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실사 영화 <알라딘> 이 관객 천만을 기록했을 때, 한국 더빙판에서 알라딘을 연기했던 심규혁 성우 를 인터뷰했었다. 인상적이었던 것이 그가 성우라는 직업을 ‘전문가’라고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연기자로서 감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 이었다. 그러니까 모든 연기자들은 사실 기술자이지만, 성우는 그보다 더 전문적인 기술을 요하는 직업인 것이다. ‘발음과 연기, 무엇이 더 중요하냐.’ 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성우는 목소리가 영상에 잘 붙도록 입 길이를 잘 맞춰야 하고, 발음이 좋아야 하는 건 기본이다. 거기에 연기까지 잘해야 하기 때문에 녹음할 때 기술적인 부분에 신경이 쓰이지 않도록 평소 기본기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한다.” 고 답했다. 캐릭터에 따라 일부러 발음을 어눌하게 해야 할 때도 있고, 발음의 선명도를 캐릭터에 맞춰 조절해야 한다고 답했던 것도 인상적이었다. 성우이기에 딕션이 좋음에도 캐릭터의 성격에 따라 선명도를 조절하다니. 아니, 카메라 화이트밸런스 조절인가? 기계도 아닌 인간의 목에서 그런 일이 가능케 하려면 연습을 얼마나 해야 하는 걸까. 그에게 이후 《빅이슈》 에 연재를 부탁한 이유는 바로 이러한 답변들 때문이었다. 자신에게 엄격함을 지키며 일정 수준에 도달한 전문가의 글이 궁금했다. 《빅이슈 》에서 ‘글 라디오’라는 에세이를 연재하며 종종 팬들에게 잡지를 사서 읽어달라고 홍보도 놓치지 않는 성우이자 작가 심규혁을 만났다.
성우이기도 하시면서 《빅이슈 》 필자이기도 하신데요.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 네, 저는 애니메이션이나 CF, 게임 같은 곳에 목소리를 얹는 직업인 성우 일을 하는 심규혁이라고 합니다 .
《빅이슈》 에 연재를 하신 지도 1년이 넘었네요.
- 네, 1년이 훌쩍 넘었네요. 코너명은 ‘글라디오’이고요. 처음에 연재를 시작할 때 여러 가지로 고민을 하다가 의미를 끼워 맞춘 거긴 하지만, 제가 예전에 <포켓몬 스터>라는 만화에서 글라디오라는 역할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그 이름이 참 좋다고 생각했었어요. 성우란 글을 소리 데이터로 바꾸는 직업인데, 그게 마침 제 역할이기도 해서 이 코너명이 괜찮겠다 싶어서 그렇게 짓게 됐어요. 제 유튜브 채널명도 ‘글라디오’이거든요 .
이번에 드라마<유미의 세포들>에서는 이성세포 역할을 하고 계시잖아요.
- 녹음에 들어가기 전에 캐스팅 과정에서 어떤 작품들 보다도 면밀히 오디션을 거쳤던 것 같아요. 이성 세포 같은 경우에는 특히 애니메이션에만 등장하는 게 아 니라 실사에서 내레이션도 같이 하기로 되어 있었거 든요.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약간 이슈였던 게 이성 세포가 내레이션을 할 때 목소리를 어떻게 분리할 것 인가 하는 거였어요. 드라마 안에서 이만큼 애니메이 션의 비중이 큰 게 처음 있는 시도거든요. 애니와 실사 화면을 넘나들면서 해야 하니까 저도 새로운 경험이 었죠. 오디션도 세 번 정도 다시 봤던 것 같아요.
이성 세포는 목소리 톤을 잡는 과정이 어땠나요.
- 처음에는 제작진과 이야기를 많이 하고, 여러 가지 버 전으로 해봤는데 연기를 할 때 지나치게 이성적이어도 재미가 없거든요. 막 이성이가 화를 내기도 해요. 처음엔 너무 화내지 않는 쪽으로 했는데 밋밋한 것 같아서 좀 자유롭게 해봤더니 감독님이 나중에는 제 해석에 맡겨주셨어요. 보통 애니메이션 작화 작업이 실사보다 오래 걸리기 때문에 시즌 1 같은 경우에는 배우 캐스 팅이 되기 전에 성우들의 세포 녹음이 먼저 끝났어요. 저희는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진 걸 보지 못하고 콘티랑 설명만 듣고 연기를 한 거였어요. 이게 어떻게 구현될까 기대를 많이 하고 기다렸는데 1화에 애니메이션을 보고 퀄리티가 높아서 저도 재밌게 봤어요.
성우라는 직업은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시험에 합격 해야 하는 일이잖아요. 대원방송 2기로 합격을 하셔 서 벌써 10년 넘게 활동하고 계신데요. 꿈이 있어도 이루기가 어려운 세상에서, 성우님은 힘들 때 어떻게 이겨내셨어요?
- 성우 시험에 나이 제한은 없지만, 제가 시험을 여러 번 보다 보니 나이도 들어가고 있고 ‘이때쯤은 합격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함이 생기더라고요. 그런데 왠지 그해에는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투니버스에서 2차까지 갔지만 저는 떨어지고 친구만 합격을 했어요. 당시 아주 좁은 자취방에 살고 있었는데 집에 와서 거울을 보니까 이상한 감정이 들더라고요. 친구를 마냥 축하해줄 수 없는 감정? 거울을 보면서 양치를 하다가 펑펑 울었어요. 근데 이거 어떻게 해야 하지? 하고 방을 둘러보는데 자기계발서가 책장에 많았거든요. 그 책 중에 하나에서 성공하려면 한 가지를 하루 18시간 이상 해야 한다고 써져 있더라고요. 근데 내가 성우 연습을 18시간 이상 했나? 생각했을 때 그렇지 않았더라고요. 어떤 꿈이 있을 때 그것과 직접적으 로 관련된 연습이 아니더라도 여러 가지 창을 띄워놓고 아이디어도 얻으면서 이런저런 연습을 해보면 좋 은 것 같아요. 그럼 또 자신감이 생겨서 시험 볼 때 도움이 되더라고요.
※ 더 많은 사진과 기사 전문은 매거진 '빅이슈'263호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글. 김송희 | 사진. 김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