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주의, 가장 한국적인 계급 지도 / 유령들의 패자부활전> 장석준·김민섭 지음, 갈라파고스 펴냄
머리가 비상하고 노력만 하면 계층이나 계급의 사다리를 올라 ‘개천의 용’이 될 수 있다는 능력주의는 이제 한국 사회에서 유효하지 않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능력주의는 여전히 강력한 헤게모니다. 이 책은 한국 능력주의 세계관의 현실을 포착한다. 그 방식이 매우 특이한데, 한 권의 책에서 논픽션과 픽션의 이중 시선으로 바라본다.
논픽션 파트의 저자 장석준은 근대사를 거치며 대두한 ‘지식 중간계급’에 주목해 능력주의의 기원과 한국이 능력주의의 최전선이 된 기원을 추적한다. 픽션 파트의 저자 김민섭은 지방대학을 배경으로 능력주의 ‘사다리 세계관’의 패자들이 모여 사다리 근방을 서성이며 겪는 곤란과 좌절, 분투를 그린다. ‘소수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능력주의가 어떻게 사회 전체의 헤게모니가 되었는지’를 파헤치고 능력주의 바깥을 향하는 길을 탐색한다. 픽션 부분에 나오는 “근데 뭐, 여기는 지방대니까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요. 어쩔 수 없잖아요. 제가 노력 안 해서 여기까지 온 건데. 벌 받는 거죠.”라는 문장의 ‘벌’에 오래 눈길이 머문다. 한국에서는 벌 받을 일이 참 많다.
ⓒ <능력주의, 가장 한국적인 계급 지도 / 유령들의 패자부활전> 표지
<우울이라 쓰지 않고> 문이영 지음, 오후의 소묘 펴냄
이 책에서 작가는 우울의 다채로운 풍경을 섬세한 눈과 오래 내디딘 걸음으로 보여준다. 작가는 작은 기쁨과 차분한 격정의 언덕을 오르내리고, 상처의 골목을 새로이 헤매고, 또 사랑의 바다로 나아가는데, 그의 걸음에, 나의 걸음을 겹치며 따라가다 보면 우울의 지형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구나 하고 놀라게 된다.
“뒤틀린 사랑이 있음을 알고도 사랑을 믿는 일이, 위로와 용기의 이면을 알면서도 위로하거나 위로받고 용기를 내는 일이 불가능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것들 없이 사는 일도 마찬가지로 가능하지 않았다.”라는 작가의 말에서 우울을 데리고 먼 데까지 걸어본 이의 아름답고 너른 마음이 읽힌다. 감정과 마음을 깊고 넓게 살피는 오후의 소묘 새 산문 시리즈 ‘마음의 지도’ 첫 권이 왜 이 책인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 <우울이라 쓰지 않고> 표지
글. 원혜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