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상단으로이동
신간 · 과월호 홈 / 매거진 / 신간 · 과월호
링크복사
링크가 복사되었습니다.
글자확대
글자축소

No.287 에세이

내 커리어에 특별함이 없다? 잇다! ― 잇다 신재완 매니저

2022.11.23


“글이 안 써져, 글을 못 쓰게 된 지 오래야.” 이렇게 말하자 친구는 반문했습니다. “너 글 쓰는 게 직업 아니야?” 글 쓰는 게 내 직업인가? 나는 시인도, 작가도 아닌데? 어쨌든 업무 성격에 글쓰기가 포함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글이 좀처럼 써지지 않아서 마감 때마다 괴로움에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스웨덴 작가 테오도르 칼리파티데스는 글이 더는 써지지 않는다며 77세에 <다시 쓸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산문집을 냈는데요. ‘글이 써지지 않는다며, 어떻게 산문집을 쓴 거야!’라며 펼쳐보니 평생 소설을 써오다가 글이 안 써져서 절필을 고민하는 마음을 기록한 것이 이 책이라고 합니다. 글이 안 써지는 괴로움조차 글로 쓰다니. 이런 사람이야말로 소설가가 되는 것인가! 어쨌든 이 책 속에 최근 제 마음과 같은 문장이 있었습니다.

“아예 쓰지 않는 것보다도 후지게 쓰는 것이 두려웠다.” 그러니까 아에이오우, 가나다라마바사… 하나 마나 한 그런 글들을 쓰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글이 안 써지는 것은 잘 쓰고 싶어서이기도 하고, 정말로 내게 더 할 말이 없다고 느껴지는 무력감에서 비롯되기도 합니다. 최근 제 주변의 사람들은 10월 29일 용산구에서 있었던 참사에 대해 무언가 표현하고 싶어 합니다. 대부분 애도하고 명복을 비는 내용입니다. 그런 글이라도 한 줄 남겨두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어서 글을 쓰다가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서 지우기를 반복합니다. 무력함이죠. 《빅이슈》에는 “당신이 읽는 순간, 세상이 바뀝니다”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세상이 바뀐다, 당신의 행위로 안 좋았던 세상이 좋은 방향으로 바뀐다는 의미겠죠. 무엇이 어떻게 바뀐다, 라는 설명은 없이 그냥 ‘세상이 바뀐다’라고만 되어 있지만요.

수년 전부터 저를 사로잡은 비애감은 세상이 나쁘게 변하고 있다는 데서 기인합니다. 좋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무력해지고,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서 허탈합니다. 뉴스를 피하게 되고, 그러니 무관심으로 인해 더 모르게 되고 저 같은 사람이 많아지면 세상은 더 나빠지겠죠. 글이 써지지 않는다는 문장으로 시작해, 어쩌다 보니 길게 쓰고 있습니다. 당신의 세상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손에 만져지는, 실감할 수 있는 세상이 좋은 것으로 바뀌고 있나요. 누군가를 돕는 행동은 다른 사람에게도 비슷한 변화를 가져온다고 합니다. 그런 좋은 변화들이 주변에서 많이 감지되나요? 편을 가르고, 혐오하고, 모멸감을 주고 타인을 힐난하는 그런 말들이 뉴스를 떠다닙니다. 그보다는 슬퍼하고, 애착하는 마음으로 여린 존재들이 다정한 감각을 나누면 좋겠습니다. 글이 써지지 않는 나날입니다. 그럼에도 당신에게 많은 글이 모여 있는 잡지를 보냅니다. 여기 모인 작가들이 어렵게 쓴 현장의 문장들을.


편집장. 김송희


1 2 3 4 5 6 7 8 

다른 매거진

< 이전 다음 >
빅이슈의 뉴스레터를 구독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