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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07 에세이

칼부림은 원인이 아닌 결과다 (2)

2023.09.17

이 글은 '칼부림은 원인이 아닌 결과다 (1)'에서 이어집니다.

ⓒ pixabay

한국은 살기 좋은 나라?
‘살기 좋은 나라’에서 왜 몇백 명에 달하는 사람들은 무차별 칼부림을 예고하고 그걸 보고 듣는 사람들은 공포에 사로잡혀 불안해할까? 그건 어쩌면 살기 좋은 나라가 아니라서다. 이건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다.

7월 21일 신림역에서 일어난 칼부림 사건을 시작으로 온라인상에는 수백 건에 달하는 살인 예고 글이 올라왔다. 사람이 죽고 상황이 심각해지자 거리에는 무장한 경찰들과 장갑차가 등장했고, 정치권을 중심으로 여러 대책이 나왔다.

한 기업가 출신 정치인은 “범죄를 예방할 방법”이라며 전 국민을 상대로 한 정기적인 정신 건강 검진을 도입하고 강제 입원의 가능성을 지금보다 폭넓게 적용하려는 취지의 대책을 내놓았다. 정신질환자라고 모두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아닐뿐더러, 오히려 정신질환자의 범죄 발생률이 비정신질환자에 비해 더 낮음에도 불구하고 명백히 인권 침해적 소지가 있는 주장을 대책으로 제시한 것이다. 이는 칼부림을 단순 정신이상자의 일탈적 소행으로 해석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말이다.

또 다른 정치인은 살인 예고 글을 올린 이들을 대상으로 신상 공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들 중 다수의 미성년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리한 주장을 펼친다. 이 주장은 전문가에 의해 즉각 반박당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뉴스1에 “학생들이 모방 심리로 올린 글에 강력범죄에나 적용되는 신상 공개를 적용하겠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신상 공개를 하자는 말 역시 칼부림을 일부의 일탈적 소행으로 보는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황당한 일탈이라는 말 대신
정치인들이 앞다퉈 내놓은 대안에서 횡단보도 앞에서 우연히 만난 노인의 반문이 겹친다. 이들 정치인이 제시하는 대안을 보자면 역시 ‘살기 좋은 나라’에서 왜 일탈적 소행을 저지르냐는 식이다. 이것이 단순히 길거리에서 만날 법한 노인의 생각이라면 크게 상관없지만 위정자들의 생각이라면 문제가 된다.

이미 사회적으로 문제가 불거졌음에도 이들은 끊임없이 개인에게 문제를 돌리고 축소하는 대책을 제시한다. 이는 예방이라는 명목 아래 인권 침해의 소지를 주며 손쉽게 엄벌주의를 가져온다. 법무부 장관은 여기서 나아가 “허세의 대가는 감옥에 가는 일이 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임재성 변호사는 <한겨레> 칼럼을 통해 “허세에 감옥이 맞는가?”라고 반문하며 “법무부 장관은 몽둥이를 먼저 흔들고 있다.”고 비판한다.

칼부림이 그저 개인의 일탈이 되면 개인의 탓으로 돌리면 되니 해결책도 간편해진다. 정치인들이 내놓는 대책은 ‘이 연쇄적인 사건은 개인의 책임이니 자신들의 책임이 없다’는 말처럼 들린다. 동시다발적 칼부림은 원인이 아닌 결과이며 한국 사회의 초상이다.

정치인들이 앞다퉈 제시하는 대안이 황당하니 칼부림 사건을 바라보는 개인들은 다시금 개인의 대처에 힘을 쏟는 쪽으로 불안을 잠재우려 한다. 이를테면 개인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호신용품을 사거나 칼부림 사건이 일어났을 때의 행동 요령과 같은 영상을 보면서 내게도 일어날지 모르는 일을 대비하는 식이다. 사회문제에 사회적 해결책은 없고 오로지 개인의 일탈과 개인의 대응만이 남았다. 칼부림 사건은 살기 좋은 나라에서 일어난 황당한 일탈이 아니다. 우리는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소개

유지영
<오마이뉴스> 기자.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함께 만들고 동명의 책을 썼다. 사람 하나, 개 하나랑 서울에서 살고 있다. [email protected]


글. 유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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