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좋은 날이야. 이제 파이를 먹자!”
‘서호파이’의 가게 소개 글에 적힌 이 한 문장. 이 문장도 내 마음이 곧장 그곳으로 향하고 싶게끔 만드는, 그런 계기 중 하나였다. 내게 있어 파이가 따뜻함을 연상케 하는 디저트이기 때문일까. 정말 좋은 날이니 함께 파이를 먹자는 문장에 담긴 따뜻함은 그야말로 내가 생각하는 파이의 따뜻함 그 자체였다. 이런 문장으로 시작하는 가게라면 분명 이곳에서 파는 파이도 이 문장만큼이나 따뜻하고 포근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원하던, 따뜻한 파이를 먹기 위해서.
“The best apple pie in town.”
서호파이의 소개 글에 적혀 있는 또 다른 문구다. 애플파이 외에도 여러 종류의 파이를 팔긴 하지만 애플파이만큼은 시기에 상관없이 언제 가든 맛볼 수 있고 종류도 항상 서너 가지씩 준비된다. 그만큼 애플파이는 서호파이를 대표하는 메뉴라 할 수 있는데, 말마따나 정말 멋진 애플파이다.
브리티시 애플파이
만화 영화 <빨강 머리 앤>에서 꺼내 온 듯 마치 그림처럼 근사한 모양새가 그렇거니와, 잘 졸여져 부드러우면서도 몽글몽글한 식감이 살아 있는 달콤한 필링, 얇지만 바삭한 파이 크러스트. 거기다 파이 크러스트의 가장자리는 유난히 바삭하고 고소해서 이 부분만 따로 한가득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 맛은 애플파이를 떠올릴 때면 기대하게 되는 맛에 더해 한 번 더 마음을 울리는 감동마저 들어 있다. 이런 애플파이라면 정말정말 훌륭하다고 말하기에 손색이 없다.
🍂 파이를 베어 물면 입안 가득 가을이 🍂
애플파이라고 해서 다 같은 애플파이가 아니다.
계피와 향신료를 넣고 조린 사과 위에 바삭바삭한 크럼블이 올라가는 크림 크럼블 애플파이, 필링에 커스터드 크림이 들어가 한층 더 부드러운 브리티시 애플파이, 특유의 은은한 향이 매력적인 올스파이스 애플파이, 달콤하고 짭짤한 솔티드 캐러멜 애플파이 등 각자 비슷한 듯 서로 다른 매력이 있는 애플파이가 한가득이라 비교해가며 먹어보는 즐거움이 있다.
올스파이스, 체다치즈 애플파이
거기다 근래에는 두 종류의 치즈가 들어가는 체다치즈 애플파이가 새로 나왔는데, 아낌없이 들어간 치즈와 사과의 풍미가 잘 어울려서 그냥 먹기에도 좋지만 와인을 마시며 안주로 함께하기에도 제격이다. 이외에도 쫀득하고 달콤한 복숭아 파이라든가 식사 대용으로도 손색없는 셰퍼드 파이, 이름만 들어도 어떤 맛일지 궁금증을 자아내는 버터 스카치 파이 등 맛있는 파이들로 꽉 채워져 있는 쇼케이스를 보고 있으면 마음 한구석이 한없이 따뜻하고 달콤해진다.
쇼케이스에서 파이를 골라 구매하고 나면 항상 어떻게 먹는 것이 맛있는지 알려주시는데, 그대로 따라 해 먹는 것이 제일 맛있다. 데워서 먹으라고 말씀해주시는 파이들은 특히나 그렇다. 얼마 전에는 솔티드 캐러멜 애플파이를 알려주신 대로 전자레인지에 1분간 데워 먹었는데, 한층 더 부드러워진 사과와 따끈하게 데워져 녹아 흐르는 캐러멜 필링의 조합이란 정말이지 손을 멈출 수 없게 만드는 맛이었다.
어느샌가 또다시 가을이 찾아왔다. 바람은 쌀쌀하지만, 햇볕은 따뜻하고 하늘은 더없이 청명한 가을날. 내 마음에 잔잔한 울림을 가져다주었던 ‘좋은 날’과도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이런 날, 서호파이의 파이 한 조각과 함께라면 그야말로 더없이 좋은 나날이 될 것만 같다.
글 | 사진. 김여행
*전문은 <빅이슈> 260호에서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