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녹색연합
“호흡기를 물고 바다에 풍덩 뛰어듭니다. 가슴이 뛰고 호흡이 가빠집니다. 수면에서 호흡을 고릅니다. 몸이 가라앉기 시작합니다. 곧, 다른 세계로 진입합니다.” 첫 스쿠버 다이빙에 대한 기억입니다. 무섭지만 긴장되고 설렜던 순간, 얼마나 많은 미지의 존재를 만나게 될까, 마음이 요동쳤지요. 한편으로는 부담감도 컸습니다. 저는 제주 바닷속 연산호 조사 활동을 위해 다이빙을 배웠어요. 2012년에 서귀포 강정마을의 구럼비 해안이 발파되었고, 제주해군기지 방파제를 쌓기 위해 케이슨이 바다에 투하됐거든요. 문화재청, 제주도, 해양수산부, 유네스코 등 여러 곳에서 보호구역으로 지정할 만큼 경관이 뛰어나고 다양한 해양생물이 살고 있는 곳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당시 녹색연합은 해상 공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바닷속 다양한 산호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2014년부터 제주 연산호 조사 활동에 합류했는데, 처음엔 조사팀을 지원하는 역할을 했어요. 배 위에서 입수 지점을 기록하거나 현장 스케치 사진을 찍기도 하고요. 조사팀이 바닷속으로 사라지면 그들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배에 앉아 한라산의 능선과 범섬, 그리고 해상 공사 현장을 바라보곤 했습니다. 그러던 중 일본 오키나와에 출장을 갈 기회가 생겼어요. 바다를 매립해 군사기지를 확장하려는 정부의 계획에 반대하는 오키나와 주민들이 수중 조사를 어떻게 하는지 배우고, 공동 조사하는 워크숍에 참여할 기회가 마침 생겼거든요. 그래, 이번 기회에 다이빙을 배워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직접 뛰어들어 몸으로 감각한 바다는 동료들이 찍은 사진과 영상을 볼 때와 완전히 달랐어요. 무중력에 가까운 상태를 느꼈고, 눈앞에 펼쳐진 바닷속 생명은 각자 자신의 리듬으로 꼼지락거렸습니다. 호흡이 안정될 때는 마치 바닷속을 날아다니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바다가 보여주는 황홀경에 놀랐고 압도되었어요. 오키나와 북동부 헤노코 앞바다인 오우라만(大浦湾)에 다녀온 것도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었습니다. 제주 강정 바닷속 연산호 변화상을 꾸준히 조사했지만, 조사 방법이나 데이터 분석에 도움을 줄 전문가를 찾기 어려웠거든요. 군사기지 건설로 불거진 문제에 대해 특히 국가기관 연구자들의 검토 의견을 받는 것은 불가능했어요. 오키나와 사례가 도움이 되었습니다.
오우라만에 서식하는 다양한 해양생물에 대한 기록, 해양 매립과 군사기지 건설이 산호충류, 갑각류, 해양포유류 등에 미칠 영향이 일목요연한 자료로 정리돼 있었어요. 조사 대상지의 수직, 수평의 변화상 조사에 대해 배우기도 했고요. 바다의 변화상을 기록하는 시민들, 조사 방식을 주민들에게 알려주고 데이터를 확인하는 해양 전문가, 해양생태계 보호의 목소리를 확산시키는 활동가와 법률 전문가 등 모두 인상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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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기록하는 사람들
지금은 ‘기후위기’, ‘생물다양성’, ‘시민과학’을 키워드로 제주 바다, 특히 서귀포 문섬과 범섬 주변을 꼼꼼히 살피고 있습니다. 제주 바다는 생물다양성이 뛰어난 곳이지만, 동시에 기후위기의 최전선이기도 하거든요. 문섬과 범섬의 개발과 이용 현황, 산호 서식지, 기후변화의 징후들을 차근차근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연생태 분야 연구기관의 전문가들은 인력과 역할에 한계가 있어요. 몇 명 되지 않는 연구자들이 전국의 바다를 모두 조사하기는 어렵지요. 다이버들의 꾸준한 기록과 감시 활동이 해양생태계 보호의 목소리를 내는 데 근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레저 활동인 ‘펀 다이빙’을 넘어 ‘바다를 기록하는 시민 과학자’로서 조사 다이빙을 할 수 있도록 산호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상기후 소식이 매일같이 보도되고, 세계 곳곳이 폭염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대기의 탄소와 열을 흡수해온 바다 역시 올해 해수 온도가 가파르게 상승해 기후 변동 폭이 더욱 커질 것을 예고하고 있지요. 연안 오염과 수온 상승, 해조류가 사라져 사막화되는 갯녹음 현상을 보며, 기록과 감시의 역할이 더더욱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녹색연합 동료들과의 모색 끝에 해양생태계 보호에 집중할 단체를 만들었어요. 바로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입니다. 제주에 거점을 두고 산호 군락, 해조 숲, 연안 오염에 대한 기록을 본격적으로 하려고요. 시민, 연구자 들과 해양생태계 보호와 복원의 목소리를 만들려고 합니다. 이 작은 시작이 변화를 열망하는 크고 작은 물결이 되길, 파란이 되어 일렁이길 바라봅니다.
소개
신수연
녹색연합 전 해양생태팀장. 해양팀 동료들과 이번 달부터 제주에서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을 시작한다.
글. 신수연 | 사진제공. 녹색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