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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05 인터뷰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 작가 최현숙 (1)

2023.08.28

‘저 사람들은 어떤 맛으로 살까?’, 그게 궁금하다고 했다. 소외된 사람들, 더러움과 아픔이 응축된 곳을 볼 때도 이런 의문을 잊지 않았을 사람. 그 맛에 동조해서 깔깔 웃고 이야기하고 기록하는 사람. 구술생애사 작가이자 소설가인 최현숙이 5년 만에 산문집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를 냈다. 이 책이 이웃 이야기를 듣듯 술술 읽히는 건 저자가 지닌 예의 유쾌한 태도 때문일지도 모른다.

타인의 생애를 통해 자신의 역사를 돌아본 결과, 그의 마음에는 어떤 조각들이 남았다. 긴 시간 단어를 떠올리는 것조차 고통스러웠던 도벽과 액취증, 징그럽게 자신을 옭아맨 족(族), 비로소 자유의 관점으로 바라보게 된 죽음. 얼핏 상처와 아픔으로 이 단어들을 이해하려던 우리에게 최현숙이 말한다. 아물었으나 흉터로 남은 흔적을 직면하겠다고. ‘나’라는 존재로 우뚝 서서 상처를 열띠게 해명하면서 살아보겠다고.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를 통해 길마다 놓인 흉터를 찬찬히 들여다보는 여정을 떠난다. ‘나 사는 맛’을 계속 찾아내는 과정. 그 길을 독자로서 뒤따라 걸을 수 있어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 최현숙 작가

전작 <삶을 똑바로 마주하고>에서 특정 사건이나 현장을 찾아가려 하지 않는다고 쓰셨습니다. 흔하게 마주치는 사람들의 일상이 궁금하다고 하셨죠. 요즘에는 어떤 이들의 일상을 만나고 계세요?
중의적 표현인 것 같아요. 물론 특정 사건이나 현장에 관심이 없지 않죠. 다만 보통 사람의 일상과 관련 없는 사건이나 현장을 일부러 쫓아가지는 않는다는 말이에요. 사소하게 느껴지는 장면일수록 다른 관점으로 볼 여지가 많거든요. 홈리스 인권 운동 단체인 홈리스행동에서 인권지킴이로 활동한 지 3년 반 정도 됐어요. 최근에는 여성 홈리스들의 생애에 집중하고 있고요.

5 만의 산문집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에는 사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타인의 생을 관찰하면서 수행한 기존의 글쓰기와 어떻게 다르고 비슷한지 궁금합니다.
구술생애사는 가난하고 못 배우고 상처받은 사람들, 그 고통과 배제의 경험을 끄집어내는 작업이었죠. 무엇을 경험하는지보다 그 경험을 어떻게 해석하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생애사에 접근해왔어요. 그렇게 남의 생애 이야기를 계속 듣다 보면 결국 내가 살아온 생이 계속 떠올라요. 또 이야기를 들을 때 일방적으로 그 사람의 삶에 대해서만 물을 수는 없거든요.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고 말하면서 호응해야 해요. 이 책에서 특별히 나의 생애를 쓴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그동안 쓴 글을 한바탕 정리하면서 보태고 수정한 결과물이기도 하고요. 물론 어느 정도는 내 생에 관한 이야기죠. 한편으로 지금이 내 생애를 좀 풀어내야 하는 시기였나 싶어요. 평소 자서전 형태로 내 생애를 기록했거든요. 그걸 고스란히 옮겨온 건 아니지만 내 생의 핵심을 이루는 상처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누구에게나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족’에 대한 이야기도요.

그간 남의 생애에 대해 듣고 쓸 때 내 생각을 정확하게 드러내기는 어려웠거든요. 그 사람의 삶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내 생각으로 막 다져놓을 순 없는 거니까요. 이 책은 나 자신이 주제이니 마음대로 난도질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죠.(웃음) 상처든 억울함이든 끝까지 벼려낼 수 있잖아요. 이런 면에서 남의 이야기를 소재로 글을 쓰는 것과는 달랐어요.

구술생애사 작업은 징글징글한 핵심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책을 읽으면서 모든 삶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지겨운 이야기가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작업을 하며 작가님의 생애에서 특히 징글징글하다고 느낀 부분이 있나요?
저는 남의 생애에 대해 듣는 걸 굉장히 재밌어해요. 그냥 아무나 처음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면 어느새 그 사람이 나한테 자기 살아온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우리 사돈도, 그 양반이랑 이렇게 앉아 있으면 나한테 살아온 이야기를 막 풀어놔요. 아마 내 태도 때문이겠죠. 맞장구치면서 들으니까요. 거부감 없이 그 사람 속으로 들어가는 방식인 것 같아요. 제주도 같은 데 가서 택시를 타도 그래요.(웃음) 기사님에게 “여기 토박이신가요?” 하고 여쭤보면 어느새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세요. 이런 이야기는 흔하고 심지어 징글징글하죠. 특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게 가족이잖아요. 가족에게 잘못을 저지르거나 상처받고…. 난 이런 게 징글징글한 거 같아요.

이번 작업을 하며 그렇게 느낀 건 내 원가족, 오 형제와의 결별이에요. 엄마는 2018년에, 아버지는 작년에 돌아가셨고, 엄마의 투병과 죽음을 기록한 <작별 일기>가 2019년 나왔죠. 그 무렵까지는 형제들과 만났는데, 책을 쓰면서 그들과 많이 부닥쳤어요. 엄마라는 사람을 어떤 식으로 책에 드러낼 것인가에 대한 관점이 달랐거든요. 타협할 수 없는 갈등 속에 계속 남아 있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가족은 영원하고 천부적이고, 난 그런 거 안 믿어요. 그런 거 없어. 그냥 나 때문에 자기네 우아한 정상성에 흠집 하나가 생긴 거야 지금.(웃음)

근데 이제 문제는, 나도 결혼해서 두 아이를 낳았고 걔들도 결혼했죠. 그 관계도 마찬가지예요. 그들 삶은 그들이 꾸리는 거니까 내가 관여할 필요가 없어요. 혹시 서로 도울 일이 있으면 돕는 거고요. 어느 순간에 첨예한 차이가 드러난다면 관계를 단절하는 것이 불가피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책을 읽으면서 작가님이 추구하는 상처의 극복이 아니라 상처를 바라보는 일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과정이 힘들거나 어렵지는 않으셨나요?
난 일단 극복, 치유, 화해, 화목, 사랑 이런 단어를 아주 싫어하고 최대한 안 써요. 그 대신 ‘아버지도 나도 나이가 들고 서로 생각이 바뀌면서 다른 식으로 관계 맺기를 했다.’ 이런 식으로 쓰는 거예요. 상처가 상당히 많이 아물기는 하죠. 시간의 흐름, 직면 등을 통해서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흉터는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내가 어느 시점 이후로 가난하고 ‘냄새나는’ 사람들, 문란하다고 손가락질당하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쫓아가는 행동의 근원에 내 흉터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 흉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을 보면 설레고요. 그냥 무조건 쫓아가요. 왜 그런지도 몰라. 얘기하다 보면 그 이야기가 나와 연결되어 있구나, 밝혀지는 거죠. 이번 작업에서 가장 힘들었던 건 역시 도벽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였어요. 액취증은 별수 없이 남들에게 드러나는 거잖아요. 그런데 도벽은 내가 숨기는 한 남들은 모르죠. 나한테는 치명적이라는 이야기예요. 이것이 여전히 내 수치와 자괴로 남길 문제인지 의문이 든 이유는 아마 구술생애사를 계속했기 때문일 거예요. 타인의 상처에 대해 ‘그건 당신 잘못이 아니다’라는 식의 말을 해왔으니까요. 한 매체의 원고 청탁으로 도벽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있었는데, ‘도벽’이라는 단어를 쓸 때 진짜로 심장이 벌렁벌렁하더라고요. 글이 이어지지 못하고 끊기기도 하고요. 그래도 뚫고 나갈 힘은 있었던 거죠.

이 글은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 작가 최현숙 (2)'에서 이어집니다.


글. 황소연 | 사진. 김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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