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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75 에세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영화와 사람을 만나며 생각한 것들 (2)

2022.05.30

ⓒ unsplash

이 글은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영화와 사람을 만나며 생각한 것들 (1)에서 이어집니다.

작가냐, 감독이냐

‘영화보다 낯선+’이라는 섹션으로 김영글, 송주원 작가를 만났다. ‘영화는 이러하다’, ‘이런 게 영화다’라는 어쩌면 고정관념, 또 어쩌면 관습인 정의를 무색하게 하는 영화들을 소개하는 섹션이다. 〈파란 나라〉(2020), 〈해마 찾기〉(2016)를 만든 김영글은 텍스트, 더 구체적으로는 이야기를 중심에 두고 영상과 출판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그가 주목하는 이야기라면 대체로 사회적, 역사적으로 소외되고 주변화되고 비가시화된 존재들이다. 흔히 영상과 책은 전혀 다른 물성의 매체라고 하는데 그에게는 오히려 아주 가까이 붙어 있고 무척이나 닮아 있는 매체다. 푸티지 영상, 실사, 애니메이션 등을 구성, 배치, 편집해 새로운 역사 읽기를 시도하는 그는 자신을 ‘편집자’라는 정체성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무용수이자 안무가인 송주원은 댄스 필름 혹은 퍼포먼스 아트로 명명되는 일련의 작업을 한다. 신체 언어인 춤, 움직이는 몸을 통해 공간을 다시 드러내 보인다. 특히 그가 주목하는 공간은 한국의 개발과 재개발의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곳이다. 〈마후라〉(2021), 〈나는 사자다〉(2019), 〈풍정.각(風精.刻) 푸른고개가 있는 동네〉(2018)를 통해 공간이라는 몸, 무용수의 몸을 통한 공간의 재인식을 보게 될 것이다.

이들과 대화를 나누며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 부분이 있다. 글, 영상, 무용, 미술 등 다양한 매체와 매개를 넘나들며 작업하는 이들이 아닌가. 영화관에서는 영화감독으로, 미술관에서는 전시 작가로 불린다. 호명하는 말이 많다는 것의 곤란함과 애매함에 관해서라면 나는 누구보다 잘 안다. 나도 이름이 많으니까. 영화평론가, 작가, 프로그래머, 영화 저널리스트…. 이에 관한 두 작가의 입장은 이러했다. ‘경계를 넘나드는 사람 그리고 작업’, ‘나는 누구다’, ‘나는 무엇이다’라고 명명하고 정의 내리기보다는 ‘내가 하는 작업으로 설명되길 바란다.’는 게 그들의 대답의 요지다. 감독이기도 하고 작가이기도 하다. 혹은 그 모든 것도 아니다. 경계, 사이 어딘가를 떠돌고 부유하며 뭔가를 만들고 있는 사람이다. 그들에게서 나를 본다. 나도 그렇다.

ⓒ unsplash

영화는 영화인가

세르히 로즈니챠 감독의 마스터 클래스에 참여해 화상으로 감독님과 길게 이야기를 나눴다. 벨라루스에서 태어나 우크라이나에서 자란 그는 소비에트 지배에 맞서 저항하는 사람들, 민족의 역사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여왔고 유럽 학살의 역사를 조명하기도 했다. 〈미스터 란즈베르기스〉(2021)는 리투아니아 독립운동을 이끈 정치인이자 음악가 란즈베르기스를 인터뷰하며 1990년대 정치 격동기를 아카이빙 자료로 구성한 작품이다. 한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30여 년 전에 벌어진 독립 투쟁기라지만 ‘정치’라는 게 갖는 핵심적인 역할, 의제, 정치를 둘러싼 첨예한 갈등과 역학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시의적절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바비 야르 협곡〉(2021)은 1941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점령한 나치 독일이 인근 바비 야르 협곡에서 약 3만 4,000명의 유대인을 총살한 ‘바비 야르 대학살’을 역사적 아카이브 자료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과거를 어떻게 지금 시점에서 재구성하고 말하고 기억할 것인가. 다큐멘터리 영화의 오랜 질문이다. 로즈니챠의 영화를 보면서 아카이브 푸티지에 사운드와 편집의 세공이 덧입혀지며 맥락이 만들어지는 법을 본다. 마치 거대한 건축물의 설계도처럼 그가 하나씩 축조해나가는 세계는 전혀 지루하지 않다. 최근 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적극적인 반대의 목소리를 낸다. 러시아의 영화인들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우크라이나영화아카데미로부터 회원 자격을 박탈당했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에 관해 유럽영화아카데미의 미온적 태도를 맹비난하며 멤버십에서 탈퇴했다. 때론 ‘영화는 영화니까’ 하며 스크린 너머의 세계를 안도하며 본다. 그게 영화다. 그런데 또 어떤 순간에는 영화와 삶, 영화와 정치, 영화와 역사가 아주 가까이 붙어 있다고 느낀다. 로즈니챠의 영화가, 로즈니챠의 삶이 그러한 것처럼 말이다.

PS
남은 영화제 기간에 또 어떤 영화와 사람을 만날까. 그게 어떤 영화든, 그게 누구든, 뭔가를 쓰고 싶다는 마음이 일 수 있길 바란다. 그 우연한 만남을 기다린다.

글. 정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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