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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62

홈리스 여성 이야기

2021.11.11 | 홈리스와 주거의 권리

홈리스 여성을 발견했을 당신이라면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 요사이는 먼저 쉼터 혹은 시설을 떠올리는 같다. 노숙인시설에서 일하다 보면 여기 어딘데 노숙하는 여성을 발견했다는 시민들의 전화를 받곤 한다. 곳이 없다며 찾아온 여성이 있다는 경찰관의 연락도 자주 받는다. 전화를 쪽의 질문은 주로 시설에 어떻게 하면 들어갈 있냐, 자격 조건이 있냐, 와서 모셔갈 있냐.’ 같은 것이다. 그러면 항상 묻는 있다. “ 여성분은 시설에 오기를 원하고 있나요?”

사람이 살도록 고안된 곳에서 권리
거주지가 불안할 때 사람은 존재가 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마련이다. 어느 날 밤늦은 시간, 버스가 끊기고 아직 집에 도착하지 못했을 때 여성들이 느끼는 막연한 불안은 약과일 것이다. 잘 알지 못하는 어느 지역에서 잘 곳을 찾지 못해 오늘 하루를 묵을 호텔이나 모텔, 그도 안 되면 찜질방이라도 찾아야 할 때의 긴장감은 대개는 곧 사라질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오늘 고시원에서 퇴거당하고 아직 다른 고시원이나 살 집을 구하지 못했다면, 더부살이하던 집에서 쫓겨났는데 방을 구할 능력이 없다면, 집이 있지만 그곳이 폭력의 위험으로 가득해 들어갈 수 없다면, 그럴 때 느끼는 불안은 공포에 가깝다. 더구나 지금 공원이나 지하도 어딘가에 잠자리를 마련하려 한다거나 기차역, 지하철역, 버스터미널, 혹은 병원 로비에서 날을 지새우는 중이라면, 지하철역 화장실에서 사람들이 없는 틈을 타 재빨리 세수를 하고 발을 씻어야 하는 생활이라면, 무료급식소를 이용하기 위해 문 앞에서부터 늘어진 긴 줄에 서 있다면, 그럴 때라면 아마 자신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가진 존재라는 말들이 딴 세상의 언어이거나 사치로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그처럼 홈리스 상태란 웬만해서는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기 힘들다. 더구나 노숙 생활을 하고 있다면 생명과 안전을 유지하는 기본권을 심각하게 훼손당하고 있기 십상이다. 이에 더해 여성이라면 주거의 불안정이 성폭력의 위험을 높이고 성적 자기결정권을 위협하는 조건이 된다. 그러니까 사람이 살도록, 혹은 잠자고 생활하도록 고안된 곳에서 살 권리는 인간이 존엄한 존재이기 위해 주어진 최소한의 기본권일 수밖에 없다. 해서 홈리스에게 월세를 지원해 노숙의 위험을 피하게 하고, 복지시설에 입소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홈리스의 주거의 권리를 보장하려는 방편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어디에서 자고, 어디에서 살 것인가를 결정할 권한도 갖고 있다. 여성이 홈리스 상황에 놓인다는 게 워낙 위험하고 딱한 일이다 보니 우리는 가끔 그가 시설 이용이나 입소의 뜻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아주 기본적인 과정을 생각하지 못한다. 과거에 우리는 적절한 거처를 마련하지 못한 주거가 불안정한 사람들을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시설에 수용했었다. 어쩌면 더 안전하고 살 만한 곳으로 갔으면 하는 선한 의도로, 또 한편으로는 보기 싫은 사람들을 눈에서 치웠으면 하는 혐오의 마음으로 그랬었다. 지금은 누구도 강제 수용을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노숙을 피할 방안으로 시설 외에 다른 걸 떠올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많다. 나라에서 그 좋은 데를 만들어놨다는데 왜 거리에서 그렇게 지내는지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들도 흔하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곳일지라도, 그곳이 안전한 곳이더라도 어려움에 처한 당사자가 원하지 않는다면 강요할 수 없다. 하물며 시설에서 생활하는 건 녹록지 않다.

독립 주거에서 거주할 권리
시설은 홈리스가 불안정한 상황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을 주는 매우 효율적 시스템이나, 막상 매일매일 시설에서 생활해야 하는 사람들의 처지에서 수월한 곳은 아니다. 내가 일하는 시설에서 홈리스 여성들의 소위 ‘민원’ 중 압도적 1위는 방을 좀 바꿔달라는 것이다. 이유는 각양각색이다. 한 방을 쓰는 아무개가 씻지 않아서 함께 지내기가 힘들다, 아무개가 코를 너무 골아서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다, 아무개가 남들 잘 시간에 목욕하고 들락거려 자꾸 잠을 설친다, 아무개가 생전 방청소를 안 하니 너무 밉다, 아무개가 자꾸 욕을 하고 간섭해 참기 힘들다,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함께 지내기 힘든 이유들이 있다. 가족이 아닌데 같은 방을 쓰고 욕실을 공유하며 생활하는 것, 정해진 시간에 여럿이 한 장소에서 밥을 먹는 것, 늘 내 짐과 남의 짐이 섞일까, 혹은 없어질까 걱정해야 하는 것, 어디라도 나만 있을 수 있는 곳이 없는 그런 생활이 시설의 생활을 의미한다면 아마 앞으로도 방을 바꿔달라는 호소는 없어지기 힘들 것이다.

그렇게 힘들수록 독립적인 자기 공간을 마련해 하루빨리 나가면 되지 않나? 하는 의문을 가진 사람들도 있으리라. 그렇지만 지금 우리는 원룸 하나를 얻을 보증금을 마련하기도 힘든 시대에 살고 있다. 인적, 물적 자원의 대부분이 고갈되어 시설에 입소하였던 홈리스들의 준비 기간은 길어질 수밖에 없다. 주거취약계층을 위한 임대주택이 있다지만 수요에 비해 훨씬 적은 양이 공급되어 시설에서의 독립이 지체되기도 한다. 게다가 정신질환이나 만성 질병이 있다면 시설에서 충분히 치료하고 재활 노력을 기울여, 어느 정도 능력을 갖추었을 때 독립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현실론도 만만치 않다. 일리가 있지만, 홈리스의 삶의 질을 고양하기 위해 다른 방안, 다른 시도, 다른 상상력도 필요하다. 미국 뉴욕시는 매년 홈리스에게 임대주택을 공급하기 위해 시와 홈리스 지원 단체가 공급량에 대해 협약을 맺고 이를 추진한다.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주거 먼저(housing First)’이다. 준비는 필요 없다는 것이다. 누구나 주거가 필요하며 이는 기본권이므로 주거에서 생활하며 해결할 문제들을 해결해가겠다는 것이다. 거리에서 1년 이상 노숙을 한 정신 장애가 있는 홈리스들이 주거를 먼저 제공받았을 때, 정신건강 관리를 훨씬 잘 하며 다시 노숙하지 않고 주거를 유지한다는 자료들도 제시된다.

또 어떤 이들은 생각할 것이다. ‘지금 노숙을 할 정도로 힘든데 그만한 시설에서라도 안전하게 지내며 앞날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지. 평생도 아니고 몇 달, 몇 년쯤은 인내해야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국민이라면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이 가능한 환경에서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로 최소주거기준이 제시되는 마당에, 시설이라고 언제까지 인내를 미덕으로 삼아야 살아낼 수 있는 환경으로 남아 있어야 할까. 언제까지 ‘시설에서 스스로 충분한 준비가 되었을 때 독립 주거로 갈 수 있다.’며 독립을 지연시켜야 할까.

내가 일하는 일시보호시설에서 일시 이용을 마치고 고시원으로 독립했던 A씨는 창문 없는 고시원 생활 6개월을 인내한 끝에 지난해 12월에 정신질환이 있는 노숙 경험 여성들을 위한 지원주택에 입주하였다. 작년 이맘때 지원주택 입주자로 선정되었다는 전화를 받고는 바로 시설로 전화해서 한참 대성통곡을 했다. 기뻐서였다. 모처럼 좋아서 우는 홈리스 여성을 대하니 하늘을 날 것 같았던 게 생각난다. 많은 홈리스 여성들이 그렇게 되는 것, 그것을 우리도 원하지 않는가.

*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김진미
여성 홈리스 일시 보호시설 ‘디딤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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