고 있어도 보고 싶어서 잠든 아이 옆에 누워 아이의 사진과 동영상을 돌려보며 도둑 뽀뽀를 퍼붓곤 한다.

코너명은 '욕아일기'라고 씩씩한 계모처럼 적어놓고 왜 시시하게 자식 사랑이나 고백하고 있나 싶을 것 같은데, 이렇게 내 새끼의 모든 것이 특별하고 애틋한 와중에도 어느 순간 발작처럼 욕이 터지는 게 육아다.

몇 년 전 나에게 아이가 없던 시절, 결혼과 동시에 애를 가져 한동안 보기 힘들었던 친구를 부부 동반 모임에서 만났다. 그녀는 육아에 지친, 아니 화난 듯 씩씩거리며 식당에 들어왔고, 자리를 찾아 가방을 던지다시피 하며 "너희는 애 낳지마!"하고 소리 질렀다. 그녀가 쏟아내는 현실 육아의 똥맛 리뷰가 안타까워 위로하면서도 속으론 무슨 이런 엄마가 있나, 애 하나 키우는 게 그렇게 힘든가,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나는 얼마 뒤 아이를 가졌고 올해 낳았다. 그리고 이제 엄마로서 나의 싹수를 확인했다. 하여 깨달았다. 그때 그녀는 빌런이 아니라 내 인생의 복선이었다는 것을.

출산 후 원인불명의 고열과 두통, 심지어 대상포진까지 겹처 그야말로 죽을 고생을 했다. 몸에서 피와 오로를 쏟으면서 젖먹이고, 살기 위해 뭔가를 섭취한 후 혹은 먹다가 젖 먹이고··· 겁도 없이 모자동실을 예약한 바람에 여기가 산후조리원인지 지옥의 모델하우스인지 헷갈릴 정도로 힘들었다. 내가 도대체 나에게 무슨 짓을 한 건지 하루에도 수십 번 현타가 왔다. 무엇보다 가장 괴로운 건 모든 산모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식사 시간이었다.

"아이 얼굴만 봐도 힘들 걸 잊게 돼요.", "둘째는 사랑이에요. 꼭 낳아야 돼요", "자식은 정말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 같아요" 모두가 내가 꿈꾸던 '어머니'의 얼굴로 숭고한 모성애 만리장성을 쌓는데, 나는 공감할 수도 공격할 수도 없었다. 왜 나는 아이 미소 한 번에 체력이 리셋되는 엄마가 아닌 걸까. 마음 같아선 모조리 '진실의 방'으로 데려가 다들 진짜 진심이냐고 묻고 싶었다. 미운 엄마 새끼는 그렇게 혼자 도넛방석 없는 딱딱한 의자에 앉아 미역국에 머리를 처박고 한참을 울었다.

친정 엄마 찬스 한 번 쓸 수 없고 남편마저 해외 파견을 떠난 박복한 팔자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니 그냥 모자란 사람이라서 모자란 엄마가 된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6개월이 지난 지금, 아직까지 반전은 없다. 노동은 곤충류처럼, 식사는 포유류처럼, 수면은 조류처럼 하는 하루하루, 얼굴은 퀭하고 정수리는 휑한 나를 볼 때마다 유통기한이 끝난 사람이 된 것 같은 상실감과 자괴감. 여전히 나에게 육아는 행복하지만 미치도록 힘든 것이다.

나는 그냥 힘들기로 했다. 아이가 이유 없이 짜증내거나 울 때 나는 가끔 같이 소리를 지르며 운다. 잠은 오는데 애는 안자고, 할 일이 쌓여 미칠 것 같을 때는 바닥을 주먹으로 치며 욕도 한다. 어떤 날은 시간을 되돌리고 싶고 어떤 놈은 하염없이 밉고 그렇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당신만 그런 게 아니라는 거다. 좋은 엄마 말고 그냥 엄마도 충분히 힘들다. 그러니 맘 편히 힘들어 하자. 애써 행복하지 말자. 사실은 내가 듣고 싶은 말이다.

·사진 박코끼리
하나라도 얻어 걸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것저것 쓴다.
요즘은 일생일대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으며,
주로 참을 忍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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