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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23

청년이 당당하게 대출받는 법

2020.03.18 | 사·경·해! 사회적경제로 해법 찾기

26세. 유럽 청년들이 부모에게서 떨어져 자립하는 평균 나이다. 같은 연령대의 우리나라 청년은 열 명 중 서너 명이 자립한다. 나머지는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캥거루족'이다. 이는 부모 세대는 물론, 청년 스스로에게도 좋지 않다. 캥거루족의 우울감이 자립한 청년에 비해 2.5배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청년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몇몇 사람은 사회적경제에서 해법을 찾았다. 사회적경제는 민주적 참여를 통해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등 공동의 조직을 만들어 경제∙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와 빅이슈코리아는 '사회적경제로 해법 찾기, 사∙경∙해' 시리즈를 통해 주거, 일자리, 경제 등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이들의 생생한 삶은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 유튜브와 빅이슈코리아 웹사이트에서 동영상으로도 볼 수 있다.


서른여섯 살 한은혜 씨의 사회생활은 빚과 함께 시작됐다. 대학 시절, 정부 학자금 대출을 통해 2,000만 원을 빌렸다. 졸업 후 바로 취업을 하면서 바로 상환 의무가 시작됐다. 당시 비영리 민간단체에 취업한 그의 첫 월급은 110만 원. 이 중 30만 원으로 대출을 상환하고 나면, 자취방 월세와 공과금, 식비와 교통비 등 생활비 지출만으로도 월급이 빠듯했다. 은혜 씨는 저축은 커녕 기본 생활을 영위하는 일도 늘 불안했다.

은혜 씨는 더 이상 불안하지 않다. 청년 자조금융 ‘청년연대은행 토닥’(이하 ‘토닥’)을 만난 뒤로다. 토닥은 청년들이 계모임처럼 매달 돈을 모아, 자금이 필요한 구성원에게 빌려주는 단체다. 시중의 은행과 달리, 개인의 신용등급이나 소득증빙 등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자도 각자가 낼 수 있는 만큼 자율적으로 정해서 내면 된다. 은혜 씨는 직장 퇴사 후 소득이 없을 때, 갑작스럽게 목돈이 나갈 때마다 토닥의 대출을 이용해왔다.

“학자금 대출은 상환 일을 하루만 넘겨도 연락이 엄청 와요. 심리적인 부담이 엄청났죠. 토닥을 통해 퇴사 후 대출을 상환할 자금이 없던 때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어요. 지금은 무사히 대출을 모두 상환했습니다.” (한은혜)


신용등급 없는 사회초년생…
청년 10명 중 4명이 사금융 경험


토닥은 지난 2013년에 설립된 국내 최초의 ‘청년 자조금융’ 단체다. 자조란 ‘스스로 돕는다’는 뜻으로, 청년들이 소액의 출자금을 모아 협동조합 등을 결성하고, 서로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무담보·무이자 대출, 소액대출 등을 수행하는 금융을 말한다. 여기서 협동조합이란, 같은 목적을 위해 모인 조합원들이 협력해 물자를 생산하거나 소비하는 조직이다.

청년들은 급하게 자금이 필요한 상황에서 선택지가 많지 않다. 기존 금융권에서 청년은 금융거래 이력이 부족한 ‘신 파일러(thin filer)’로 분류된다. 때문에 사회초년생은 신용등급이 대출 승인을 받기 힘든 4등급 이하이거나 아예 등급이 없기도 하다. 월급이 일정치 않은 프리랜서나 이직을 준비하는 청년의 경우, 당장 생활비나 대출 상환비가 없어 이자가 높은 제2, 제3금융권 대출을 찾기도 한다. 통계에 따르면, 사회초년생 10명 중 6명이 소액대출 경험이 있으며, 주 이유는 생활비와 교육비가 부족해서(44.8%)였다. 이 중 제2·3 금융권을 이용한 청년은 42.4%나 됐다. (신한은행 ‘2019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

토닥은 이런 청년들을 위한 ‘생활 안전망’을 만들기 위해 결성됐다. 토닥은 만 15~39세 청년이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다. 조합원이 되려면 매달 출자금과 조합비를 납부해야 한다.(각각 최소 1만 원) 조합 가입 후 기초 교육을 받고, 6회 이상 출자를 하면 최대 150만 원까지 대출을 신청할 수 있다. 대출 시에는 토닥의 직원과의 대면 상담이 있다. 대출 여부를 따지기 위한 절차지만, 일반적인 심사와는 다르다. 재무상담사 교육을 이수한 직원이 재무 상태를 분석해주고, 더 적합한 상품이나 제도를 추천해주기도 한다. 이후 토닥의 금융협동위원회가 대출을 심사해 자금을 지급한다.

현재 토닥에는 약 420명의 청년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이 모은 기금은 약 1억 3,000만 원으로, 일체 외부의 지원 없이 청년의 힘으로만 모은 금액이다. 우리나라 청년 자조금융 중에선 가장 큰 규모다. 이를 기반으로 청년들이 빌려가고 다시 채운 누적 금액은 3억 원이 넘는다. 장지희 토닥 사무국장은 “단순 생활비뿐 아니라 청년들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인내자금을 빌려주고 있다.”며 “청년들이 함께 저축해서 필요할 때 쓰고, 또다시 채워 넣는 돼지저금통 같은 곳”이라고 설명했다.


돈 때문에 열정을 포기하지 않도록…
서로 지지하는 ‘관계금융’


자조금융을 통해 청년들은 경제적 안정을 찾게 된다. 시민단체 간사로 일하던 서른여섯 살 장운영 씨는 토닥을 통해 주거 위기를 넘겼다. 전세 기간이 끝나 어렵게 이사할 집을 구했는데, 300만 원이 모자라 계약이 엎어질 위기를 겪은 것. 그때 운영 씨는 토닥의 주거 대출인 ‘둥지대출’을 통해 300만원을 마련했다. 운영 씨는 “최저시급을 받으며 돈이 없으면 생활 규모를 줄이고, 병원을 안 가며 버티는 데 익숙해졌다.”며 “비정규직, 프리랜서, 장기간 실업 상태인 청년에게 불안정한 삶을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경제적 안정 속에서 자신의 욕구를 발견하는 기회도 얻는다. 서른 살 김현진 씨는 토닥을 통해 난생처음 독일로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가정 형편이 넉넉지 않아, 장학금을 타고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했던 그였다. 조합원들이 대출로 여행을 다녀오고 공유한 후기를 보면서 현진 씨는 현실에 매몰돼 미뤄온 여행을 처음 계획하게 됐다. 현진 씨는 “지금까지는 스스로에게 여행에 대한 욕구가 있는 것도 몰랐다.”며 “이자가 붙는 신용카드 할부나 다른 대출을 통해 갔다면 그렇게 홀가분하게 여행을 다녀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합원들과 이야기하면서, 한 달에 190만 원을 버는 나도 내 욕망을 찾고,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많은 사람들이 대출을 받으면 죄책감을 갖는데, ‘잘한 결정’이라고 말해주는 유일한 곳이 토닥입니다. 가족이나 친구와는 할 수 없던 ‘돈 이야기’를 같이 나눌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에요.” (김현진)

이런 구조가 가능한 것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관계금융’이기 때문이다. 한은혜 씨는 “같은 청년으로서 서로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중요한지를 너무나 잘 알기에 서로 믿고 돈을 모을 수 있다.”며 “자조금융은 단순히 돈만 빌리는 곳이 아닌, 공동체를 통해 우리의 필요를 건강하게 채울 수 있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장운영 씨는 “청년은 주거나 직장 등의 기반이 불안정해 안전한 관계망을 지속적으로 가지기 힘든데, 조합 안에서 소모임이나 플리마켓, 금융 세미나 등이 열려 서로 왕래하고 유대를 쌓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물론 청년들이 소액을 모으는 기금이기에 운영이 쉽지만은 않다. 토닥 이후 생겨난 ‘장신고(장로회신학대학교)’, ‘겨자씨은행(총신대학교)’ 등은 최근 운영난에 해산 절차를 밟기도 했다. 장지희 사무국장은 “운영에의 고민도 있었지만, 토닥이 아니면 생활비를 빌릴 곳 없는 청년들을 위해 사업을 지속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적기업들의 자조금융인 재단법인 밴드의 하정은 이사장은 “자조금융은 당사자들의 이해를 가장 잘 반영하는 금융이지만, 취약한 계층이 개별로 모여 있는 만큼 어려움도 있다.”며 “토닥을 포함한 여러 자조금융 단위들이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 내 공제분과로 모여 지속 가능한 방안을 모색하고있다.”고 말했다.


청년의 자립 위한 금융 솔루션들

청년의 경제적 안정을 위한 자조금융 솔루션은 다양하다. 키다리은행은 한양대학교 학생들이 설립한 학생금융협동조합이다. ‘숏다리펀드’란 이름으로 교내 학생들에게 최대 30만 원을 자율이자로 대출해준다. ‘희년은행’은 고금리 부채를 가진 청년이 저축을 통해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도록 돕는다. 조합원에 가입해 재무교육과 상담을 받고 1년간 꾸준히 저축하면, 저축한 금액의 최대 100%를 무이자로 대출해준다. 월 조합비와 출자금은 각각 최소 5,000원이다. 이 밖에 ‘공동체은행 빈고(서울 이태원)’, ‘광주청년드림은행(광주)’ 등 지역 기반의 모델도 있다.

최근엔 자조금융을 제도화하려는 시도도 있다. 토닥을 포함해 키다리은행, 동작신협 등 사회적 금융기관들은 ‘청년신협(가칭)’을 준비하고 있다. 청년신협이 탄생하면, 기존 은행처럼 수시 입출금, 예금자보호를 할 수 있다. 청년 활동을 위한 자본을 모으고, 안정적으로 투자할 수 있다. 한영섭 청년신협 추진위원장은 “기존 금융으로는 청년들에게 원활한 금융 공급이 되지 않았다.”며 “청년신협은 청년을 위한 대출과 보험, 생활경제 컨설팅까지 제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청년신협은 올해 말까지 신협 설립 기준인 출자금 3억 원을 모으는 것이 목표다.

‘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 사회적협동조합(이하 ‘청지트’)’은 청년을 대상으로 체계적인 금융 교육을 제공한다. 올해는 청지트가 자체 개발한 ‘꿈꾸는 가계부’를 바탕으로 가계부 작성법을 실습하는 ‘가계부워크샵’, 보험과 투자, 저축, 대출, 신용 등 금융의 각종 요소에 대해 정보를 전달하는 금융 강의 등이 제공된다. 청지트의 금융교육은 연중 수시로 열리며, 참여를 원하는 청년은 누구나 온라인(youthmoneyhabit.modoo.at) 공고를 통해 신청할 수 있다.

소셜벤처 ‘크레파스솔루션’은 신용등급이 없는 청년이 저금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플랫폼 ‘청년 5.5’를 내놨다. 청년 5.5는 스마트폰 충전 주기, SNS 이용 방식 등을 평가하는 대안적인 신용평가를 활용, 연 5.5% 금리로 최대 500만 원의 대출을 제공한다. 청년 5.5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신청하면 되며, 신분증과 통장사본, 대출이 필요한 사연 등을 접수하면 된다. 사회연대은행은 올해 초 청년금융통합지원 플랫폼 ‘알파라운드’를 개관하고, 소액 생활비, 임차보증금 등 대출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해 온라인(alpharound.or.kr)에서 지원자를 모집 중이다.


※ 청년을 위한 금융 솔루션
청년연대은행 토닥 todakbank.org
한양대 키다리은행 facebook.com/kidaribank
희년은행 jubileetogether.tistory.com
공동체은행 빈고 bingobank.org
(가칭)청년신협 추진위원회 ycus2020.tistory.com
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 youthmoneyhabit.modoo.at
청년 5.5(크레파스솔루션) crepass.com
알파라운드(사회연대은행) alpharound.or.kr


박혜연
'빅이슈' 객원기자.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과 솔루션에 관심이 많습니다.
전 <조선일보> 공익섹션 더나은미래 기자.


사진 성수한
사진제공 청년연대은행 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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