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_최산호
이모들과 5년 전쯤 제주도로 여행을 간 적이 있습니다. 제주공항 근처 횟집에서 식사를 하던 중 셋째 이모가 최근 이사했다는 소식이 화제에 올랐습니다. 엄마는 이모가 간도 크게 1억 넘게 대출을 받았다고 핀잔을 줬지만 그 결정으로 이모는 대구 시내에서 가까운 새 아파트를 분양 받아 살아보게 되었다고 했죠. 저는 우물거리며 물었습니다. “이모 축하해. 그 아파트는 전에 살던 데보다 뭐가 좋아?” 신축 아파트 특유의 다양한 커뮤니티나 내부 구조에 관한 칭찬을 할 줄 알았는데 이모가 한 답변은 제 예상을 한참 벗어나는 것이었습니다. “여 오니까 사람들이 나한테 뭐라고 하는 줄 아나? 사모님이랜다, 사모님. 경비실 아저씨도 나한테 그러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나한테 다 사모님이라 칸다.” 저는 다시 물었습니다. “엉? 그럼 전에는 이모한테 사람들이 뭐라고 했는데?” 이모는 피식 웃었습니다. “뭐라 카긴 뭐라 해. 그냥 아줌마라 캤지.”
이모와의 그 대화가 떠오른 건 책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에서 이와 비슷한 일화를 읽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자 하재영 소설가는 어릴 때부터 살았던 집에서 현재의 집에 이르기까지, 그 동네에 얽힌 추억이 자신의 변화와 성장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고백합니다. 그중 제가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일화는 그가 목격한 이웃 간 싸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동네의 분위기가 심각하게 거칠다고 느껴 이사를 가려고 하던 저자는 1층에 이사 온 세입자와 인사를 나누게 되는데 그가 자신을 부르는 호칭에 신선한 충격을 받습니다. 상대는 점잖은 인상의 중년 남성이었는데 자신을 보자마자 “위층에 사는 선생님이시지요?”라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자는 그 호칭이 왜 그렇게나 생경하게 들렸는지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선생님’은 이 동네에서 주고받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호칭이었다. 사람들은 서로를 아저씨, 아줌마, 아가씨, 가끔은 어이, 형씨 등으로 불렀다. 성별과 나이를 불문하고 상대를 선생님이라고 존칭하는 사람은 내가 만난 동네 주민 가운데 그가 유일했다.'
그 1층의 남자와 인사를 나누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자는 그가 동네에서 어떤 이웃과 싸움에 휘말리는 걸 보게 됩니다. 상대는 길길이 날뛰며 욕설을 하고 있었고 중년 남자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선생님 제발….” 같은 말을 하고 있었지요. 저자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앞뒤 사정은 모르지만 그 남자가 잘못했을 리 없다고. 상대를 “개새끼”라고 부르는 사람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사람 중에서 후자가 잘못했을 리 없다고 말이지요.
이처럼 우리는 어떤 호칭을 주로 쓰는 사람을 보면서 부정적인 편견이 생기기도 하고 우호적인 시각이 생기기도 합니다. 한 번쯤은 호칭 때문에 기분이 좋아지거나 반대로 나빠져본 적이 있을 테고요. 호칭이 중요한 진짜 이유는 예의 바른 사람인지 아닌지를 평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을 지칭할 때 어떤 호칭을 자주 쓰는 사람인가를 보면 그가 자기를 뺀 외부 세계를 주로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특히 한국처럼 친구의 아내를 볼 때조차 ‘제수씨’라고 부를지 ‘형수님’이라고 부를지 잠깐 고민하게 되는 고맥락의 문화 속에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이 글은 '타인을 부르는 호칭은 상대가 아닌 나의 격을 보여준다 (2)'로 이어집니다.
글. 정문정
그림. 최산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