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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17 에세이

길고양이 길남이가 버려졌다

2019.12.21 | 카라가 본 세상

길남이가 버려졌다. 보호자도 집사도 없이 길생활을 하는 길고양이가 버려졌다는 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일까 싶을 수도 있겠다. 애당초 길고양이를 가진 사람이 어디 있다고 ‘버렸다’는 말이 가당키나 할까.


뺑소니를 당했고, 묘생이 달라졌다
길남이가 이전엔 어떻게 살았을지 잘 모르겠다. 우리가 아는 길남이의 삶은 2016년 11월 중순에 횡단보도에 쓰러져 있던 것으로 시작한다. 길남이는 길을 건너다 뺑소니를 당한 듯했다. 길남이를 발견한 구조자가 카라 동물병원으로 데려왔다. 길남이는 골반도, 척추도 골절된 상태였다. 응급 수술을 진행했지만 하반신이 마비됐다. 길남이는 뒷발로 땅을 딛지 못한다. 그리고 평생 동안 하루 두 번씩 사람이 압박배뇨를 해줘야 한다.


구조자는 그 길로 잠수를 탔다. 그는 병원에 10만 원을 결제한 것으로 제 일을 다한 셈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손을 내밀 때마다 하악질하고, 할퀴고, 물어뜯는 고양이는 그렇게 카라에 남겨졌다. 그 누구도 원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가족이 되었다.


우리야 상황을 이해하지만 길남이는 얼마나 패닉이었을까. 길거리를 걷는 대신 병원의 입원장에 앉게 됐고, 스스로 대소변을 누고 은닉시키는 대신 사람의 손에 의해 소변을 보게 됐다. 대변이야 길남이가 움직이거나 소변을 뉘일 때 나오기도 했다. 자유로운 삶은 박탈당했고, 길남이는 끔찍한 별천지에 떨어진 기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혈투 끝의 평화
길남이의 보금자리는 카라 동물병원 한 켠의 입원장이 되었다. 길남이는 그곳에서 잠들고, 식사를 했다. 그리고 카라 동물병원의 선생님들과 활동가들은 기회가 될 때마다 방광을 짜주고 담요로 길남이를 돌돌 말아 품에 안았다. 그리고 이마를 긁거나 등을 토닥였다. 이 애가 어서 우리에게 마음을 열어주길 바라면서. ‘우리는 너를 해치지 않아. 너는 좋은 고양이고, 우린 털 없는 큰 고양이야… 우리 피 보지 않고도 사이좋게 지낼 수 있어.’

길남이를 안을 수 없을 땐 눈키스를 했다. 길남이는 하악질로 답변했다. 보답받지 못하는 사랑이라도 괜찮았다.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도 성숙한 사랑을 ‘주는 것’이지 받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하지 않던가. 우리는 길남이를 사랑했고, 길남이만 무사하고 안전하다면 괜찮았다.

마법 같은 순간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 길남이가 하루아침에 골골송을 부르는 애교쟁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모르겠다, 그동안 ‘인간을 믿어도 될까, 아닐까’ 갈등이 많았다가 마음을 정한 건지, 아니면 간밤에 문득 깨달은 건지. 중요한 건 만난 지 2년 즈음해서 길남이가 제 삶을 인정하고 우리 품에 기꺼이 안기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이 기특한 고양이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너의 짙은 행복을 빈다
길남이가 우리에게 버려진 게 아니라 지자체 보호소에 버려졌다면, 이라는 가정을 가끔 해본다. 교통사고를 당한 길고양이들이 지자체 보호소에 입소하는 모습을 종종 목격하고, 그곳에서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모습까지 목도하기 때문이다. 애당초 길고양이는 지자체 보호소 입소 대상도, 야생동물로서의 치료 대상도 아니다. 이 험한 세상에서 오롯이 사각지대에 선 길고양이들은 누구에게 보호를 청해야 하는 걸까.

바깥세상의 아픈 이야기와는 별개로 길남이는 요새 휠체어 타는 연습을 하고 있다. 병원 곳곳을 자유롭게 누비는 것을 기대했는데, 휠체어가 낯선지 불편한지 제 입원장을 향해 갈 때만 움직여서 좀 아쉽다. 그래도 길남이가 우리 품에서 수많은 날들을 하악질했던 것처럼 지금도 새로운 세상에 적응 중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언젠가는 문득 씽씽 달려주지 않을까.

길남이는 우리와 함께 두 번째 삶을 시작했다. 길남이로부터 우리는 삶의 기쁨을 얻었고, 인내와 사랑의 쓰고 단맛을 배웠다. 창문에서 바람과 햇살을 느끼는 길남이, 유독 아름다운 수염을 유려하게 흐트러트리는 길남이, 반짝거리는 두 눈이 너무 예쁜 길남이. 그가 오래오래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수명이 다해 우리 품에서 무지개다리를 건넌 뒤에는, 우리가 죽어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 그 입구에서 마중을 나와주면 참 좋겠다.

김나연
털동생을 먹여 살리는 중.
동물권행동 카라 활동가.

사진 동물권행동 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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