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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56 컬쳐

'겁쟁이들을 위한 상영회'에 다녀오다.

2021.08.13 | *이 글에는 영화 '랑종'(2021)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무렇게나 쓴 글이라도 끝에 ‘여름이었다’를 붙이면 그럴싸해진다고 한다. 아마도 여름이 품고 있는 어떤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이가 시릴 정도로 시원한 수박, 자려고 누웠을 때 맴도는 모기 소리, 가끔씩의 여름밤 산책, 맥주 작은 캔 하나, 그리고 공포영화 같은.

'랑종'(2021)의 개봉 일주일 전 즈음이었다, 영화는 한국의 나홍진 감독('추격자'(2008) '황해'(2010) '곡성'(2016) 각본, 감독 등)이 제작과 원안을, 태국의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셔터'(2004) '샴'(2007) '피막'(2013) 각본, 감독 등)이 연출을 맡았는데, 이 두 감독의 협업에 각종 언론들이 진작부터 주목하고 있었다. 주위의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하루는, 친구가 ‘겁쟁이 상영회’라는 것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것은, ‘쫄보지만 '랑종'은 보고 싶어!’라는 문구를 내세운, 불이 켜진 영화관에서 ‘랑종’을 관람할 수 있는 특별 상영회였다. 곧바로 예매 어플을 켰다. 여름이었다.

7월 17일, 수원역 롯데시네마의 컬러리움관으로 향했다. ‘겁쟁이 상영회’는 오직 4개의 상영관[롯데시네마 슈퍼S(월드타워, 건대입구, 센텀시티)와 컬러리움(수원)]에서만 진행했는데, 해당 특수관들만이 내부 조명을 켠 채로도 생생한 화질의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조건을 충족했기 때문이다. 일반 상영관들과는 달리 슈퍼S와 컬러리움은 자체 발광할 수 있는 LED 스크린을 설치하여 영사기가 필요 없고, 영사기를 사용했을 때보다 최대 10배의 밝기와 훌륭한 명암비를 구현해낼 수 있다는 등의 이점이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영화관의 풍경도 많이 달라졌다. 기본적인 방역 절차를 지키는 것 외에도, 영화를 보면서 팝콘을 먹을 수 없고, 조조-심야 영화는 찾기 어려워지거나 사라졌다. 씁쓸함에 검표 장소 주변에서 입장을 뭉그적거리고 있었다.

직원 분께서는 겁쟁이 관객들에게, 잠시나마 소리를 차단할 수 있다며 이어플러그를 나눠주고 계셨다. 한 세트를 받아 상영관에 들어갔다.

예상외로 좌석은 거의 가득 차 있었다. 자리에 앉아서 생각했다, 겁쟁이들은 왜 모여서 불을 켜놓고까지 이 영화를 보려고 하는 걸까. 상영관은 공포영화를 관람하는 겁쟁이들에게 최적의 환경을 제공했다. 리클라이너 좌석은 등받이와 발받침의 각도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어서 근육의 긴장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자세를 가능케 했다. 적당히 밝은 조도가 유지되어 나보다 더한 겁쟁이가 있다는 것을 틈틈이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입장할 때 받은 이어플러그는 영화관 음향 시스템에 맞서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광고 및 안내 영상이 나올 때 조명이 잠시 꺼졌지만, 이내 다시 켜졌고, 영화가 시작됐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애매한

영화는 어느 다큐멘터리 촬영팀이 랑종(무당)을 취재하기 위해 태국의 전 지역을 순회하다가, ‘이산’ 지역에서 대대로 ‘바얀’ 신을 모시는 ‘님(싸와니 우툼마)’을 만나 집중 취재하던 중, 님의 조카 ‘밍(나릴야 군몽콘켓)’에게 이상한 증세가 나타나자, 그것이 신병 때문인지, 아니면 또 다른 정체 불명의 무언가 때문인지 관찰하는 이야기를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형식으로 풀어낸다. 극의 초반은 님의 인터뷰와 일상을 중심으로 무겁지 않게 전개된다. 5분 즈음 지났을까, 거의 누워 있던 앞자리 관객 한 명이 손을 모으고 졸기 시작했다. 가짜 겁쟁이였을까, 기도하는 것일 수도 있었겠다.

님이 형부의 장례식장을 향해 가는 도중에 도로 위에 어떤 동물이 죽어 있는 것을 목격하면서부터 공포스럽고 괴이한 분위기가 ‘풀악셀’을 밟기 시작한다. 무언가에 빙의 된 밍의 돌발 행동은 예측 불가하고 충격적이다. 특히 밍의 퇴마 의식을 치르기 직전의 일주일 씬이 압권이다. 밍을 방에 가뒀음에도, 아침이면 온 집안이 아수라장이 되자 촬영팀은 집 안 곳곳에 관찰 카메라를 설치한다. 5일 전… 4일 전… 3일 전… 카운트다운을 하듯, 매일 밤 밍의 모습이 야간 모드 촬영 영상으로 보인다. 키우던 반려견을 잡아먹는다든지, 계단 아래의 어둠 속에서 슬그머니 나타난다든지, 갑자기 카메라를 향해 돌진한다든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쯤 되니, 손으로 눈을 가린 채 관람하는 관객들이 다수 보였다. 한 사람은 아이돌이 프린트된 부채로 본인의 시야를 마음껏 통제했다. 부채의 높낮이에 따라 그 사람의 공포 수치를 대략적으로나마 알 수 있었다.

결국 퇴마 의식은 실패하고 밍에게 빙의한 수많은 악령들의 복수극이 펼쳐진다. 그런데 결말에 다가갈수록 점차적인 공포감이나 끝나간다는 안도감보다는, 왠지 모를 애매함에 웃음이 계속 나왔다. 이를테면 꿀을 발라놓았는지, 촬영팀은 좀비처럼 변해버린 (님의 동료) 랑종의 제자들에게 몸이 뜯겨가면서도 카메라를 놓지 않는다. 영화가 끝날 때도 마찬가지였다. 보통은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즈음 조명이 켜지고, 사람들이 하나 둘 빠져나가고, 그제서야 영화가 끝났다고 느낀다. 그런데 불이 내내 켜져 있었기에, 현실로 돌아왔다는 찰나의 번쩍임이 없었다. 영화 안팎으로 애매했다. 찝찝한 마음으로 상영관을 나오니, 많이 무서웠냐는 걱정 섞인 안부와 함께, 직원 분께서 오늘 무사히 잠들기 바란다며 스누피 무드등을 깜짝 선물로 나눠주셨다.

‘겁쟁이 상영회’는 용감한 사람도 충분히 흥미를 느낄 만한 상영회였다. 그러나 영화 '랑종'은, 개봉 후에 평이 갈린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스크린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한 장면도 분명 몇몇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실망스러웠다. 불을 끄고 봤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전의 공포영화들이 사용했던 방식들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음악을 깔고 뭐든 갑자기 툭 튀어나오면, 누구든 놀라지 않겠는가. 자극적인 요소를 배제하고도 공포심을 심장 깊숙이 찔러 넣는 영화들을 나는 봐왔다. 그런 의미에서 '랑종'은, 적어도 내게는, 분위기를 흉내 내는 가짜 공포영화였다. 랑종이었다.


글, 사진. 조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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