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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26 스페셜

'부부의 세계'를 보는 복잡한 심경

2020.05.08 | 전지적 참견 시청

원래 남 일은 쉽게 말하게 된다. 소위 ‘막장 드라마’가 선과 악이 뚜렷한 캐릭터들을 마음껏 동정하고 욕하는 스포츠가 된 데에는 텔레비전 안에서 일어나는 허구의 사건들로부터 나 자신은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는 안도감이 크게 작용했다. <부부의 세계>도 그런 원리를 따르고 있다. 서스펜스가 돋보이는 연출, 원작 에피소드를 압축해 만든 빠른 전개, 김희애의 압도적인 연기력 등 흥행의 이유로 꼽힐 만한 이유는 많지만, 무엇보다 강력한 요인은 모여서 참견하기 좋은 소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드라마를 향한 수많은 참견에는 나름의 시점들이 있다.


시점 1. 엄마 아빠 싸우지 마세요.
선우(김희애)와 태오(박해준)의 아들인 준영(전진서)의 시점에서 보면 이 모든 상황이 그저 가슴 아픈 일이다. “엄마가 아빠 한 번만 용서해주면 안 돼? 우리 예전처럼 다시 살 수 있잖아.” 지금 당장 부모님이 이혼을 한다 해도 별 감흥이 없을 서른이 넘은 나는 ‘저놈 자식은 대체 왜 엄마 편을 들어주지 않는 거지? 아들은 역시 소용없다!’고 소리 질렀지만, 초등학교 6학년인 준영에게 엄마 아빠의 불화란 세상의 균열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그 아들의 입장을 생각해서라도 두 사람은 재결합을 해야 한다고, 그게 안 된다면 김희애가 아들을 데리고 남편이 없는 곳으로 떠나야 한다고 말한다.

시점 2. 지선우 선생님, 빨리 복수하세요.
지선우라는 능력과 카리스마를 갖춘 선배를 응원하는 사람이라면 이 모든 상황이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부부의 세계>에서 제일 웃긴 장면은 지선우와 이태오가 한때는 사랑했던 관계임을 암시하는 장면들이다. 들판에서 웨딩드레스를 입고 사진 촬영을 하거나, 서로에게 영원을 맹세하거나, 자동차 오디오로 스팅의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프러포즈를 하는 장면들은 관계가 파탄난 지금의 상황과 대비되며 엄청난 가증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그것들은 주로 지선우가 복수를 마음먹을 때면 등장해서, 선우가 저런 추억들로 약해지진 않을까 노심초사하게 만드는 나쁜 장치였다. 지선우 선생님. 모든 것이 난장판이 된 지금, 좋았던 시절을 회상한들 무슨 소용입니까? 제발 공허했던 과거 회상을 멈추고 오직 이태오에 대한 심판과 처단만을 해주십시오. 아들도 미련 없이 이태오에게 보내십시오. 아들도 대충 다 컸고 모성은 충분히 발휘했습니다. 이제 그냥 모든 것을 털고 당신의 멋진 독립생활을 시작하십시오.

시점 3. 여다경, 제발 그만해
다경이가 내 친구였다면 ‘하지만?’이라는 공세를 하느라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 네가 어쩌다 사랑에 빠진 것 이해한다. 하지만? 결혼한 남자라니 네가 뭐가 아쉬워서? 영화감독이고 자상하고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인다고? 그렇군. 하지만? 젊어 보이는 거지 실제로 젊은 건 아니잖아? 아들도 있다며? “곧 이혼을 하고 너와 결혼할 것”이라고 했다고? 하지만? 어디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냐? 어쩌다 그런 남자랑 사랑에 빠지게 된 건데? 너는 도대체 왜 욕을 먹어야 하는 건데? 나는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다경아.

시점 4. 이태오를 죽입시다
이것은 이 드라마가 시청자에게 유도하고 있는 시청 관점이라서 별로 길게 말할 것도 없다. 남편이란 존재가 어디까지 나쁠 수 있는지 실험하듯, 이태오는 두 여자의 사랑을 어떻게 받을 수 있었는지 도무지 모를 만큼 역겨운 캐릭터다. 매일 밤 텔레비전 앞에 앉아 ‘멍청한 시청자1’이 되어 “저놈 죽여라! 지옥 가라!”만 외치면 획득이 가능한 시점이며, 이 드라마를 보고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태도다.

시점 5. 이 모든 것은 다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
이렇게 여러 관점을 옮겨 다니며 이런저런 훈수를 두는 시청자들은 극 중 태오와 선우 사이를 이간질하는 산부인과 의사 명숙(채국희)과 닮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이런 종류의 드라마를 볼 때 갖고 싶은 태도와는 거리가 멀다. 지난 18일 방송된 8화의 연출은 최악이었다. 다시 돌아온 남편 태오는 폭력을 사주하여 선우를 위협하고 물리적인 상해를 입힌다. 이 상황에서 활용된 VR 게임 같은 카메라 구도는 더 이상 이 드라마를 어떤 관점에서도 즐겨서는 안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남의 이야기, 그것도 남의 아주 사적이고 은밀한 이야기는 매혹적인 미끼다. 일일드라마, 주말드라마 할 것 없이 한국의 많은 미디어는 이것을 늘 활용해왔고, <부부의 세계>는 김희애라는 훌륭한 배우를 통해 최고급 미끼 상품을 만들어냈다. 시청 초반, 빠른 전개를 보며 시청자 대부분이 ‘과거 드라마와는 다른 흐름을 보여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기대는 몇몇 장면들로 인해 처참히 무너졌고, 그것들은 이런 드라마를 시청하는 나의 구태를 돌아보게 만든다. <부부의 세계>는 내게 일종의 실험이다. 나는 과연 드라마 속 그 어떤 관점에도 이입하지 않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틀린 것은 틀렸다고 말하며 극을 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시청자가 될 수 있을까. 어려운 일이겠지만 말이다.


복길
자유기고가, <아무튼, 예능>을 썼습니다.
사진출처 JTBC<부부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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