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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05 컬쳐

한국의 잡지기자가 외국의 케이팝 덕후에게 둘러싸일 때 생기는 일

2023.08.30

브라질에서 열린 넷플릭스 투둠 행사 ©넷플릭스

6월16일부터 18일까지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 재단에서 열린 넷플릭스 글로벌 팬 이벤트 투둠에 취재차 다녀왔다. 넷플릭스에서 세계 각국의 미디어를 초청해 넷플릭스 히트작들을 세트 속에서 체험하게 하고, 새로 런칭할 시리즈를 소개하는 성격의 이 행사에서 나는 한국 영화잡지 기자로 참석했다. 이미 한 달이나 지난 이 행사의 취재기를 뒤늦게 여기 풀어낼 생각은 아니다. 다녀와서 각 잡고 쓴 행사 취재 기사는 내가 몸 담고 있는 <씨네21>에도 길게 썼다. 넷플릭스의 성공적인 OTT 시리즈 전략이나 글로벌에서의 위상 따위는 이 글의 목적이 아니다. 한국의 올드 미디어에 속하는 영화잡지사의 기자가 넷플릭스 글로벌 행사에 가서 느낀 새삼스러운 케이팝의 위상, 그리고 나 빼고 전부 극강의 E(MBTI 중 E)들만 모여 있는 것 같은 틱토커와 숏폼 크리에이터들 사이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그 기묘한 3박 4일의 경험을 소개하려 한다.

메인 행사장에는 <브리저튼> <오징어 게임> <기묘한 이야기> 등 넷플릭스의 인기 콘텐츠들의 상징적인 공간을 옮겨둔 체험존이 있고, 둘째 날 저녁에 열리는 글로벌 쇼에는 크리스 헴스워스, 갤 가돗 같은 스타들이 직접 참석해 향후 넷플릭스 라인업을 소개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 행사의 미디어 행사는 예년과 조금 다르게 진행됐다. 원래 미디어 투어는 세계 각국의 기자들을 불러 취재 위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올해는 저널리스트 혹은 크리에이터를 초청한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저널리스트로서 이번 브라질행 출장길에 오른 나는 이 사실을 브라질 현지에서야 알게 됐다.

브라질에서 열린 넷플릭스 투둠 행사 ©넷플릭스

여기는 실시간 브이로그 중
세계 각국에서 온 출장자들과 함께 한 공식 첫 스케줄은 브라질 문화 체험이었다. 음…저널리즘의 미래는 역시 1인 미디어인가? 나를 제외한 모든 인간들이 아이폰을 들고 셀캠을 찍으며 혼잣말을 했다. 내가 먹고 있는 이 과일이 신선하다느니 브라질 음식은 태어나서 처음 먹어본다느니 하는 말을 카메라를 보며 뻔뻔하게 하고 있었다!!! 호텔 방에서도 아마 그런 식으로 카메라를 켜고 라이브를 하거나 브이로그 촬영을 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식당에서도 그들의 혼잣말(물론 카메라를 향한)은 계속됐다. 아, 나도 해야 하는 건가? 모든 인플루언서들이 음식과 호텔 내부를 열심히 찍고 있었다. 취재의 공식 일정인 넷플릭스 행사장에서나 몇 컷 찍고 취재 스케치를 하려 했던 하루 24시간을, 인플루언서 자아로 보내고 있는 그들을 보고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차마 브이로그까지는 찍을 수 없어서 평소에 잘 찍지도 않던 셀카를 몇 장 남겼다. 왠지 친절해 보이는 몇몇 분들과 말을 섞다가 비로소 깨닫게 됐다. 평범한 프레스 투어인 줄 알고 참석한 이번 행사는 한국의 영화 주간지 <씨네21>의 기자와 세계 최고의 인싸들이 함께 하는 투어였다는 것을…. 그들은 인도에서 온 틱톡커, 프랑스에서 온 뷰티 유튜버, 인도네시아에서 온 인플루언서, 멕시코에서 온 유튜버 같은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의 계정을 들어가보면 팔로워가 1000만 명이 넘었다….

게다가 (비행기 착륙 시간이 지연되면서 나는 참석하지 못했던) 웰컴 파티에서 이미 친분을 쌓아서 서로 SNS에 올릴 ‘남찍사’(남이 찍어준 사진)를 찍어주고 있었다. 나의 MBTI는 ‘ENTP’이며 주변에서는 나를 확신의 ‘E’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이번 출장에서만큼은 너무 고독했다…. 출국 수속을 밟는 순간부터 브이로그를 찍고 호텔 입성 순간의 설렘이라든지 거품 목욕을 하는 모습을 모두 영상으로 남기는 그들의 활동력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 저렇게 숨 쉬듯이 영상을 찍어야 팔로워 1000만 명을 거느릴 수 있는 것인가? 닥쳐야 입이 겨우 터지는, 이른바 생존 영어를 구사하는 자로서 왠지 소심해져서 말도 평소보다 잘 안 나왔다. 과연 이 출장을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을까.

넷플릭스 인기 시리즈 세트를 재현한 공간 ©임수연

두 유 노 BTS?
그러다 브라질 전통 춤을 배우는 프로그램에서, 좀처럼 입을 열지 않던 내가 어쩔 수 없이 자기 소개를 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강사가 나에게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묻길래 “코리아, 사우스 코리아”라고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러자 쉬는 시간에 드디어 ‘인싸님’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주기 시작했다. 아까 체험 시간에 보니 너는 좋은 댄서였다면서, 한국인들은 춤을 잘 추는 것 같다며 칭찬을 퍼붓는데 그게 뭐라고 감동 받았다. 그리고 아이스 브레이킹을 위해 나에게 이어서 던지는 질문. “너는 아미니? 케이팝 그룹들은 정말 멋진 퍼포먼스를 보여주잖아!” 개인적으로 방탄소년단의 팬은 아니지만, 대중문화 영역에서 일하는 기자가 방탄소년단에 대해 모르는 건 직무유기라고 생각한다. “아미는 아니지만 케이팝을 좋아한다.”고 말하며 방탄소년단을 포함한 케이팝 그룹들에 관한 기사를 쓴 적이 있고 최근에는 방탄소년단 멤버 한 명을 인터뷰했다고 ‘썰’을 푸니 인싸님들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브라질에서 열린 넷플릭스 투둠 행사 ©넷플릭스

내 마음의 방에는 여러 명이 세들었어
기본적으로 인플루언서들은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그들은 방탄소년단의 뮤직비디오 리액션 영상이나 댄스 커버 콘텐츠, 혹은 <오징어 게임>의 달고나를 만드는 영상을 찍어서 폭발적인 조회 수를 받아본 경험이 있다. 블랙핑크의 패션이나 메이크업을 다룬 튜토리얼 영상은 뷰티 유튜버들에게 쏠쏠한 재미를 보게 해줬다. 그래서 한국에서 온 기자인 나를 반가워하며 케이팝과 케이드라마의 이야기를 먼저 꺼낸 것이다. 기본적으로 아시아권에서 온 저널리스트 혹은 크리에이터들은 케이팝과 케이드라마를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의 특징은 많은 아이돌과 배우에게 마음을 준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세븐틴과 투모로우바이투게더와 엔하이픈의 콘서트를 모두 갔다는 필리핀 모 매체의 부대표는 그들의 응원봉도 전부 갖고 있었고, 새로운 드라마가 시작되면 1~2회 리뷰를 누구보다 빨리 만들어서 유튜브 채널에 업데이트한다. 100만 팔로워를 자랑하는 인도네시아의 인플루언서는 스트레이 키즈를 좋아했고, 나와 한국이 생각하는 미남과 인도네시아가 생각하는 그것의 차이에 대해 열띤 대화를 나눴다. (한국 여자들은 착하고 청순하게 생긴 남자를 좋아해온 역사가 유구한데, 언제나 공급이 없어서 문제라고 목 터지게 설명해줬다.)

유럽권이나 미국권에서 온 인플루언서들 역시 케이 콘텐츠와 SNS 트렌드가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생각 이상으로 잘 알고 있었다. 이를테면 파리에서 온 뷰티 유튜버는 블랙핑크의 근황에 대해 나보다 잘 안다. <오징어 게임>과 방탄소년단, 블랙핑크는 당연히 누구나 아는 콘텐츠이고, 여기에 트와이스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얘기를 상세히 하는 사람도 있었다. 한편 출장 내내 나를 가장 잘 챙겨줬던 넷플릭스 남미 부서의 직원은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팬이었는데, 이직 후 너무 바빠서 최근 발매된 그들의 ‘메모리즈’ DVD를 구입하지 못했다며 진심으로 슬퍼했다. ‘올드한 케이팝’을 좋아한다고 고백한 또 다른 넷플릭스 직원은 소녀시대의 노래를 즐겨 들었다. 넷플릭스 직원들과 넷플릭스 이야기보다 아이돌 이야기를 많이 한 것 같은 브라질의 이상한 나날이었다.

투둠 행사 당일 외롭게 취재를 다니게 되면 어떡하나 무척 걱정했는데, 케이팝과 케이드라마 얘기를 꺼내며 나에게 급 관심을 보인 외국인들과 같이 레드카펫 포토월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놀고, 레드카펫 입장 순서나 현재 배우들의 기분(?) 같은 중요한 정보도 교환했다. 크리스 헴스워스를 만나기 전에 <익스트랙션> 시리즈에 대한 다른 나라 사람의 감상을 전해들을 수 있었던 것도 인터뷰 준비에 도움이 됐다. 그러니 여러분, 해외에 나가 세계 각국의 사람들과 얘기를 나눌 일이 많을 때 자국의 대중문화를 미리 공부하는 것은 꽤 좋은 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케이팝의 위력은 당신이 뉴스로 접하고 유튜브 숏츠로 본 ‘◯◯그룹 신곡 무대 본 영국인 반응’보다 훨씬 강력하니까. 그리고 외국의 덕후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케이팝 그룹이나 드라마에 대해 한국인과 수다를 떨 수 있다는 것에 진심으로 기뻐하니까. 자신이 사랑하는 것에 대해선 한없이 떠들 수 있고 또 그것과 가까운 존재를 만나면 마음의 문이 활짝 열리는 것은, 전 세계 공통이니까.

소개

임수연
<씨네21> 기자. “너는 그걸 어떻게 다 보고 있냐.”는 말을 들으며 살고 있다.


글·사진. 임수연 | 사진제공.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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