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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41 스페셜

2020년, 영화의 자리

2021.01.11 | 올해의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뼈아픈 후회>, 황지우) 올해 영화계 종사자들의 심정이 이렇지 않을까 싶다. 코로나19 이후 매일 익숙한 것들과의 이별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 영화 산업의 근간인 극장 관객이 90% 가까이 감소한 것을 시작으로 2020년은 영화 산업의 프레임 자체가 바뀐 해로 기억될 것 같다. 영화 제작은 미뤄지고 제작비 규모가 큰 영화를 지향했던 경향도 차츰 규모를 줄이거나 다변화되고 있는 추세다. 최소한 덩치라도 줄여 살아남기 위해서다. 영화제는 무관객으로 치러지고 게스트와의 만남이나 무대 인사마저 비대면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올해 상반기 직격탄을 맞았던 전주국제영화제는 개최 시기를 한 달가량 미뤘다가 결국 전면 온라인으로 치러졌다. 올해의 마지막을 장식한 부산국제영화제는 정반대로 오프라인 개최를 고집했지만 대신 규모를 평소의 3분의 1가량으로 축소했다.
무엇보다 슬픈 건 극장을 떠나는 영화들이다. 코로나19 직후인 4월 법적인 분쟁까지 빚으며 세간의 이목을 모았던 윤성현 감독의 <사냥의 시간>을 시작으로 크고 작은 영화들이 차례로 극장 개봉을 포기한 채 넷플릭스로 직행했다. 77회 베니스영화제의 유일한 한국 영화 초청작인 박훈정 감독의 <낙원의 밤>, 박신혜, 전종서 주연으로 기대를 모은 이충현 감독의 <콜>에 이어 총 제작비 240여억 원의 대작 <승리호>(감독 조성희)마저 넷플릭스행을 택했다. 물론 넷플릭스가 새로운 신천지라서 영화들이 몰리는 게 아니다. 제작사 입장에서도 눈물을 머금고 조금이라도 덜 손해 보는 쪽을 고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린, 특수한 상황에 가깝다. 게다가 이건 비단 한국 영화계만의 상황도 아니다. 디즈니가 실사영화 <뮬란>이나 애니메이션 기대작 <소울> 디즈니플러스에서 먼저 공개한 것, 워너 브라더스가 <매트릭스 4>, <듄> 등 2021년 배급하는 영화 전편을 극장 개봉과 동시에 자사 OTT 플랫폼 HBO 맥스에서 공개하기로 결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영화가 스크린을 떠나 다른 접촉면을 고민하고 있는 셈이다.

<남매의 여름밤>

극장을 떠난 영화, 극장 산업의 위기
이른바 뉴노멀 시대다. 과거엔 정상적이지 않다고 생각되었던 것들이 이젠 당연한 것이 되어가고 있다. 핵심은 영화에 대한 인식과 개념이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상반기만 해도 아무도 이렇게 코로나19가 오래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한국 영화계의 위기 극복 전략도 간단했다. 코로나가 잠잠해진 뒤 정상 복귀되리라는 믿음으로 최대한 버티는 것이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일상이 되며 이젠 ‘정상’에 대한 기준과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본질적으로 모든 관객들이 ‘영화란 무엇’인지 질문을 받는 시대가 왔다. 복합문화 시설에 간 김에 영화를 즐기던 이들은 손쉽게 다른 대체재를 찾는다. 영화가 꼭 극장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며 OTT 등 안방에서도 즐길 수 있는 콘텐츠라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극장이라는 공간과 영화라는 경험이 분리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건 아니다. 기술이 발전하고 필름 시대가 멀어지며 OTT 플랫폼이 부상하면서 이미 예고된 변화들이다. 다만 코로나19는 누구도 대처하기 어려울 정도의 속도로 변화를 가속시키는 중이다.
내심 이러한 변화들의 마지노선은 1년이라고 생각해왔다. 2020년 한 해를 뒤돌아보며 이젠 돌이킬 수 없는 선을 지나고 있음을 느낀다. 영화가 없어진 자리, 더 이상 극장에서 영화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체험을 사계절 겪고 나면 코로나가 진정된 이후에도 예전의 자리로 복귀하긴 어려울 것이다. 비단 산업의 구조나 시스템만의 문제는 아니다. 사람들의 뇌리에 영화라는 개념의 테두리가 바뀔 것이기 때문이다. 내용만큼 중요한 방식. ‘어떤 영화를 볼 것인가.’에서 영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로 넘어간다고 해야 할까. 동시에 현재의 위기와 변화는 엄밀히 구분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의 위기는 영화 산업의 위기인가. 영화라는 매체가 어느 날 갑자기 침몰할 것인가. 그럴 리 없다. 엄밀히 말해 이것은 극장 산업의 위기다. 코로나19 시기에 부상하는 OTT 플랫폼처럼 영화는 어떤 형태로든 관객들과 만날 것이다. 길은 여기서 갈라진다. 극장을 떠난 영화도 여전히 영화라고 볼 수 있을 것인가. 우리가 믿어온 영화적 체험이란 무엇인가. 결국 영화는 어떤 형태로 살아남을 것인가. 나는 현재의 변화들을 가능성이라고 믿고 싶다. 영화가 사라지거나 지위를 잃는 것이 아니라 영화라는 체험 방식이 세분화되는 것이라고 믿는다.
순전히 개인적인 체험에 근거하자면 올해만큼 극장을 자주 찾은 적도 없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바쁜 일정을 핑계 삼아 모니터의 작은 화면으로 영화를 보는 일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극장에서 쉽게 영화를 접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거꾸로 내가 얼마나 극장이란 공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인지 자각할 수 있었다. 현실적인 이유로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들을 하나씩 지워나가다 보면 결국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제일 마지막 줄에 남기 마련이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올바르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형태의 만남의 가능성들이 씨앗을 틔우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가령 올 하반기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맹크>(데이비드 핀처 감독)처럼 지방에는 틀어주는 상영관이 없어서 좋은 영화를 만나기 힘들었던 관객들은 OTT를 통해서 좀 더 편하게 작품을 접할 수 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특히 기억에 남았던 건 <시티 홀>의 프레데릭 와이즈만 감독과의 온라인 화상 GV였다. 워낙 고령이라 이젠 만나기 힘든 와이즈만 감독을 비대면으로나마 만나 직접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건 역설적으로 코로나 시기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리기 마련이다. 2020년은 전통적인 영화 산업이 큰 위기를 겪은 동시에 역사의 분기점에서 수많은 가능성의 문이 열렸던 시기로 기억될 것이다. 인터넷 초창기, 인터넷 기술이 정보의 평등을 가져다줄 것이라 믿었던 것처럼 순진하고 낙관적인 발상이란 걸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내가 사랑했던 것들이 점차 폐허로 변해가는 풍경’을 보고 있는 이 자리에서 새삼 새로운 싹을 틔우는 데 희망을 걸어보고 싶다.


감독이 보이는 영화
외적으로는 많은 위기와 변화를 겪었지만 한편으로 수면 아래 우리가 직접 접하는 영화의 면면이 암울해졌느냐고 하면 그렇지 않다. 한국 영화의 경우 하향평준화, 획일화, 기획영화들의 폐해가 몇 해 동안 습관처럼 반복되던 것을 감안하면 오히려 질적으로 나아진 모양새다. <반도>,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강철비 2: 정상회담> 등 올해 여름 한국 대중 상업영화들은 일부의 아쉬움과 불만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준수한 결과물을 선보였다. <사냥의 시간>이나 <반도>,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처럼 이 땅이 아닌 어딘가의 낙원으로 떠나려는 소년(덜 자란 남성)들의 서사가 늘었다는 분석도 재미있는 지점이다. 독립 예술영화 진영에서의 약진은 한층 두드러진다. 작년 <벌새>, <아워 바디>, <메기> 등 새로운 세대의 감독들이 이 시대에 대한 본인들의 솔직한 고민들을 이어나가던 일련의 경향은 올해 더욱 강화됐다. 조민재 감독의 <작은 빛>, 오정석 감독의 <여름날>, 윤단비 감독의 <남매의 여름밤> 등 섬세한 시선과 안정된 연출력, 시대를 감지하는 예민한 촉수로 자신만의 영화 언어를 뽑아내는 90년대생 감독들이 부상했다.
여성 감독들의 활약은 이제 약진이라고 부르기 어색할 정도로 당연한 것이 되었다. 독립, 저예산 영화에 주로 머물렀던 한계를 넘어 <침입자>(손원평 감독), <내가 죽던 날>(박지완 감독), <소리도 없이>(홍의정 감독) 등 이제 상업영화나 규모가 있는 프로젝트에서도 유의미한 결과물을 선보이고 있다. 물론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김초희 감독, <애비규환>의 최하나 감독, <69세>의 임선애 감독 등 규모나 주제를 가리지 않고 개성 넘치는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들 영화의 유일한 공통점은 감독이 두드러지는 영화라는 점이다. 같은 맥락에서 올해 한국 영화에서 흥미로운 경향 중 하나는 졸업작품으로 제작된 영화들의 반짝이는 작품성이다. 단순히 기술적인 완성도가 빼어나다기보다는 전에 없는 시선과 개성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감독들이 늘었다. 앞서 언급한 <남매의 여름밤> 윤단비 감독, <여름날> 오정석 감독이나 <담쟁이> 한제이 감독과 <에듀케이션> 김덕중 감독,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아워 미드나잇> 임정은 감독과 <종착역>의 권민표, 서한솔 감독 등 언급하고 싶은 이름들이 너무 많아서 걱정이다.
감독의 존재가 보이는 감독의 영화. 당연한 말처럼 들릴지 몰라도 사실 요 몇 년간 한국 영화의 가장 아쉬운 지점, 고질적 문제는 감독의 뚜렷한 개성을 드러내는 영화들이 점차 사라지고 기획영화들로 채워지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이런 흐름을 감안해볼 때 2000년 초반 한국 영화 전성기처럼 감독-작가들의 시대를 불러올, 예쁜 싹들이 자라고 있다고 낙관적인 기대를 품어도 좋을 것 같다. 본래 창작의 빛과 상상력은 크고 작은 제약 속에서 도리어 풍성하게 꽃피는 법이다.

<환상의 마로나>

영화는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발굴하는 것
해외 영화도 별반 다르지 않다. 산업적인 측면에서 전 세계 영화계는 위기다. 영화 시장은 축소되고, 제작은 중지되었으며, 극장은 문을 닫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론 영상 콘텐츠 전체의 규모는 지속적으로 커지고, 좋은 영화는 여전히 만들어지고 있으며, OTT 등 여러 플랫폼을 통한 접촉면은 늘어나고 있다. 무엇보다 위기 상황으로 인해 도리어 이전에는 쉽사리 눈에 띄지 않았을 수면 아래 영화들이 다양한 경로로 관객과의 만남을 시도하고 있다. 올해 외화 중 꼭 언급하고 싶은 작품은 안카 다미안 감독의 <환상의 마로나>다. 로드킬을 당하고 세상을 떠난 사랑스러운 개 마로나의 견생을 회고하는 이 아름다운 애니메이션은 개의 시점에서 삶과 행복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현명한 우화다. 전국 관객 6천 명을 동원한 이 영화는 여느 때라면 극장에서 단 한 번의 만남의 기회를 놓친 관객들이 다시 만나기 힘들 것이다. 나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OTT가 범람하면서 역설적으로 보이지 않는 진실, 당연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는 영화를 언제든 다시 만날 수 있다. 기자로서 신작과 개봉작의 홍수 속에서 속도를 따라가는 데 허덕이던 나는 신작이 사라진 자리에서 문득 깨닫는다. 영화는 새로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발굴하는 것임을.
OTT 플랫폼 전성시대, 당신이 마음을 먹는다면 언제든지 영화를 다시 불러와 안방에서 만날 수 있다. 그것이 영화인가, 그렇게 만나는 것이 영화적인 체험인지를 묻는다면 여전히 아직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누군가 이 글을 읽고 <환상의 마로나>를 찾아볼 수 있다면, 나는 이 만남의 가능성에 기대를 걸어보려 한다. 좋은 영화, 아름다운 이야기, 사랑스러운 작품들은 늘 우리 주변에 넘쳐난다. 이제 필요한 건 영화를 향해 걸음을 옮기는 당신의 수고와 의지다. 영화(혹은 극장이라는 영화적인 체험)이 점차 희미해지는 자리에서 새삼 영화의 자리를 새롭게 발견한다.


송경원(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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