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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63

카라 더봄센터 :: 길고양이 관찰 일지

2021.11.23 | 그들의 삶이 오늘 하루도 평온했길 기도하며

카라는 길고양이들의 안녕한 길 생활을 위해 길고양이 급식소 운영과 TNR[1]을 진행하고 있다. 200여 마리의 구조 동물들이 보호받고 있는 카라 더봄센터. 그 속에서 만나게 된 길고양이들의 삶을 조명해보려 한다. 2020년 초, 더봄센터가 지어진 후 2년이 가까운 시간 동안 만나온 길고양이들을 소개해본다.

[1호 와플이]

1호와의 첫 만남, 그 순간은 마치 공포 영화처럼 서늘했다. 우리는 더봄센터 안에서 그것도 뜬금없는 로비 계단에서 동물의 배설물과 마주했다. 더봄센터가 지어지던 무렵이었고 아직 동물은 한 마리도 입소하지 않은 상태였다. 누구의 배설물일까? 머지않아 CCTV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당시 한겨울이던 추운 날씨를 피해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가 센터에 갇히게 된 것이었다.
우리는 센터 곳곳에 포획틀을 설치했다. 1호의 구조와 TNR을 위해서였다. 물론 그 어떤 동물보다 먼저 센터에 입소한 녀석의 얼굴이 궁금하기도 했다. 1호는 대형견사 준비실 깊숙한 곳에 은신하고 있었고 해가 저물어갈 무렵 순순히 포획틀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1호는 짤따란 꼬리와 노릇노릇한 털색을 가진 고양이였다.
2호를 만난 건 1호를 잡기 위한 포획틀을 설치해둔 후였다. 건물 입구에서 뜬금없이 2호가 잡혔다.

[2호 초코]

얼떨결에 잡혀버린 2호는 동글동글 ‘털찐’ 모습에 회색 무늬가 인상적인 고양이였다. 그렇게 1호와 2호는 사이좋게 중성화 수술을 하고 길 위로 돌아갔다. 이후 다시 더봄센터의 밥자리를 찾아주었다. 종종 급식소와 인근 밭에서 뒹구는 모습을 보는 것으로 1호와 2호의 안녕을 확인했다.
1년이 조금 넘은 시간이 흘렀을까, 1호는 어느 순간 자취를 감추었다. 1호의 행방에 대해 여러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도로를 건너다 로드킬을 당했을 수도 있고, 다른 길고양이에게 영역에서 밀려났을 수도 있고, 급작스러운 질병으로 생을 마감했을 수도 있다. 길고양이들의 삶이란 너무나 척박하고 위험하기 때문이다. 1호가 어떠한 사유로 사라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저 막연히 잘 지내고 있길, 갑자기 태연하게 급식소에 모습을 비춰주길 바랄 뿐이다.
더봄센터 터줏대감이 된 2호는 꽤나 여유로운 모습으로 이곳을 제집 드나들 듯 다니고 있다. 이름을 아무리 불러도 귓등으로도 안 듣지만, 급식소에 맛있는 간식이 있는 날이면 꽤나 용감하게 다가온다. 견사에서 지내는 개들이 2호를 발견하고는 맹렬하게 짖어도 전혀 개의치 않고 보란 듯이 길가에 길게 누워 쉬곤 한다. 자기 집인 것마냥 살맛 난 2호를 볼 때면 어이가 없다가도 더봄센터 전체를 주고 싶은 맹목적인 사랑을 느끼기도 한다.
이 일대를 꽉 잡고 있는 2호 덕분인지 더봄센터에는 다른 길고양이의 유입이 적은 편이다. 그런 2호의 파워를 이겨내고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고양이는 7호가 유일하다. 7호는 2호의 영향력이 아주 거세던 시기에 나타났기에, 당시에는 2호에게 밀려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호시탐탐 영역을 지키던 2호는 어쩐 일인지 7호와는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며 공존했다. 2호와 7호의 영역을 미세하게 나눠보자면 2호는 더봄센터 옆 콩밭, 7호는 더봄센터 옆 배추밭으로 볼 수 있다. 이 차이 때문인지 둘은 서로를 인정해준 모양이다.

[7호 치로 포획전 모습]

7호는 2호보다 사람에 대한 경계가 심하다. 처음 나타났을 당시에는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며 다가와 간식을 먹기도 했던 7호는 중성화 수술 이후 완전히 멀어지게 되었다. 7호의 입장에서는 중성화 수술 과정이 납치와 다름없을 테니, 당연하다. 그래도 7호를 위한 일이었음을 언젠간 알아주길 바랄 뿐이다. 영역을 벗어나지 않고 먼발치에서나마 생사를 확인시켜주는 7호가 고맙다.
우리는 더봄센터에서 8호 고양이까지 만났다. 이 중 상처입어 방사가 불가능하거나 입양의 기회가 필요한 고양이들은 가족을 찾아주기 위해 카라에 입소하기도 했다. 그중 5호와 8호는 평생 가족을 만났고, 현재 3호와 6호는 입양카페 아름품에서 가족을 기다리고 있다.
길고양이들은 사람들의 애정을 받기도 하지만,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길고양이뿐만 아니라 길고양이를 돌보는 사람들 또한 그 대상이 되기도 하는 사회에서 사는 우리는 길 위의 작은 생명에게 온기를 나누어줄 수 있을까? 가장 가까이에 살고 있지만 가장 먼 이웃 길고양이, 그들의 삶이 오늘 하루도 평온했길 기도하며 이 글을 마친다.

[1] trap-neuter-return, 길고양이의 개체수를 적절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길고양이를 인도적인 방법으로 포획하여 중성화 수술 후 원래 포획한 장소에 풀어주는 활동.

※ 더 많은 사진과 기사 전문은 매거진 '빅이슈'263호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글. 김민영 | 사진. 동물권행동 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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