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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22 인터뷰

<하트> 정가영 감독

2020.03.06 | 솔직한 게 뭔데요?

"그 사람 내가 만난 남자 중에 제일 섹시해." 유부남 남자사람 친구에게 다른 유부남을 좋아하는 연애 감정을 토로하는 여자 가영의 대사에는 거침이 없다. 도발적인 성격의 여자 주인공 '가영'이 성적으로 거침없는 대사를 하고, 그 연기를 감독이 직접 한다는 점에서 <하트>는 감독의 색깔이 드러나지만, 자세히 보면 <하트>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이 진짜 나인지에 대한 고민이 짙게 묻어난다. 같지만 다른, 하지만 여전히 '정가영'다운 세 번째 장편을 들고 돌아온 정가영 감독을 만났다.


주인공 가영의 역할을 정가영 감독이 직접 연기하고, 짝이 있는 남성과 관계가 있는 와중에 다른 남자와의 연애가 끼어든다는 점이 전작인 <비치온더비치>나 <밤치기>의 연장선에 있다.
전작과 공통된 점이라면 당시의 정가영이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다른 점이라면 <밤치기>와 <비치온더비치>가 비주얼보다는 대사나 이야기의 밀도에 중점이 있었던 반면 <하트>는 보는 재미가 더 있는 작품이다.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 촬영이나 미술을 더 신경 썼다.

<밤치기>는 레진엔터테인먼트에서 투자를 받아 규모가 생겼다면 <하트>는 어떻게 찍었나.
영화진흥위원회에서 5천만 원 투자를 받아서 미술에 더 신경 쓸 수 있었다. 그 전에는 시나리오를 쓸 때 '투자가 없으면 내가 그냥 찍어야지.'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공간을 축소시켜 쓰게 되더라. 단편을 찍을 때에도, 거의 한 공간에서 대화를 하는 영화였다. 워낙 대화가 많은 영화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내심 제작비 때문에 영화 내용을 축소한 부분도 있다. 원래 홍상수 감독이나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 영화처럼 인물의 대사가 많은 영화를 좋아한다. <하트>는 다행히 투자를 받아서 여러 공간을 옮겨가며 촬영할 수 있었다.

시나리오에 대사가 아주 많다.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이 궁금하다.
워낙 대화가 주는 긴장감을 좋아한다. 수다의 건강함이 사람한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단둘이 나누는 대화 속에도 긴장이나 편안함이 있지 않나. 작업할 때에도 그런 대화 내용에 집중해서 쓴다. 말에 긴장이 끊기지 않게. 쓰는 시간은 한 달에서 두 달 정도 걸린다. 분량을 정해놓고 쓴다. 일주일에 3일, 하루에 다섯 페이지씩 쓴다.

성적인 욕망을 주저 없이 드러내는 여성이 주인공이다. 연애와 섹스를 소재로 영화를 계속 찍고 있다. 이 주제가 감독에게 매력적인 이유가 있나.
20대 때는 온통 연애 감정에 대한 앓이를 심하게 했다. 그 덕분에 즐거웠고 또 슬펐다. 그런 감정들이 나를 가장 살아 있게 하는 것 같다. 생생하고 분명한 그런 기억과 감정들을 영화로 남기는 게 나에게 중요했다. 연애라는 주제는, 할 수 있을 때까지는 계속하고 싶다.

자기 영화의 여자 주인공을 도맡고 있다. 과거 인터뷰에서 '편하고 재미있어서'라고 말했다.
편하고 재미있다는 것도 분명 이유가 되지만, 어떤 의미에서 영화 작업을 하는 게 나로 하여금 과거의 일들을 소화하기 위한 과정 같다. 정가영이 정가영에게 '이걸 영화로 찍고 연기해보면 네가 이 혼란을 소화할 수 있을 거야' 하는 거다.


첫 작품에서 연기를 할 때와 지금은 연기에 대한 태도도 달라졌을 것 같다.
이전 작품의 연기는 상대에게 뭔가를 요구하고 떼를 쓰는 내 성격과 닮아 있는 연기여서 큰 어려움은 없었는데 <하트>에서는 나와 다른 나를 연기해야 했다. 정가영이라는 캐릭터가 마음이 힘들어서 누군가에게 상담을 받는 걸 연기해야 하는데 연기 내공이 없는 상태에서 감정을 인위적으로 이입해서 연기하는 게 쉽지 않더라. 주변에는 "<하트>가 내 마지막 연기"라고도 했는데, 뭐 변덕이 있으니 나중에 또 할 수도 있고.

전작 <너와 극장에서>에는 감독이 GV(관객과의 대화)에서 질문을 받는 장면이 있다. 질문 내용이 "영화가 감독님이 겪은 이야기냐"는 건데, <하트>에서도 제섭이 똑같이 가영에게 묻는다. 이 질문을 실제로도 많이 들을 것 같다.
직접 질문을 받은 적은 없는데 (내 영화에 대한) 리뷰를 보면 그런 호기심을 느끼는 분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이지만 GV가 편하지만은 않다. 어찌 보면 관객과 직접 만나는 소중한 시간이지만 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 별로 나다운 모습이 아닌 것 같더라. 그때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GV 끝나고 집에 가면 친구 만나서 지나치게 말 많이 한 날 후회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웃음)

홍상수 감독 영화를 좋아한다고 했는데, 그래서인지 <밤치기>나 <비치온더비치>에 남녀가 술을 마시며 대화하면서 서로의 마음을 재보는 장면이 많다. 남녀가 계속 상대의 마음을 떠보고, 추파를 던진다. 홍상수 감독 작품에서 영향을 받은 것인가.
아마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대화하는 걸 좋아한다. 그런데 좋아하는 것도 매년 바뀌고 또 그에 대한 내 생각도 달라진다. 최근에 김상석 감독님의 <별일 아니다>라는 영화를 봤는데 그 영화를 보고도 생각이 많아졌다. 그간 나는 영화를 하면서 영화 외적인 것들에도 신경을 많이 썼던 것 같다. 영화제 실적이나 감독으로서의 내 커리어도 중요했다. 그런데 그 영화를 보면서 내가 영화를 통해서 뭘 하고 싶었는지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정가영 감독이 만드는 여자 캐릭터는 뭐라 설명하기가 어렵다. 무례하고 발칙해서 어떤 사람이 볼 때에는 불편하고 얄미운 부분도 있다. 한마디로 호감만 가는 인물은 아니다. 시나리오를 쓸 때 주인공이 비호감처럼 보일까 봐 걱정하진 않나.
장편 찍기 전에 단편 작업을 하고 관객들과 만났는데 그 작품들의 주인공들도 비슷한 맥락의 여자들이었다. 이미 여자친구가 있거나 순진한 남자들을 꼬드기는?(웃음) 관객들이 그 부분을 재미있게 봐주었고 거기서 힘을 많이 얻었다. 만약 불편하다는 피드백만 받았으면 주춤했을 거다. 그런데 이런 여자들이 주인공인 게 뭐 어때? 하는 용기 같은 걸 관객을 통해 얻었다.


<비치온더비치>의 가영은 여자친구가 있는 구남친에게 '다시 만나자'고 하는데, <하트>에서는 심지어 가영이 유부남을 만난다. 그렇게까지 윤리적인 선을 확 넘은 이유가 있나.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가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영화에 대사로도 나온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불륜 때문에 흔들릴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때 전형적인 혼란에 빠지지 않으려면 입체적인 고민이 필요하겠단 생각을 했다. 그냥 항상 마음속에 품어왔던 의문이나 고민들이 나온 건데 다만 그걸 작품으로 남기면서 소화시키려 노력하는 거다. <하트>도 시간이 지나서 보면 내가 이 작품에 위안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전작들을 보나?
1년에 한 번 정도? 안 그래도 최근에 <비치온더비치>를 3년 만에 봤는데, 친구랑 통화하면서 "이 영화 재밌는데? 나 이 여자애(주인공)랑 술 먹고 싶다. 얘 또라이네."라고 했다.(웃음)

<조인성을 좋아하세요>는 제목 때문인지 보지 않은 사람들도 궁금해하는 영화다. 영화 속의 조인성이라는 배우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 있는 대사도 있는데 그냥 나오더라. 배우에게 시나리오를 보여줬을 텐데 수정 요청이 없었나.
그래서 조인성 배우가 대단한 사람인 것 같다. 그분의 아량, 바다 같은 마음?(웃음) 워낙 좋은 분이셔서 언제든 어떤 식으로든 다시 작업을 같이 해보고 싶다. 그 단편을 하면서 정가영이라는 감독을 많이 알릴 수 있었다. 작업하면서도 너무 즐거웠고. 영화에서처럼 정말 갑자기 배우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 받고 '이게 꿈인가' 싶었다.

관객 입장에서도 영화에서 기대도 안 했는데 갑자기 조인성 배우 목소리가 나오니 놀라게 된다. 들으면서도 '이거 누가 흉내 낸 건가' 싶더라.
그런 말도 많이 들었다. 흉내 잘 내는 개그맨 섭외한 줄 아는 분도 있다.(웃음) 시나리오를 소속사로 보내고 하루 만에 조인성 배우한테 '같이 하고 싶다'고 연락이 온 거다. 사실 진짜로 배우가 읽어주길 기대도 안 했다. 짓궂은 대사들도 있었기 때문에 시나리오 보내고는 오히려 '제발 읽지 말아라'라고 했을 정도다.(웃음) 촬영 날 저랑 통화를 하면서 음성을 동시녹음으로 딴 건데, 조인성 씨가 네 번의 테이크를 가면서 다 다른 애드립을 해줬다. 그중 가장 재미있는 대사들을 뽑아서 편집을 했는데, 그런 부분까지 배우가 배려를 해준 것 같아서 고맙더라.


아직 2G폰을 쓴다. 심지어 유튜브 계정 '가영정'에 2G폰으로 찍은 브이로그를 올리기도 했더라.
좋아서 계속 쓰긴 하는데, 이게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불편함을 주는 거라 고민도 된다. 스마트폰이 감당이 안 될 것 같아서 섣불리 못 바꾸고 있다. 재미있는 게 너무 많아서 내 생활을 방해할 것 같다. 2G폰을 쓰면 독서나 영화 공부 같은 나에게 더 중요한 것에 집중할 수가 있어서 좋은데, 지도 앱이 안 되는 게 특히 불편하다. 낯선 곳을 찾아갈 때에는 집에서 지도 검색해보고 그걸 사진으로 찍어서 가져간다.(웃음)

영화 공부는 다시 하는 건가. 학교는 박차고 나오지 않았나.
집에서 혼자 하는 연출 공부는 별거 아닌데. 좋아하는 영화들을 사운드를 끄고 다시 본다. 사운드나 자막이 있으면 내용에 집중하게 되지 않나. 대신 사운드를 끄고 촬영, 콘티, 구성, 미술, 거리의 공간은 어떻게 배치했는지, 그림에 대한 눈을 키우는 공부를 하려고 한다.

창작 속도가 빠른 편이다. 2017년에 세 편을 찍고 2019년에는 작품이 없었다. 다음 작품은 정해진 게 있나.
<하트>를 2018년에 찍고 2019년에 부산국제영화제와 서울독립영화제에서 관객을 만났고 올해 개봉을 한다. 그러고 보니 <하트> 이후에 단편이나 장편을 안 찍었다. 다음 영화는 아마도 상업영화가 될 것 같다. 막바지 수정 단계에 있다. 가제는 <서른>이라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이고 데이트 앱을 통해 만난 남녀가 썸을 타는 이야기다. 꽁냥꽁냥하고 귀여운 연애 이야기? <비치온더비치> <밤치기> <하트> 세 편을 찍으면서 내 영화의 1막이 끝났다고 느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이 방식으로는 많이 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다른 형태의 작업을 하고 싶었고 마침 좋은 제작 피디를 만나게 돼서 그 작업도 즐겁게 하고 있다.

그럼 다음 영화에서는 정가영 영화에 정가영이 나오지 않는 건가.
아마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다.(웃음) 다음 영화에서 어떤 배우를 만나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 배우가 내 페르소나가 될 것 같다.


<하트>는 어떤 영화?
1부 - 미술학원 교사 성범(이석형)은 결혼해 아이도 있지만, 가영(정가영)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성범에게 연애 고민을 이야기한다. 어느 날 또 성범을 찾아온 가영은 유부남을 좋아한다며 연애 고민을 털어놓는다.
2부 - 가영은 다음 영화 촬영을 위해 배우 제섭(최태환)을 만나고, 시나리오를 읽은 제섭은 "이거 감독님 본인 얘기세요?"라고 묻는다. 가영이 질문을 하는 상대인 성범, 고민의 주인공인 유부남 명진, 가영에게 새로운 질문을 하는 제섭. 세 명의 남자와 가영의 이야기다.


김송희
사진 홍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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