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산다고 매일 바다에 가진 않는다. 제주에 산다고 하면 종종 기대 가득한 시선을 받기에 힘주어 말할 때가 있다. 제주도 사람 사는 곳이고, 사람 사는 곳 다 똑같지 않나. 그러나 진실을 고백하면, 매일은 아니지만 거의 매일 바다에 간다.
걸어서 15분, 차로 3분 거리에 바다를 두고 산다. 봄, 겨울에 바다는 주로 산책 코스다. 입수할 수 있는 여름이 오면 바다 활용법은 좀 더 다이내믹해진다. 바다 옆에 살기 전에는 몰랐지. 스노클링이나 태닝 외에도 바다를 즐길 방법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그런 의미에서 생활형 바다 활용법(여름 편)을 살짝 공개해본다. 아래는 실제로 바다에서 해본 것 중 특히 좋았던 것을 꼽은 리스트다.
➀ 밤바다 보며 커피 내리기(난이도 하)
친구와 제주시에서 저녁을 먹고, 카페 대신 가까운 바다로 향한 적이 있다. 캠퍼인 그의 차에 휴대용 버너와 냄비, 커피 드립백이 들어 있던 것. 돗자리나 의자도 없이 방파제에 털썩 앉아 물을 끓이고 직접 커피를 내리는데, 마침 만조라 방파제 바로 아래까지 물이 찰랑였다. 한 줄 요약: 고소한 커피 향과 파도 소리, 수평선에 걸린 한치잡이배 불빛의 컬래버레이션.
➁ 아침 전세 수영(난이도 하)
아침의 바다는 공기도 물도 한낮의 열기를 머금기 전이라 상쾌하고 청량하다. 일어나자마자 꾀죄죄한 상태 그대로 선크림만 바른 뒤 바다로 향한다. 사람 없는 호젓한 해변을 전세 낸 것처럼 만끽하는 것이 핵심으로, 9~10시경 얼리버드 여행자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하면 짐을 챙겨 돌아온다.
➂ 런 & 스윔(난이도 중)
당신이 러너라면 망설일 것이 없다. 반드시 도전해보자. 여름엔 주로 해가 지고 뛰기에 정확히는 런 & 밤 수영이 되겠다. 러닝복 안에 스포츠브라와 비키니 팬티를 입고 해변 근처를 달린다. 러닝 종료와 동시에 겉옷을 훌렁 벗고 입수한다. 물 위에 누워 둥둥 떠 있으면서 뛰느라 한껏 달아오른 몸을 식힌다.
➃ 얕은 바다에 몸 담그고 밤 수다(난이도 중상)
어느 저녁 친구들과 해변에서 수다를 떨다, 조금씩 바다에 몸을 적신 끝에 결국 전원이 물에 들어앉아 버린 일이 있다. 발만 담가볼까? 하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온몸을 물속에 밀어 넣을 때의 해방감이란. 이날의 수중 토크는 동쪽 하늘에 샛별이 뜰 무렵에야 종료됐다. 평소 지형지물을 잘 아는 얕은 바다에서, 밤에도 기온과 수온이 떨어지지 않는 한여름의 며칠 동안만 가능하기에 난이도는 중상이다.
➄ 프리다이빙(난이도 상)
바다 생활을 더욱 풍요롭게 하기 위해 올여름 프리다이빙에 도전했다. 프리다이빙은 해녀가 물질하러 들어갈 때처럼 여타 장비 없이 자신의 호흡에 의지해 숨을 참고 물속 깊이 내려가는 다이빙 종목이다. 프로 프리다이버들은 10분 넘게 숨을 참고, 수면 아래로 100m 가까이 내려갈 수 있다. 아직 자격증을 따진 못했지만 프리다이빙을 배우며 익힌 기술로 6~7m 수심까지 들어갈 수 있게 됐다.
고난도의 프리다이빙이 ‘생활형 바다 활용법’에 왜 있는가 묻는다면, 알고 보니 집 주변에도 슥 방문할 수 있는 다이빙 포인트들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프리다이빙을 배우기 전에는 지척에 두고 보면서도 그 바다에 들어간다는 생각을 못했는데, 개안한 느낌이었다. 남은 여름엔 시간을 쪼개 틈틈이 생활형 다이빙(?)을 해볼 참이다.
지난 주말, 친구들과 서귀포의 어느 포구로 다이빙을 다녀왔다. 먼 바다로 나가자 해안 근처에서 스노클링할 때는 상상도 못했던 물속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일시에 방향을 바꾸는 거대한 물고기 떼와 그 비늘에 반사되어 물속에서 부서지는 빛의 조각들, 돌 사이로 하늘대는 해조류와 숨어 있다 고개를 내미는 작은 해양 생물들. 그리고 물 꼬륵 대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압도적인 고요. 바다라면 좀 다녀봤다고 자부했던 6년 차 도민은 그 세계를 엿보고 다시금 겸허해졌다. 역시 바다의 영역에서 아는 척은 금물이다. 품은 아름다움엔 끝이 없고, 우리는 모두 발끝만 적신 존재니까. 이 바다 활동 리스트도 그렇게 읽어달라.
글. 정지민
4년간 제주 로컬 매거진 에디터로 일하다 긴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다. <우리는 서로를 구할 수 있을까>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