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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39 빅이슈

빅판들의 가수 데뷔

2020.11.25 | 빅이슈 10주년 기념 앨범 <Seat> 녹음 현장 스케치

용산에 자리한 스튜디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사뭇 다른 공기가 느껴졌다. 평소 빅이슈코리아 사무실에서마주치면 “안녕하세요! 허허” 하고 활기찬 인사를 건네던 빅이슈 판매원(이하 빅판)들이 긴장한 모습으로 가사가 적힌 흰 종이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혹여나 방해가 될라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다가, 이번 프로젝트의 공동 A&R을 맡은 우영경 빅이슈 코디네이터에게 분위기가 어떠냐고 질문을 던졌다. 우 코디는 엄지를 치켜들며 “너무들 잘하세요.”라고 화답했다. 역시, 길 위에서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다 겪은 빅판들은 노래도 잘했다.

빅이슈 10주년 기념 앨범은 고재경 프로듀서(활동명 Maalib)의 제안으로 성사됐다. 고 PD는 10년 전부터 홈리스월드컵을 비롯해 오현석 빅판의 이사를 돕는 빅돔 활동에도 참여한 적이 있다. 연락을 받은 빅이슈는 여러 차례 미팅을 통해 프로젝트를 구체화하는 동시에 음악을 좋아하는 네 명의 빅판을 선발했다. 그 결과 문영수, 서명진, 안연호, 오현석 빅판이 이번 <Seat> 발매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다. 고재경 PD는 빅판들에게 판매원으로서의 소회를 비롯해 자유 주제로 글을 써달라고 요청했고, 이를 바탕으로 수차례 수정을 거쳐 곡이 만들어졌다.

녹음은 3일에 걸쳐 이뤄졌다. 이튿날의 녹음 후 짧은 티타임을 가지며 그간의 이야기에 대해 듣기로 했는데, 막 녹음실에서 나온 빅판들은 설렘과 긴장이 뒤섞인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일곱 트랙 중 네 빅판의 가장 많은 선택을 받은 노래는 문영수 빅판의 글에서 시작된 ‘서 있는 남자’였다. ‘길 위의 남자’로 시작된 짧은 글은 고 PD의 손길을 거쳐 완성도 높은 곡으로 재탄생했다.

“아 나는 누구를 기다리며 오늘도 하염없이 길 위에 서 있나.”(‘서 있는 남자’ 중 한 소절)


문 빅판은 “글을 써 오라고 하자 가장 먼저 생각났던 게 내가 길 위에 서 있는 모습이었다. 판매원들은 판매가 되든 안 되든 하루의 일정 시간 이상을 길 위에서 보낸다. 나 말고도 모든 빅판이 여기 공감할 거다.”라고 글의 모티브를 설명했다. 서명진 빅판도 어서 발매됐으면 좋겠다고 거들었다. 안연호 빅판의 ‘구름 같은 인생’도 중독성 있는 멜로디와 감성 넘치는 가사로 많은 지지를 받았다. “아 이것이 인생이란 말인가/가슴 적시던 저 노을빛이 어릴 때 봤던 그 모습이 아니야.”이란 가사가 심금을 울리는 이 글은 ‘기념일’이라는 곡으로 완성됐다. 개인적으론 노래방에서 부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마침 안연호 빅판이 노래방 마니아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안 빅판은 이번 프로그램에 참여할지 말지 고민하고 있던 찰나에 문 빅판의 권유로 참여하게 됐다. 문 빅판은 안 빅판에 대해 “가장 열정적으로 참여하더라. 안 빅판의 숨은 끼를 발견한 거 같고 새로운 모습을 본 거 같아서 너무 좋다.”고 칭찬했다. 안 빅판은 손사래를 치면서도 “지금이야 코로나 때문에 못 가지만, 옛날에 사회생활 할 땐 스트레스를 풀려고 노래방에 자주 갔다. 목록을 가득 예약해놓고 목이 쉴 때까지 불렀다.”고 솜씨의 비결을 공개했다. 오현석 빅판은 서명진 빅판이 사랑하는 이에게 바치는 세레나데인 곡 ‘러버’를 강력하게 추천했다. “경쾌하고 좋더라고요. 완전 가수예요.”

또 하나의 도전, 그리고 성취
이번 앨범 녹음 프로젝트는 빅판들에게 큰 도전이었다. 가사의 바탕이 될 글을 쓰는 것도, 스튜디오에서 노래하고 코러스를 넣으며 녹음하는 모든 과정이 난생 처음 겪는 일이었다. 바리스타 도전을 비롯, 빅이슈의 수많은 자활지원 프로그램에 빠짐없이 참여해온 문영수 빅판에게도 그랬다. 문 빅판은 “일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이번 체험으로 삶의 새로운 변화를 맞을 수 있을 거 같더라. 녹음 일정을 보니 판매 시간과 겹칠 거 같았지만 그걸 감수할 만큼 하고 싶었다. 책 몇 권을 못 파는 게 아쉽지 않을 만큼 의미 있고 뜻깊은 시간이 되었다.”라는 기운 찬 소감을 전하며 “다른 빅판들도 자활 프로그램에 많이들 참여했으면 좋겠다.”는 권유도 잊지 않았다. 10년간 빅이슈와 함께해온 오현석 빅판은 “우리가 호흡이 잘 맞아서 빨리 끝났다.”라고 너스레를 떨며 “해보지 못한 색다른 경험이었고 가수가 된 거 같았다.”라는 소감을 남겼다. 서명진 빅판 역시 “형님들과 같이 참여하게 돼서 좋다.”라며 팀워크를 자랑하고는 “우리의 글을 노래로 만들어줘서 정말 감동적이었다.”라고 고 PD를 향한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모든 스태프의 재능기부로 제작될 수 있었던 이번 앨범 <Seat>는 10월 25일 발매되었다. 리스너들이 어떤 생각과 감정을 품고 앨범을 들어줄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세상에 맡기는 수밖에. 부디 빅판들의 목소리가 멀리 퍼져나가 많은 이들의 마음에 작은 울림을 선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양수복
사진 사공진·정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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