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배우 강훈(1)'에서 이어집니다.
ⓒ 배우 강훈
<옷소매 붉은 끝동>(이하 <옷소매>), <꽃선비 열애사>에서는 선한 얼굴과는 다른 반전을 지닌 역할을 연기하기도 했잖아요. <옷소매> 정지인 감독의 말에 따르면 “친절하고 착한 느낌인데 어느 순간 서늘한 눈빛이 보였다.”고요. 스스로를 서늘한 이미지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어요?
감독님이 말씀해주시기 전까지는 사실 이런 느낌이 있다는 걸 모르고 살았어요. 제가 웃는 상인 데다 또 되게 잘 웃거든요. 근데 가끔 안 웃고 가만히 있으면 어머니가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실 때가 있어요. 감독님 말씀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새삼 ‘아, 내가 그런 면이 있나?’ 싶은 거죠. 그 후에는 그런 면을 부각시키려고 집에서 연기 연습을 하기도 했어요.
배우로 활동하기 전에는 짝눈이 콤플렉스였다고 언급하기도 했던데요. 활동하면서는 생각이 바뀌었나요?
어렸을 땐 스트레스였는데 이제는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양쪽이 주는 느낌이 달라서요. 제가 느끼기에 왼쪽은 조금 편안한 느낌이면 오른쪽은 좀 서늘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활동을 할수록 저의 얼굴에 대해 더 잘 알게 되고, 또 그것들을 잘 활용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스스로를 점점 좋아하게 되는 과정에 있는 것 같아요.
최근 예능 <택배는 몽골몽골>에도 출연 중이죠. 관찰 예능은 처음인데 어땠어요? 자신을 제외하고는 ‘76년생 용띠클럽’ 형들이라 나이 차도 꽤 나잖아요.
일단 고정으로 하는 예능은 처음이고, 한국을 벗어나 낯선 곳에서 찍는 거라 긴장을 많이 했었어요. 매니저분도 없이 정말 저 혼자 몽골에 떨어졌거든요. 근데 형들이 너무 잘해주셔서 긴장이 풀렸죠. 말로 열다섯 살이라고 하면 큰 차이 같은데 막상 같이 있다 보면 그런 차이가 별로 안 느껴졌어요. 제가 조금 성숙한 건지 형들이 젊게 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웃음) 나이 차를 느끼는 순간이라고 하면 형들이 아이들이랑 전화할 때 정도? 첫 예능에서 이렇게 좋은 형들을 만나게 돼서 감사해요.
ⓒ 배우 강훈
본인이 생각하기에 본인은 어떤 막내인 것 같아요?
사실 제가 막내 역할을 잘하는 것 같아요.(웃음) 아닐 수도 있는데 제가 운동부였고, 군대도 갔다 오고 사회생활을 조금 일찍 시작해서 그런가 눈치껏 잘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 사람이 날 싫어하게는 안 해야겠다. 이런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거든요. 형들이 절 좋아하게 만들 자신이 있어요.
<너시속>에서 주인공 세 명 중 인규만 타임리프를 하지 않고 1998년 속에 쭉 존재하잖아요. 극 중에서는 못 했지만, 만약 실제로 타임리프를 하면 언제로 가보고 싶어요?
아까 한 대답과 조금 다른 말일 수도 있는데요. 중학교 1학년 때 반 친구들이랑 정말 친했는데 운동을 시작하면서 멀어졌거든요. 그때는 3교시만 하고 운동하러 가고 그랬었으니까요. 또 대회가 있으면 아예 수업을 안 들어갈 때도 있었고요. 그래서 운동을 시작하기 전으로 돌아가서 친구들이랑 같이 한번 놀아보고 싶어요. 중학교 1학년 첫 등교 때의 등굣길이나 운동하면서 지켜봤던 친구들의 하굣길 같은 것들을 잊지 않고 있다 보니 그때가 그리울 때가 있어요.
ⓒ 배우 강훈
단편영화로 데뷔하고, <옷소매>의 덕로로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까지 길다면 긴 기다림의 시간이 있었잖아요. 그때의 강훈은 그 시간들을 어떻게 보냈나요?
남들이 봤을 때는 짧은 시간일 수도 있겠지만, 저로서는 좀 힘든 시간이었어요. 대학교를 졸업하고 경제적으로 힘들었는데, 배우라는 직업이 하루 만에 캐스팅 연락이 오기도 하고 또 어떨 땐 촬영 몇 시간 전에 오기도 하니까 고정적인 아르바이트를 하기가 어려웠어요. 그래서 고민하다가 부모님한테 말씀을 드렸죠. 딱 서른 살 때까지만 지원해달라고, 지금 내가 아르바이트를 고정적으로 하면 나한테 기회가 왔을 때 그걸 놓칠 것 같다고요. 엄청 고민하고 말씀드렸는데, 감사하게도 부모님께서 알겠다고 하셨어요. 항상 한편에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았죠. 그리고 정말 딱 서른 살이 되자마자 제 쪽에서 끊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확신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이 일이라면 내가 계속할 수 있을 것 같단 확신. 그게 버틸 힘이 되어주지 않았나 싶어요. 뭐든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하면 결국 포기하게 되더라고요.
얼마 전 데뷔 9주년을 맞아 팬분들이 카페 이벤트를 열어주셨어요. 이벤트 첫날에 카페에 방문해 인증샷도 남기셨더라고요. 어떻게 알고 방문하게 된 거예요?
예전에 회사에서 이런 이벤트가 있다고 알려주셨는데 그걸 기억하고 있다가 열자마자 갔어요. (오픈런을 하신 거네요?) 네. 맞아요. 정말 오픈하자마자 간 거라 당연히 아무도 없을 줄 알았는데, 팬분이 계셔서 서로 놀랐죠. 이런 상황이 익숙지 않은 데다 팬분들이 바로 앞에 있으니까 뭘 못 하겠더라고요. 팬분들이랑 서로 어쩔 줄 몰라 했어요.(웃음)
ⓒ 배우 강훈
과거 한 예능에서 자신도 누군가의 팬이었고, 덕분에 배우의 꿈을 키우게 됐다고 밝힌 적이 있죠. 이제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었어요. 1년 후, 데뷔 10주년을 맞은 강훈은 또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계속 벌어지고 있어서 항상 감사한 마음이에요. 팬 카페에 하루에 한 번씩은 꼭 들어가서 남겨주신 편지도 읽어요. 이걸 어떻게 보답을 해야 될까, 생각을 하면 결국에는 그냥 쉬지 않고 일을 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사실 이렇게 계속 작품 활동을 하면서도 제 안에는 아직 조급함이 남아 있거든요. 더 하고 싶다, 이런 마음이요. 그게 제 삶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가끔은 조급함이 나를 갉아먹는다는 생각을 해요. 그냥 지나가는 하루일 뿐인데 혼자 계속 조급해하다 보니까 그 하루가 망가지는 느낌을 받거든요. 1년 뒤에는 그런 조급함을 조금 떨쳐내고 하루하루를 즐길 수 있는, 그리고 저 자신을 아껴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글. 김윤지 | 사진. 김영배 | 헤어. 조은혜 | 메이크업. 김민지 | 스타일리스트. 홍나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