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아픈 부모·조부모를 모시는 가족돌봄 청년, ‘영 케어러(young carer)’. 할아버지의 투병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함께했던 길성장 씨가 자신의 영 케어러 경험과 함께, 젊은 돌봄 인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말한다.

나는 지난 2020년 폐암 말기로 투병하다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간병하며 나 또한 영 케어러의 범주에 속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국이나 일본, 호주 등에서는 ‘영 케어러’의 사전적 정의나 지원 제도가 확립되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용어도 낯설 만큼 생소한 사회문제다. 하지만 서울시에서 집계된 영 케어러만 약 900명에 달하고, 가족 간병을 하고 있는 청년조차도 스스로가 ‘영 케어러’인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앞으로 파악되는 그 숫자는 점점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스스로 젊은 부양자임을 자각하며 내가 가장 먼저 마주했던 어려움은 바로 ‘생업과 간병의 병행’이었다. 나는 운이 좋은 영 케어러였다. 할머니와 교대로 가족 간병이 가능했다. 회사에 출근했을 때는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곁을 지키셨고, 퇴근 후에는 내가 병원으로 가 할머니와 교대했다. 그렇게 보호자 침대에서 쪽잠을 자고 또 출근하는 생활을 했다.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고통의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교대로 가족 간병을 할 수 없는, 혼자 된 영 케어러는 생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간병 혹은 생업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
중증 환자의 경우 24시간 보호자가 상주해야 하기에, 간병할 다른 가족이 없을 때 영 케어러가 환자의 곁을 떠날 수 없다. 간병인을 고용하는 것도 녹록잖다. 취업 준비, 재학 등으로 아직 경제적으로 자리 잡지 못한 청년이 한 달에 적게는 300만 원에서 500만 원에 달하는 간병비를 부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기에 이들은 생업을 포기하고 직접 간병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기약 없는 돌봄으로 인해 ‘나를 위한 삶’을 내려놓고 온전히 부양의 부담을 짊어지는 생활에 뛰어든다.
또한 영 케어러들은 엄마, 아빠, 자녀로 구성된 ‘정상 가족’의 범주에 들지 않는다는 사회 인식으로 인해 자신의 상황을 숨기게 되어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민감한 시기에 적극적으로 주변에 자신의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청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게다가 상대적으로 어린 나이에 부양의 책임을 지다 보니 그들을 보살펴줄 보호자의 부재로 정서적, 경제적으로 고충을 겪기도 한다. 혼자 감내해야 하는 가족 돌봄은 활발히 사회 활동을 해야 하는 젊은 청년층에게 무력감을 느끼게 하는 거대한 장벽과도 같다. 적극적으로 본인의 상황을 알리고, 기관이나 주위에 도움을 청할 필요가 있지만, 쉽지 않다.
아직 얘기되지 않는 영 케어러에 대한 지원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은 문제들이 의도치 않게 복지의 사각지대를 만들 수도 있다. 특히 간병인 및 간병비 지원에 대한 제도가 절실하다. 교대 간병이 어려운 영 케어러가 마땅히 사회 활동을 하며 돌봄을 병행할 수 있도록, 적절한 심사를 거쳐 간병 서비스를 지원하고 심리 상담이나 지원 제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등의 복지가 있다면 어려운 간병을 해나가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할아버지를 떠나보냈던 당시보다 현재 영 케어러의 사회적 주목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어 희망적이다. 앞으로 홀로 어려움을 감내하는 청년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될 실용적인 제도가 많이 생겨 그들의 고통을 덜 수 있는 사회가 오길 바란다.
소개
길성장
카카오 브런치에서 조손 가정과 영 케어러에 대한 이야기를 집필하고 있는 필명 길성장입니다. 사고로 아버지를 여의고 조부모님 손에 성장한 제 어린 시절을 기록하며, 지난 2020년 폐암 투병 후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대한 간병 경험을 글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글. 길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