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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19 컬쳐

겨울하면 생각나는 그 영화, 그 드라마

2020.01.23 | 방구석 1열에서 여는 나만의 영화제, 드라마 시상식

추울 때에는 방구석에서 귤 한 봉지와 주전부리를 준비하고 전기장판 위에 앉아 모니터로 나만의 영화, 드라마 축제를 연다. 물론 작은 빔프로젝터가 있어서 벽에 스크린을 만들어서 본다면 더욱 방구석 영화제다운 맛을 더할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럴 때에는 안 본 영화나 드라마를 새롭게 시도하기보다 이미 몇 번이나 봤던 것을 다시보기 하게 된다. 특히 '겨울'하면 떠오르는 몇몇 작품들이 내게는 있다. 그 겨울에 봤던 드라마를 다시 보면 그때 함께 있던 사람, 그때 있었던 사건, 그때 맡았던 공기의 냄새까지도 떠오른다. 그래서 기획했다. '겨울 하면 생각나는 그 작품'과 얽힌 추억.


< 겨울영화 >

딱 이맘때다. 수능이 끝났고, 수험생들에겐 잠깐의 자유 아닌 자유가 주어지고, 날짜를 쓸 때면 깜빡하며 전년도의 숫자를 썼다가 지우고, 지키지 못할 새해 계획을 세우고… 매해 비슷하지만 그래도 설렘을 감추지 못했던 스무 살이 되던 해의 겨울이 생각난다. 2020년은 쥐띠 해다. 5년 전 추운 겨울의 어느 날 영화관에서,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해도 생일이 지나지 않은 1월 생은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를 볼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타고난 노안 덕분에, 사람이 많지 않은 동네 영화관에서는 얼렁뚱땅 볼 수 있었다. 하루는 그런 나를 부러워하던 친구들 두 명과 함께 영화관에 갔다. 이상하게(?) 그날은 신분증 검사를 요청받았다. 우리는 신분증을 들고 다니지 않는다며 얼버무렸다. 그러자 검표하시는 분께서 '띠'가 어떻게 되는지 물으셨다. 우리는 당황했고, 한 친구가 "저 그런 거 외우고 다니지 않아요."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영화는 볼 수 없었다. 그 영화를 비롯해 나는 겨울이 되면 이상하게 더 생각나는 영화들이 많다.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세대를 정의하는 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밀레니얼 세대 동년배들을 '해리 포터 세대'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우리가 모르는 마법사 세계가 존재하고, 마법사 중에서도, 함부로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공포의 존재 볼드모트에 운명적으로 맞서 싸우는 해리 포터의 성장 이야기는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새 책은 항상 겨울에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완결될 때까지 매년 겨울을 손꼽아 기다렸다. 밤새 읽고, 수업 시간에 몰래 책상 밑에 두고 읽고, 집에 와서 또 읽고, 멈출 수 없었다. 마법학교 호그와트의 입학 초대장을 받을 수 있는 열한 살 생일에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영화화된 작품 중에 가장 좋아하는 건, 세 번째 시리즈인,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2004)이다. 흥행 성적은 시리즈 중에서 가장 낮았지만, 전작들과는 다른 결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그려낸 어두운 세계관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마법학교 호그와트의 근처 마을인, '호그스미드'의 온갖 과자를 파는 '허니듀크', 기상천외한 장난감으로 가득한 '종코의 장난감 가게'에 가는 것이 부러웠다. 영화도 10년에 걸쳐 만들어졌기에, 배우들의 이가 빠질 때 나도 같이 이가 빠지고, 배우들이 사춘기를 겪을 때 같이 사춘기를 겪었다. 그래서인지 내적 친밀감이 아주 높았다. 눈이 펑펑 내리는 날, 영화 속 주인공들이 '호그스미드'의 주점에 가서 버터맥주를 마실 때마다 함께하고 싶었다.


러브레터
내가 가장 처음 알게 된 일본어는 사랑한다는 말인 '아이시테루(あいしてる)'도 아니고, 감사하다는 말인 '아리가토(ありがとう)'도 아닌 '오겡키데스카(おげんきですか)'였다. 한 영화 때문이다. 짙은 주황색 니트를 입은 단발머리의 주인공이 설원에 서서, 먼 산을 향해 건강히 잘 지내냐며 '오겡키데스카'를 외치는 장면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1995)는 우리나라에서 지난해 크리스마스 다음 날에 재개봉하기도 했다. 영화는 '와타나베 히로코(나카야마 미호)'가 죽은 옛 애인인 '후지이이츠키'를 잊지 못하고 옛 주소로 편지를 보내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그와 동명이인이면서 중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사람이 편지를 받게 되면서, 상황이 알쏭달쏭하게 흘러간다.
강물이 바다로 흐르고, 구름이 되어, 눈으로 내리고, 녹으면 다시 강물로 흐르는 것처럼 세상은 모두 이어져 있다는 생각을 한다. 눈이 내리는 크리스마스, 합창단이 캐럴을 부르며 다니던 새벽에 나의 어머니가 태어나셨다. 어렸을 때 <러브레터>의 DVD가 집에 있었는데, 표지 속 주인공과 어머니가 너무 닮아서 신기했고 그래서 더욱 소중하게 보관했었다. 아끼고 아끼던 이 작품은, 어렸을 때부터 이야기만 듣다가, 청년이 되어서야 보게 되었다. 그날도 추운 겨울날이었는데, 꼬마일 때와 청년일 때의 나 자신이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하나 되었던 순간이었다.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
그런 날이 있다. 추석에는 더 먹어도 괜찮을 것 같고, 생일은 괜히 특별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크리스마스에는 왠지 더 너그럽고 따뜻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괜찮아, 오늘은 크리스마스니까'라는 마법의 주문을 외울 수 있기 때문일까?
곤 사토시 감독의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2003)은 크리스마스에 사연 많은 홈리스 세 명이 쓰레기 더미에 버려진 아이를 발견하면서 시작한다. 아이의 부모를 찾아줄지 말지, 처음부터 목소리를 높여가며 다투는 주인공들에게 말도 안 되는 우연들이 찾아온다.
겨울이 되면 왠지 생각이 더 많아지는 것 같다. 양말과 이불에 더 친해지는 계절이라 그럴까. 언제가 '선물이란 내가 상대방을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행위이다'라는 맥락의 문장을 읽은 후에 한동안 선물을 하지 못했었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변명을 하지만 남을 쉽게 실망시키기도 하니까. 한편으로는 사랑하는 마음이란, 설령 그것이 어설프더라도, 선물처럼 전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알 수 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한다, 고맙다' 같은 말들이 서로에게 진심으로 통한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영화를 보고 온 세상이 크리스마스처럼 느껴졌다. 만날 줄 몰랐던 우연처럼 뜬금없이, 소중한 사람들에게 사랑한다는 문자를 보냈다. 날씨는 춥지만 낯은 뜨거워졌다. 그래도 괜찮다, 크리스마스 같은 영화를 봤으니까요.

조은식


< 겨울드라마 >

올 겨울은 평년보다 따뜻해 눈보다 비가 잦았다. 흰 눈 소복한 겨울 풍경이 그리워지는 요즈음. 겨울과 닮아 있는 겨울 드라마를 모아봤다. 집에서 뒹굴뒹굴하며 겨울 감성을 만끽하고 싶다면? 냉큼 세상에서 가장 편한 옷을 입고 포근한 이불을 준비하자. 그리고 겨울 드라마를 정주행할 차례다.


욘사마・지우히메 신드롬, <겨울연가>
윤석호 감독의 사계 시리즈 중 하나이자 겨울 드라마의 대명사 <겨울연가>다. K드라마를 선도한 <겨울연가>는 지금 봐도 역시 겨울의 명작답다. 그 시대였기에 가능한 오글거리는 장면이나 대사, 촌스러운 것조차 매력으로 소화되는 영상미. 어린 시절 첫사랑으로 만난 남녀, 사고로 헤어진 후 기억상실증에 걸린 남자 주인공, 세월이 지나 만났지만 서로를 오해하고 엇갈리는 남녀. 로맨스의 온갖 클리세가 난무하고, 조금만 대화를 하면 풀릴 것들도 이들은 꼭 서로 바라만 보다가 눈물만 흘린다.(아니, 왜! 말을 못해!) 하지만, 그 시대였기에 가능했을 정서와 그래서 더 애틋함을 자아내는 음악과 영상, 배용준과 최지우의 연기는 이게 '옛날 드라마'이기에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을 잔상들이다. 특히 눈 쌓인 메타세쿼이아 숲 아래, 눈사람끼리 뽀뽀하는 장면은 이제는 패러디가 난무해 상상만 해도 웃길 지경이다. 이 장면의 주요 촬영지였던 남이섬은 여전히 관광객으로 붐빈다. 팬들이 <겨울연가>를 그리워하고 잊지 않은 탓이다. 감정 몰입에 있어 류가 부른 <겨울연가> OST가 한몫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는 18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명불허전이다. 피아노 반주가 시작되면 왠지 "준상아! 유진아!"를 외치고 싶어진다.


미사 앓이 is back, <미안하다, 사랑한다>
"밥 먹을래 나랑 살래? 밥 먹을래 아니면 나랑 같이 죽을래?" 차무혁(소지섭)이 송은채(임수정)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말이다. 당시엔 무심코 봤던 장면인데 다시 보니 폭력적으로 보이기도. 알다시피 이 대사와 차무혁의 오토바이 질주 장면은 개그 소재에 쓰일 만큼 패러디로 자주 회자됐다. 방영되던 2004년은 <미안하다 사랑한다>(이하 미사)의 해였다. 모든 게 화제였는데 무엇보다 차무혁의 덥수룩한 턱수염과 폭탄 머리가 관전 포인트 중 하나였다. 빨간 민소매같이 세상 힙한 그의 패션을 보면 지금도 헉, 소리가 난다. 말을 잇지 못할 정도의 난감한 의상이 매회 등장한다. 대체 왜… 비록 패션은 최악이지만 OST만큼은 최고다. 나카시마 미카의 '유키노 하나'를 리메이크한 박효신의 '눈의 꽃'은 원곡과 다른 매력이 있다. 박효신의 첫 소절이 시작되는 순간 자동으로 우리 머릿속에는 드라마 한 편이 재생된다. 이후로 참고로 결말은 충격을 넘어 파국으로 치닫는다. 이경희 작가는 '미사'의 성공에 힘입어 이후에도 애절한 남자의 복수극 <이 죽일놈의 사랑>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 등을 집필했지만 모두 <미사>의 인기에는 따르지 못했다.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송혜교와 조인성의 호흡을 볼 수 있단 점에서 어떤 드라마일지 방영 전부터 궁금했던 기억이 난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는 일본의 <사랑 따윈 필요 없어, 여름>을 원작으로 하며 한국 정서에 맞게 변용됐다. 여름과 겨울이라는 상반된 계절 설정이나 오수(조인성)의 직업 등 많은 부분이 다르다.(원작에서는 호스트였던 남자 주인공이 한국에서는 겜블러로 변형됐다) 한국판의 대본 집필은 노희경 작가가 맡았다. 입소문을 따라 들춰보니 볼거리가 풍부한 드라마였다. 겨울이 들어간 제목처럼 곳곳마다 아름다운 겨울 배경이 아름다운 것은 물론이고 '그 겨울 바람이 분다'더니 정말 눈발이 바람에 따라 움직이는 장면이 등장했다. 인물의 내면을 관통한 대사는 한 편의 시 같았다. 시각장애인을 연기한 송혜교의 연기는 무표정이 지닌 아름다움이 있었고 조인성은 늘 해왔던 거칠지만 속마음은 따뜻한 남자를 연기했다. 당시에는 '캬~ 역시 노희경 작가야. 대사 좋다! 캬~ 역시 송혜교 너무 예뻐! 캬~ 조인성 역시…'하면서 봤는데, 지금은 그저 너무 추워서 대사할 때마다 입김이 나오던 배우들의 입술과 빨개진 코, 그리고 눈 쌓인 풍경만 떠오른다. 대사보다 풍광이 오래 남은 드라마.


외계인과의 달달한 로맨스, <별에서 온 그대>
조선에 불시착한 외계인과의 로맨스라니. <별에서 온 그대>(이하 별그대)의 남자 주인공은 마블 히어로 못지않은 초능력 보유자다. 예사롭지 않은 외계인답게 나이는 심지어 400살이나 된다. 현실과 동떨어진, 허무맹랑한 설정이라고 할 수밖에. 그런데 이 외계인 드라마에 많은 시청자가 환호했다. <별그대>는 중국에서 엄청난 흥행을 했고 덕분에 드라마에 나온 '치맥'까지 열풍이 일었고 중국 공항에 내리는 순간 온통 김수현과 전지현으로 도배된 광고판을 만날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이 드라마가 방영된 해는 '별그대'의 해였다. 연말 시상식을 전지현과 김수현이 휩쓸었음은 물론이고, 톱스타 천송이를 연기한 전지현의 발랄한 연기는 오직 '전지현만이 할 수 있는' 연기로 칭송받았다. 자기 잘나고 예쁜 걸 너무 잘 아는 푼수기 가득한 톱스타를 연기하는 전지현의 사랑스러움이라니. 물론 그 이름까지 '도민준'인 김수현의 로맨스 연기는 또 어떻고. 400년이나 살아 모르는 게 없고, 외계의 능력까지 갖춘 비현실적인 캐릭터임에도 김수현의 작디작은 얼굴에 동그란 눈망울을 보면 '아 도민준은 외계인이지'가 설득되고 만다. 여기에 신성록이 연기한 사이코패스 살인자의 스릴러 요소까지 더해져 '로맨스릴'이라는 새로운 장르 드라마의 탄생을 알렸다. 드라마 주제곡이 나오면 자동으로 그해의 겨울로 시간이동을 하게 만드는 드라마다.


첫눈 오면 보고 싶어지는, <도깨비>
두꺼운 짜임의 빨간 머플러를 둘둘 두르고 발랄하게 "아저씨~"를 외치는 여고생 김고은의 말간 얼굴이 떠오르는 드라마 <도깨비>. 설원에서 코가 빨개진 공유와 김고은의 절절한 러브스토리는 자연히 <도깨비>를 레전드 겨울 드라마로 칭하게 만든다. 줄거리는 무한한 삶을 끝내고 싶은 도깨비와 저주를 풀어줄 도깨비 신부 이야기다. 한국적인 귀신, 도깨비가 이토록 매력적인데 왜 그동안 드라마에 나오지 않았던 것인가! 도깨비뿐 아니라 저승사자 등의 한국 귀신 캐릭터들을 생동감 있게 그렸다. 얼굴은 허옇고, 입술은 새빨간 이동욱 저승사자라면, 저도 당장 만나고 싶습니다만. 주연뿐만 아니라 조연의 비중도 무겁다. 그리고 매회 숨은 복선 찾기가 즐거워지는 드라마다. 쓱 스쳐 지나가는 장면도 실은 다 의미가 있고 반전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김은숙 작가는 이미 스타 작가였지만 이 드라마로 자신의 명성을 더욱 공고히 만들었다. 당시 거리에선 지은탁(김고은)의 트레이드마크인 빨간 목도리를 한 사람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동시에 촬영의 배경지 역시 주목받았다. 하얀 설원이 눈부신 용평 리조트를 비롯해 동해 주문진, 고창 청보리밭, 캐나다의 퀘백시티까지 관광지로 각광받았다.

김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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