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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12 인터뷰

<공정감각> 나임윤경, 허가영 (1)

2023.12.14

지난해 6월, 한 편의 강의 계획서가 SNS상에서 화제를 모았다. 강의 시작 전부터 화제가 집중된 수업은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나임윤경 교수의 ‘사회문제와 공정’. 같은 해 5월, 연세대 학생이 학내 집회 소음으로 수업권을 침해받았다며 청소 노동자들을 고소한 사건에 일침을 가한 나임윤경 교수는 일부 2030 세대의 공정감각이 누구에게 향하고 있는지를 묻는다.

<공정감각>은 이 한 편의 강의 계획서에서 시작되었다. 이 수업에서 학생들은 차별과 혐오의 장이 되어버린 에브리타임(이하 에타, 전국 총 400개 대학교에 서비스를 지원하는 대학교 익명 커뮤니티로 대다수 대학생이 이용한다.)을 민주적 담론의 장으로 변화시킬 방법을 모색했다. 이들은 페미니즘, 장애인, 비건 등 에타에서 폄훼와 조롱의 대상이 되어온 주제를 20대의 다양한 시각에서 분석해 에타에 올렸고, 학생들의 글은 올리기 무섭게 신고당하거나 삭제되었다. 그러나 온라인에서 ‘썰리고’(삭제되고) 퇴출당한 이야기들은 사라지지 않고, <공정감각>이라는 한 권의 책에 기록되었다. 뜻을 모아 책을 펴낸 나임윤경 교수와 수강생 13명의 목표는 다른 20대의 목소리도 있음을 알리는 것. 과연 이들이 캠퍼스 담장 너머로 전하고자 한 청년들의 목소리가 들려줄 이야기는 무엇인지 저자인 나임윤경 교수와 허가영 학생에게 물었다.


ⓒ 왼쪽부터 허가영 학생, 나임윤경 교수

사회문제와 공정강의는 시작 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어요. 특히 구체적인 문제의식이 드러난 강의 계획서가 SNS상에서 화제가 되었는데, 구체적인 수업 내용은 어땠나요?
나임윤경 학생들의 청소 노동자 집회에 대한 고소 이후, 에타에 이들을 지지하는 수많은 글이 올라왔어요. 대부분이 수업권 사수에 관한 글이라기보다는 노동자에 대한 비아냥거림을 담고 있었는데, 이런 글들이 ‘좋아요’를 받는 걸 보고 문제다 싶었죠. 그래서 에타라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분석하고 커뮤니티 내에 만연한 차별과 혐오에 대한 글을 수강생들이 직접 써서 매주 에타에 올리는 식으로 수업을 구성했어요. 그런데 초반에 올린 글들이 소위 ‘썰리는’ 사태가 벌어진 거예요. 그래서 삭제된 글을 모아 책으로 내면 어떠냐고 제안했는데, 처음엔 학생들이 선뜻 나서지 못했어요. 이미 에타에 올린 자기 글에 악플이 달리고 글이 삭제되기도 하면서 트라우마를 겪었으니까요.

에타에 올린 글이 썰리는가 하면 일부 학생들은 일정 기간 에타 접속을 제한당하기도 했다고 들었어요. 책 출간에 앞서 우려되는 부분이 있었을 것 같은데, 그럼에도 책을 출간하기로 결심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허가영 제가 쓴 글 제목이 ‘아직도 성차별을 부정하는 당신에게’였는데, 이 글을 에타에 올린 뒤 아주 많은 댓글이 달렸어요. 제가 쓴 글이 ‘밈’처럼 변형되어 에타 내에서 확산되기도 했고요. ‘아직도 성차별을 긍정하는 당신에게’ 이런 식으로요. 어느 순간 글에 대한 공격이 저를 향한 공격으로 느껴지기도 했죠. 그럼에도 책을 출간하기로 결심하게 된 건 이 글을 쓰면서 받은 상처보다 위안이 훨씬 컸기 때문인 것 같아요. 내가 목소리를 잃어가는 데 젖어 있는 동안에도 계속 목소리를 내려는 사람들이 있고, 내가 이렇게 목소리를 낼 수 있게 안전한 무대를 만들어주는 사람들이 있구나. 수업을 통해 이런 연대감을 많이 느꼈어요. 비록 온라인에서는 삭제됐지만, 우리 이야기가 책 안에 지워지지 않고 선명히 박힌다면 누군가 나처럼 무력감을 느낄 때 큰 힘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다른 형태의 연대랄까요.

같은 학교 학우로서 청소 노동자 고소 사건을 접하며 충격이 더 컸을 것 같아요.
허가영 굉장히 복잡한 마음이 들었죠. 제가 ‘비정규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라는 노학 연대 단체에서 꽤 오래 활동했어요. 활동하면서 공동체가 비정규직이라는 노동환경에 처한 청소 노동자들을 얼마나 열악한 환경으로 내몰고, 또 그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투쟁하는지를 가까이에서 지켜봤죠. ‘그래도 아직은 우리 학내 공동체가 소수자에 대한 최소한의 사회적 감수성이나 성찰 능력이 있구나.’라는 희망을 느끼게 되는 때가 가끔 학생들이 음료수를 건네거나 지지하는 말을 건네는 경우거든요. 저도 이런 순간이 원동력이 돼서 계속 활동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근데 고소라는 날 선 행동이 청소 노동자들을 상대로 벌어졌다니 충격이었어요. 심지어 그 일을 벌인 사람이 나와 함께 학교에서 생활하는 학우라고 생각하니까, “우리가 지금까지 해온 활동이 의미 없었던 건가?” 하는 생각에 무력감이 들기도 했죠.

책에서는 연세대 청소 노동자 고소 사건뿐 아니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시위, 인천국제공항공사(인국공) 사태 등을 언급하며 약자에 대한 혐오로 이어지는 일부 청년 세대의 공정 잣대를 지적합니다. 이 사태의 원인은 뭐라고 보시나요?
나임윤경 한번은 한 학생이 저한테 따지듯이 묻더군요. “교수님, 그럼 저희는 학습권을 침해받아도 가만히 있어야 하나요?” 그래서 제가 이런 질문을 했죠. 만약 호텔에 가서 숙박하는데 옆방이 시끄럽다면 벽을 두드릴 건지 아니면 호텔 매니저를 부를 건지. 그럼 보통 호텔 매니저를 부른다고 대답하죠. 제가 이어서 학교의 학습권을 침해받으면 어디에 문제 제기를 해야겠냐 물으면 그제야 “학교요.” 하고 대답해요. 잣대가 학교로 향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못 하는 거죠. 문제는 내가 얻는 건 뭐고 손해 보는 건 뭔지만 따지게 만드는 지나친 자본주의와 경쟁이라고 봐요. 왜 소비자가 물건을 샀는데 하자가 있으면 따질 거 아니에요. 그거랑 같은 논리예요. 자본주의 아래 모든 가치가 획일화되다 보니 노동을 상품으로 보는 거죠. 그러니까 ‘내가 낸 등록금으로 당신들을 고용한 건데 왜 내 수업 시간을 방해해?’ 이런 논리가 나오는 거예요. 청소 노동자들이 오랜 기간 받은 부당한 대우에는 눈감고 공정의 잣대를 돌리면서 당장 눈앞의 손해, 내가 겪는 잠시의 불편은 못 참죠.

허가영 청년 세대로서 느끼는 점을 말하자면, 약자에 대한 막연한 혐오는 결국 사회구조를 똑바로 성찰하지 못하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전장연 시위를 예로 들자면, “장애인들이 왜 내 출근길을 막아?”라고 생각할 게 아니라 왜 길을 막아설 수밖에 없는지, 장애인의 이동권은 왜 보장되지 않는지를 봐야 한다는 거예요. 근데 구조적인 문제까지 파고들기에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워낙 바쁘고 경쟁은 치열하죠. 이런 문제에 대해 돌아볼 시간을 주지 않고, 관련 교육 시스템도 없으니 당장 내 눈앞에 있는 문제만 보게 되는 거예요. 저는 우선 청년들에게 성찰할 시간이 주어져야 한다고 봐요. 거기서부터 공감과 연대가 시작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이 글은 '<공정감각> 나임윤경, 허가영 (2)'에서 이어집니다.


글. 김윤지 | 사진. 김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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