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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41 에세이

돈, 무엇이든지 할 수 있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2021.01.11 | 돈 워리

작년 연말 모임이었나, 나처럼 인맥 관리를 못 하는 인간조차도 연말이면 의례적으로 참석하는 몇 개의 모임이 생긴다. 대부분은 사회에서 얻게 된 크고 작은 소모임들이다. 다행히 인맥 관리 차원에서 억지로 참석해야 하는 모임보다는 취향이 잘 맞아 자발적으로 인연을 이어가는 친구들과의 모임이기에 즐거운 분위기에서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
그런데, 작년에 한두 개의 모임 참석 후 나는 묘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우리의 대화 주제가 과거에 비해 다양하지 않고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결국 하나로 수렴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부동산, 혹은 돈이었다. 부동산을 가진 사람이든 없는 사람이든 ‘그러니까 한국에선 부동산밖에 답이 없어.’로 논의가 귀결되었다.


국가는 나를 책임져주지 않으니까 개인이 책임져야 해
무엇보다 그 자리에 있는 사람 중 투자 가치 높은 서울의 부동산을 구매할 만한 자산가는 한 명도 없었으니 매우 패배적인 분위기로 대화는 종결되곤 했다. 일해서 뭐하냐, 나보다 아파트가 돈을 더 잘 버는데…(내 연봉 상승률보다 아파트 가격 상승률이 더 높다) 노동의 가치는 한껏 폄훼되었고, 주식이나 부동산으로 돈을 벌어서 ‘파이어족’이 되는 것만이 현명한 노후 준비라는 것에 모두 동의했다. 과거에는 다양한 주제 안에서 취향 스펙트럼을 펼쳤던 친구들조차도 이제는 모두 현실의 불안과 돈 이야기뿐이었다. 물론 내가, 우리가 나이가 들면서 고민이 달라지고, 그 생각이 대화에 묻어나기에 어쩔 수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미래가 불안하니까 돈이 있어야 해. 왜냐하면 사회는 고령화되고 있고, 연금은 빠르게 바닥나고 있으며 우리가 늙었을 때 국가는 우리를 책임져주지 않을 거잖아. 평균수명은 늘어나고 물가상승률 대비 매우 적은 연금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우리 세대의 미래는 결국 부동산밖에 답이 없는 것이다. 내가 불우한 노인이 되었을 때 사회안전망이 나를 지켜줄 거란 믿음이 우리 세대에게는 없다. 현재의 노인 세대 중 노후 대비로 부동산을 사둔 사람과 아닌 사람의 현실이 극명하게 다른 것을 눈으로 지켜봤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미래에 불행하다면 그건 ‘개인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미래를 대비할 자산도, 주식이나 부동산을 공부할 여력도, 그럴 의지조차 없는 나는 항상 그런 이야기들 속에서 소외받거나 혹은 계도의 대상이 되기 일쑤였다. 연령 대비 자산과 소득이 적고 소비는 헤프기 때문에 친구들은 나를 걱정해준다. 물론 이 또한 매우 고마운 일이다.
종부세, 서울 아파트 시세, 전세 대란 등의 뉴스를 볼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아, 한국에 부자가 이렇게 많구나. 대중 대상의 뉴스에서 중요도는 얼마나 많은 다수에게 적용되는 정보냐 하는 것일진대, 서울에 아파트를 갖고 있거나 가까운 미래에 구매할 생각인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걸까. 부자가 참 많구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의 경우
오프라인뿐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사람들은 ‘돈’에 대한 이야기에 뜨겁게 반응한다. 부동산 뉴스가 TV ‘9시 뉴스’ 메인으로 1년 내내 보도되는 나라답다. 최근에 내 타임라인을 뜨겁게 달궜던 글은 네이x판의 ‘흙수저 집안에서 아이 낳으면 생기는 일’이라는 글이었다. 글쓴이는 자신을 ‘가난한 집 생존자’라고 설명했다. 그러니까 어떤 사고에서 살아남은 사람을 일컫는 ‘생존자’가 이제는 빈곤층에서 계층 상승에 성공한 사람에게도 붙이는 말이 된 것이다. 빈곤층 가정의 교육에 관심이 없는 부모에게서 태어난 글쓴이는 중·고등학교를 부자 동네에서 다니며 친구들 사이에 명확한 서열을 느꼈고, 부모의 소득 수준으로 인한 굴욕감이 성장 과정에 큰 영향을 줬다고 설명하고 있었다. 긴 내용 중 특히 세인의 공감을 산 것은 부모에게 물려받는 ‘문화 자본’에 관한 것이었다. 저소득층의 아이들은 가족 여행, 외식, 정서적 안정감 등의 경험을 하기 어렵다. 그 외 교육에 관심 많은 부모가 아이들에게 자연스레 전달하는 실용적인 가르침 또한 받지 못하기 때문에 이미 뒤처진 상태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열심히 공부해 ‘개천용’이 되어봤자 학자금 대출과 각종 빚더미에서 시작한다면 결국 ‘흙수저의 대물림’일 수밖에 없다는 씁쓸한 결말까지, 짧은 글 안에 자본주의 현실이 담겨 있었다. 이렇게 ‘흙수저 출신이어서 힘들었던 것’을 고백하는 글들은 SNS에서 늘 공감을 산다. 다들 ‘가난’ 때문에 힘들었던 경험이 있고, 설령 극빈층이 아니더라도 친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난해서 상처받은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다. 러스트벨트의 백인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나 흙수저의 고리를 끊고 계층 탈출에 성공한 미국인의 <힐빌리의 노래>와 같은 사례는 한국에서 매일매일 쏟아진다.
조금 다른 예시일 수 있지만, 나는 그 글을 보며 고등학생 때의 경험을 떠올렸다.
어느 주말, 나는 평소에는 어울리지 못했던 친구들 사이에 우연히 끼게 되었다. 그 친구들은 영화를 보러 간다고 했다. 내가 보고 싶었던 영화였고, 무엇보다 나는 그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었다. 영화표를 살 때, 어쩌다 보니 매표소 앞에서 내가 다섯 명의 영화표를 결제하게 되는 상황이 생기고 말았다. 친구들은 일단 내가 돈을 내면 나중에 주겠다고 했다. 부모님에게 주기적인 용돈을 받지 않아서 비상금이 전 재산이었던 나는 엄마 몰래 모아놨던 돈으로 다섯 명의 표를 샀다. 아주 재미있게 영화를 보고 노래방에도 갔다. 그리고 다음 주가 되었다. 친구들은 그날 내 쓴 돈을 먼저 돌려주지 않았다. 애들이 잊어버린 건가. 그럼 내가 먼저 말해야 하나. “다섯 명 돈이 얼마 나왔고, 한 명당 얼마씩 주면 돼. TTL 할인받아서 얼마야.” 지금이라면 편하게 했을 그 말이 도저히 안 나왔다. 반도 다르고 평소 어울리던 친구들도 아닌데, 갑자기 찾아가 돈 이야기를 하면 너무 없어 보이지 않을까. 복도에서 우연히 만난 척하고 마침 생각난 듯 말을 꺼내볼까. 며칠을 끙끙거리다 겨우 돈 이야기를 꺼냈다. 친구들은 내 돈을 잊고 있었고, 뒤에서 수군거렸다.
“쟤 그 돈 달라고 얼쩡거린 거 맞지? 몇 천 원 갖고 웃긴다. 노래방은 우리가 내지
않았냐?”
왜인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 목소리가 가끔 들려서 가슴이 뛰곤 한다. 남에게 돈 이야기를 꺼내기란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 애들에게 5천 원과 나에게 5천 원은 무게가 달랐다. 영화도 보고, 밥도 먹고, 노래방도 가고. 여고생들이 어울려 보내는 주말의 유흥을, 나는 할 수가 없었다. 그 친구들과 어울려 그렇게 하루 놀고 나면 일주일 동안 곤궁해졌다. 어차피 그 애들은 이후 나를 끼워주지도 않았다.


당신은 중산층입니까?
돈이라는 것은 상대적이다. 한 투자회사에서 조사한 자기 계층에 대한 인식 조사에서 고소득층 2명 중 1명은 자신을 빈곤층이라고 답변했고, 중산층 중 자신을 중산층으로 인식하는 사람은 19.8%에 불과했다. 나머지 80%는 자신을 빈곤층이라고 생각했다. 4인 가족 중위소득(375만 원)을 기준으로 고소득층은 소득 563만 원 이상인 사람들이다. 기사에 의하면 한국인들은 중산층이나 고소득층의 기준을 지나치게 높게 생각하고 있고, 자신은 그에 못 미친다고 생각한다.
알바해서 버는 돈으로는 생활비를 하느라 ‘여행 자금’을 모을 수 없었던 나에게 “니가 그만큼 여행에 간절하지 않은 거지.”라고 말했던 대학 친구가 생각났다. “나도 다른 친구들처럼 부모가 여행 좀 보내주면 좋겠어. 우리 집은 가난해서 내가 벌어서 여행 가야잖아.”라고 투덜거리는 친구에게 나는 알바해도 여행 못 간다고 했더니 들은 말이었다. 그 친구는 여행을 가려고 알바를 하는 자신과 달리 그 돈으로 생활비를 하는 나에게 ‘그건 욕망의 크기’가 달라서라고 말했다. 내가 자기만큼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거 라고 말이다. “넌 용돈으로 생활비를 할 수 있잖아.”라고 되받아치고 싶었지만, 실제로 여행을 한 번도 가보지 않아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지 알 수 없었던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친구의 생활 규모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고, 인스타그램에도 유튜브에도 나보다 화려하게 잘 사는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이 전시되는 이 시대에는 모든 것이 ‘돈’으로 치환된다. 당연하다. 돈이 있어야 미래도 도모할 수 있고, 꿈도 꿀 수 있고 원하는 선택을 할 수 있고 거절도 할 수 있으며, 자유로울 수 있고 덜 불안할 수 있다. 나는 우리 세대에게 가장 큰 공포는 빈털터리 노후라고 생각한다. 더 이상 경제활동은 할 수 없고, 몸이 아픈데 병원에 갈 자산도 없고 매달 정기적으로 입금될 돈이 없어 비굴하게 싫은 일을 계속해야 하는 가난한 노인의 삶이 우리는 죽음보다 더 공포스럽다. 그러니까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과 안정적인 노후를 살고 싶은 바람과 사진과 영상으로 상류층의 삶이 쉽게 노출되는 현재의 미디어 환경이 뒤엉켜, 이 모든 욕망은 증폭되고 우리의 머릿속은 온통 ‘돈’으로 가득 차게 된다. “아파트가 자가예요, 전세예요?” 남의 자산 상황을 토크쇼에서 묻고 답하는 게 천박기는커녕 솔직한 유머로 평가받고, 스님조차도 무소유가 가능하려면 신도나 주지에게 아쉬운 소리 안 해도 되는 책 인세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친일파 후손들은 잘 먹고 잘 사는데,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극빈층으로 사는 걸 봐라, 그러니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고 자기 몫을 잘 챙기는 영리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아이에게 가르치는 세상. 정말 그게 답일까.
모든 게 돈이 있어야 가능하고, 가난한데 행복하기 어려운 것은 맞지만 정말 돈이 전부인가. 설령 그렇더라도 나는 이제 돈 이야기를 다르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안전망이 없으니까, 각자도생해야 하니까, 그 밖으로 밀려간 사람들은 노력이 부족한 거니까. 우리 각자 알아서 똑똑하게 돈을 많이 벌자!’가 아니라, 언제 누가 절벽 밑으로 떠밀려도, 최악의 상황에서 손 내밀면 공공이 일으켜줄 수 있어야 한다고. 삶이 너무 고되어 이렇게 살 바엔 차라리 죽는게 낫겠단 절망적인 생각이 들지 않게, 돈이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제도 정비에 대한 이야기를 올해 연말에는 더 많이 하자. 누가 어디에 투자해서 얼마를 벌었다는데, 나도 그때 살걸 그랬다 이런 이야기 말고.


김송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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