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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95 컬쳐

MOVIE ― <이니셰린의 밴시>

2023.03.21


<이니셰린의 밴시>

ⓒ <이니셰린의 밴시>

감독: 마틴 맥도나
출연: 콜린 파렐, 브렌단 글리슨, 케리 콘돈
개봉일: 3 15

본토에서 전쟁이 발발해 바다 건너 대포 소리가 끝없이 들려도, 머나먼 아일랜드의 섬마을 이니셰린은 평온하기만 하다. 따분하고 지루한 마을에서 파우릭(콜린 파렐)은 소를 치며 여동생 시오반(케리 콘돈)과 단둘이 살고 있다. 현재에 아무 불만도 걱정도 없는 파우릭은 매일같이 절친 콜름(브렌단 글리슨)과 펍에 가서 시간을 죽이는 게 일과다. 온 동네 사람들이 인정하는 절친 콜름과 펍에 가기 위해 콜름의 집을 찾아간 어느 날, 콜름은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할 수 없이 혼자 펍에 가서 흑맥주를 시켜 한 모금 마시는 파우릭에게 주인장은 묻는다. “콜름은?” 매일 만나 술을 마시고 수다를 떨던 두 사람 사이에 느닷없이 문제가 생긴다. 콜름이 파우릭에게 절교를 선언한 것. “내가 술 취해 무슨 말실수를 했나요? 내가 뭐 기분 상하게 한 게 있어요?” 아무리 물어도 고개를 흔들며 아무 일도 없었다고 답하는 콜름. 귀찮게 따라다니며 다시 친하게 지내자고 말을 거는 파우릭에게 콜름은 단언한다. “그냥 자네가 싫어졌어. 자네의 지루한 수다를 듣느라 인생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 제발 나에게 말 걸지 마!”

일상이라곤 콜름과 펍에 가기밖에 없었던 파우릭은 갑작스러운 절교 선언을 인정할 수가 없어 콜름 뒤를 졸졸 쫓아다닌다. 그런 파우릭에게 콜름이 최후 통첩을 날린다. “한 번만 더 나를 귀찮게 하면 내 손가락을 잘라 자네 집에 던져주겠어. 말을 걸 때마다 손가락 하나씩을 잘라주지.”

<킬러들의 도시> <쓰리 빌보드>의 마틴 맥도나 감독의 <이니셰린의 밴시>는 언뜻 보면 착하지만 눈치 없는 남자 파우릭과 예민하고 과묵한 남자 콜름의 소동극처럼 보인다. 어느 순간에는 ‘절교를 위해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가도 ‘제발 말 좀 걸지 마.’라고 파우릭의 멱살을 잡고 싶어질 정도다. 단조로운 섬마을에서 서로의 작은 집을 오가며 “제발 다시 나랑 친구해줘요.”라고 매달리는 남자와 “자네가 싫어졌다.”고 거절하는 남자의 승강이가 이야기의 전부 같다. 지혜로운 시오반이 둘을 중재하려 하지만 파우릭은 이 지긋지긋한 ‘우정’을 포기하지 않는다. 술에 취해 “이건 지나갈 애정 다툼”이라고 외칠 정도다.

영화 제목인 ‘이니셰린의 밴시’는 극 중 음악을 사랑하는 콜름이 작곡한 곡 제목이며 ‘밴시’는 아일랜드 민화에 나오는 요정으로 가족의 죽음을 예언한다고 알려진다. 바다 건너편에서는 끝없이 화포 연기가 피어오르지만 전쟁이 길어지자 마을 사람들은 누가 누구랑 싸우는지도 잊어버린다.

<쓰리 빌보드>의 밀드레드가 딸의 살인마를 잡기 위해 집요하게 광고판을 매달듯이 <이니셰린의 밴시>의 주인공들 모두 몹시 고집스럽고 끈질기다. 1922년 평화로운 바닷가에 일어난 갑작스러운 다툼, 그리고 죽음을 예언하는 동네 노파의 존재는 아일랜드 내전과 전쟁에 대한 은유다. 1922년 아일랜드가 배경이지만 2023년 서로 반목하고, 타자를 미워하고 갈등하는 인간들에 대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얼굴을 잔뜩 구기고 미련한 소 치기로 변신한 콜린 파렐은 이 영화로 골든 글로브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95회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총 9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글. 김송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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