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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06 에세이

<더 베어> (2) : 이토록 지긋지긋하고 찬란한 인생이라니

2023.09.09

이 글은 '<더 베어> (1) : 이토록 지긋지긋하고 찬란한 인생이라니'에서 이어집니다.

<더 베어> 스틸 ©FX,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인생은 누구나 힘들다
<더 베어>는 주인공이 죽은 형의 샌드위치 가게를 물려받으면서 시작한다. 뻔한 이야기다. 고향으로 내려온 엘리트가 동네 식당을 바꾸며 주변을 바꾸고 본인도 성장하는 이야기. 주인공은 크게 보면 꿈을 이룬 사람이다. 요리를 공부해 요리사가 됐고, 물려받았지만 어쨌든 자신의 식당도 열었다. 그럼 그는 행복할까?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형이 물려준 식당은 빚더미고 직원들은 제멋대로다. 시설은 엉망이고 항상 단속에 걸린다. 주인공은 닥친 문제를 해결하기 바쁘다. 그 와중에 새로운 무언가를 계획하고 실현하지만 그 속에는 소위 우리가 상상하는 행복은 없다. 성취야 있겠지만 그조차도 찰나에 불과하다. 하나를 해결하면 행복보다 더 큰 두려움이 생겨난다.

주인공뿐 아니라 다른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드라마는 삶에 대한 우화나 교훈,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직 노동, 그 일을 해내는 구성원들의 이야기만 있을 뿐이다. 이렇게도 치열한 노동 드라마가 있었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리고 이건 식당을 원해서 하고 있든 갈 곳이 없어 어쩔 수 없이 하고 있든 마찬가지다. 당신이 예술을 하든 회사를 다니든 마찬가지다. 삶은 늘 힘들고 치열하다.

올해 방영된 시즌 2에서는 시즌 1에서는 그림자만 내비쳤던 가족의 굴레까지 더해진다. 이를 정면으로 다룬 크리스마스 특집(시즌 2, 여섯 번째 에피소드)은 마치 지옥과도 같다. 미국 드라마들은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관련 에피소드를 내보내는데, 보통은 모든 등장인물들(가족이 아니더라도)이 모여 정을 나누는 것이 전형적 패턴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크리스마스 특집조차 잔혹하다. 아니, 다 같이 모였기에 스트레스는 가중된다. 나는 이 에피소드를 열 번 넘게 끊어 봤다. 지루해서가 아니라 너무 불편해서 도저히 볼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계속된다. 이들은 요리를 하고 식당을 운영한다. 무엇을 위해서? 드라마는 그 행복을 보여주지 않는다. 시즌 2에는 연애라는 달달함이 추가되지만 그 정도는 봐줘야지. 어쩌면 행복은 원래 존재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무언가를 하며 행복하다는 건 뒤따라오는 감정인 경우가 많다. 막상 그 당시에는 너무 힘들었는데 돌이켜보니 그랬다고 포장하는 거다.

물론 이 드라마와 우리 삶에는 이런 쓸데없는 질문을 할 수 있는 틈 같은 건 없다. 평론가나 관객들이 이 뻔한 드라마를 사랑하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마치 우리 인생처럼, 다 아는 이야기인데도 집중할 수밖에 없다. 인생은 누구나 힘들다. 그러니 어차피 힘들 거라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 반대인가? 어차피 힘들 건데 아무 일이면 어떤가. 우리가 성취한 것은 꿈이 아니라 그 치열함이다.
아! 지긋지긋한 일이여, 가족이여, 인생이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살아간다. 아니, 우리는 ‘기꺼이’ 살아간다. 이 글의 모든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기꺼이’로 바꿔 읽어도 좋다.

추천 콘텐츠
플랫폼
: 디즈니플러스
제목: 더 베어

포인트
인생: ★★★★
스트레스: ★★★
요리: ★★

소개

오후(ohoo)
비정규 작가. 세상 모든 게 궁금하지만 대부분은 방구석에 앉아 콘텐츠를 소비하며 시간을 보낸다. <가장 사적인 연애사> <나는 농담으로 과학을 말한다> 등 여섯 권의 책을 썼고 몇몇 잡지에 글을 기고한다.


글.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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