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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15 에세이

스무 살, 미리 알았더라면 하는 것들

2019.11.27 |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 만들기


나는 우울증을 앓았다. 전보다
나는 더 겁이 많고 약한 사람이 되었으니
이것이 병의 상흔이려니 한다. 하지만
늘 그렇듯 상흔만 남은 건 아니다.
삶에 대한 고민들이 처절하게 쌓였고,
살아야 하는 이유들은 조금 더 강해졌다.
자, 그러니 우리 모두 우울증을
앓읍시다! 할 수는 없고 대신 내 고민의
결과들을 조금 나누고 싶다.




나는 어떤 사람이었느냐 하면, '낭만'과 '사랑'이 전부인 사람이었다. 사랑만 있으면 세상 두려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를 둘러싸고 지키는 지구는 베이비핑크색의 말랑말랑함이었다. '넘치게 사랑받는 나'에 거나하게 취했고 그것이 행복이라고 믿고 바라며 살았다. 그래서 나를 가장 넘치게 사랑해주는 착한 사람과 결혼했고, 결혼 후 나의 지구는 멸망했다. 남편은 날 변함없이 사랑했지만 동시에 본인의 가족도 깊이 사랑했다. 남편은 내가 원하는 대로 모두 맞추어 주었지만 몹시 괴로워했고,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괴롭히는 사람이 바로 나라는 사실을 견디지 못해 그만 병이 났다. 우울증이 정말 극심할 때는 온 세상이 회색이었다. 무기력증이 심해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버거웠다. 조금이라도 기운이 생기면 바로 아파트 난간에 매달렸다. 지금 죽어야겠다는 생각만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모두를 괴롭게 하는 것은 나고, 나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없으니 사라지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그때 나를 난간에서 내려오게 만들었던 것은 언제나 내 반려동물이었다. 무얼 아는지 고양이들은 구슬프게 울거나, 내 다리에 얼굴을 부비고 가르랑댔다. 그랬다. 벼랑 끝에 선 나를 살게 한 건 내가 지켜야 하는, 사랑해야 하는 작은 것들이었다. 내가 의존하고 기대던 거대한 사랑이 나를 극한까지 내몰았을 때, 나를 세워준 것은 내가 의존하는 작은 생명이었다.

내가 사랑받는 것, 인정받는 것을 최우선에 둔다면, 결국 나는 내 삶을 이끄는 고삐를 남에게 쥐여주는 셈이다. 그 고삐를 잡은 다른 사람이 흔들릴 때, 나의 지구는 무너지고 눈앞은 그저 흐리기만 하다. 그 막막하고 횡망하던 순간을 당신은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이 사는 이유들이 다른 사람으로 인해 흔들릴 수 없게 만들었으면 좋겠다.

당신이 사는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하다. 당신의 미래, 혹은 부모님의 기대, 당신이 이루어낸 성과일까? 그것도 아니면 덕질 중인 으뜸이? 사실 남과 전혀 상관이 없는 주체적인 어떤 것을 만들어내기란 힘들다. 그러니 일단 당신을 살게 하는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다 괜찮다. 대신에 그 모든 것이 흔들려도 당신이 설 수 있는 작은 이유들로 끊임없이 만들어두기를 권장한다. 중립은 누구나 흔들리고 사람과 감정은 결국 변한다. 그러니 가장 큰 기둥이 무너져도 견딜 수 있는 '잔잔바리'들이 당신의 삶 속에 늘 혼재하도록 만들어 두라. 사실 생각해보면 행복은 언제나 작지만 소중한 순간들로 촘촘하게 이루어지지 않던가.

사는 것은 언제나 중요하다. 특히 당신이 사는 것은 가장 중요하다. 그러니 이 중요한 일이 언제나 견고하고 또 견고하도록 오늘도 삶의 작은 이유를 하나 더 만들어 단단히 심어두자


영켱(팜프파알)

독립출란물<9여친 1집>,
<9여친2집>을 제작했고,
단행복<연애의 민낮>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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