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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12 인터뷰

<공정감각> 나임윤경, 허가영 (2)

2023.12.14

이 글은 '<공정감각> 나임윤경, 허가영 (1)'에서 이어집니다.

ⓒ <공정감각>, 문예출판사

책에서는 공존 없는 공정이 얼마나 무의미한지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얘기해요. 특히 전장연의 시위에 대해 언급하며 굳이 입장을 바꿔보지 않고, 자기 경험을 들여다보기만 해도 충분히 공감하고 연대할 수 있다는 대목이 인상 깊었어요.
나임윤경 어떤 사람이든 인종, 계급, 자본 등 모든 카테고리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는 없어요. 나의 잣대에서 누군가가 약자가 되듯이 다른 누군가의 잣대에 따라 나도 분명 열등한 위치에 놓일 수 있거든요. 고학력자, 대기업, 억대 연봉. 모든 카테고리에서 제일 꼭대기에 있다고 생각해도 해외에 가면 영어를 못한다거나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을 수 있어요. 처한 환경에 따라 누구나 사회적 약자가 될 수 있고 차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거죠. 이렇게 각자의 경험만 들여다봐도 자신이 열등해지는 맥락이 반드시 존재하는데, 굳이 입장을 바꿀 필요가 없는 거죠. 바꿀 수도 없고요. 스스로 열등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그 카테고리를 다 부숴야죠. 그리고 어떤 카테고리에서 열등해진 자기 자신과 공감하고 연대하는 자세가 필요해요. 나한테 공감하는 게 뭐가 어렵겠어요? <풀타임>이라는 프랑스 영화를 보면 프랑스에서 지하철 파업을 얼마나 자주 하는지를 볼 수 있는데, 누구 하나 불평을 안 하거든요. 그 이유가 뭐냐. 나도 언젠가는 어떤 주제로 파업을 할 거니까. 그래서 나도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 거니까 이 불편을 참아주는 거죠. 그게 바로 자신하고의 연대예요.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죠.

허가영 깊이 동의해요. 제가 청소 노동자들의 투쟁을 보면서 느낀 점이 경쟁이 치열한 한국 사회에서 우리는 계속 노동해야 하는 노동자인데, 언젠가 내가 비정규직 노동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왜 상상하지 못하는가 하는 점이었어요. 또 내가 어느 날 장애를 가질 수도 있는 거고, 내 아이 혹은 내 친구가 장애인일 수도 있잖아요. ‘그럼 난 그 사람이 이동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했을 때 제 대답은 ‘그렇지 않다’였거든요. 연대를 위해서는 내가 원하는 사회가 어떤 모습인지를 계속 얘기하고 상상하는 자세가 필요해요.

현재 한국 사회에서 공정뿐 아니라 20대 청년또한 뜨거운 화두잖아요. 그만큼 이기적인 MZ세대와 같이 일반화되기 쉬운 존재인데, <공정감각>은 이러한 프레임에서 벗어나 다른 존재와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소중하게 느껴져요.
허가영 저는 저희 세대가 가진 힘이 다양성이라고 생각해요. 에타를 통해 과대하게 대표되는 목소리나 공정에 대해 왜곡된 시선을 가진 청년들도 있겠지만, 계속 성찰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내려는 청년들도 분명 있거든요. 그러니까 이전에 노동이나 여성에 대한 의제가 뭉뚱그려 이야기됐다면 지금은 그게 계속 세분화되고 있고, 퀴어라든가 기후 위기라든가 비건이라든가 엄청나게 다양한 의제에 대해 뜨겁게 고민하고 토론하는 주체가 바로 청년이에요. MZ세대를 바라보는 많은 시선과 편견들이 있는데,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기보다는 현재 청년 세대가 어떤 삶을 살아왔고 또 어떤 고민을 공유하는지를 바라봐줬으면 해요.

인세 전액을 청소 노동자들에게 전달하기로 하셨죠? 학생들과 논의 후에 내린 결정이라고요.
나임윤경 학생의 입장에서 가영 씨 얘기를 들어보고 싶은데.(웃음)

허가영 사실 책을 낸 것 자체가 수익을 얻고자 한 일이 아니다 보니 자연스러운 흐름이지 않았나 싶어요. 강의의 시작도, 우리가 에타에 의문을 갖기 시작한 것도 모두 청소 노동자 고소 사건 때문이잖아요. 에타를 통해 과대하게 대표되는 목소리에 균열을 내고 그들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20대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게 이 책의 목표 중 하나고요. 책의 수익금을 청소 노동자들에게 기부해서 그분들이 필요한 곳에 쓰인다면 그건 또 한 번 저희의 목소리가 살아나는 일이지 않을까 해요.

결국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공정은 어떤 모습일까요?
허가영 책에서도, 지금 여기서도 계속 말했지만 타인의 삶을 상상할 수 있는 감각을 기반으로 한 공정이 진정한 공정이지 않을까 해요. 그러니까 기계적 공정이나 n분의 1처럼 단순한 평등이 아니라, 내 삶이 공정하지 않다고 느꼈을 때 그게 왜 불공정한지를 정확히 알고, 그럼 나는 이 상황에서 민주적이고 정치적인 주체로서 어떤 행동을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임윤경 수업 도중에 밖에서 소음이 들린다고 칩시다. 하나는 술 마시고 신나서 소리 지르는 취객이고 하나는 청소 노동자들이 시위하는 소리예요. 둘 다 내 수업을 방해한다고 해서 그게 똑같은 소음일까요? 그 둘은 엄연히 다른 거죠. 그걸 이해하는 감각만 있으면 공정감각은 절로 생겨요. 노동자들은 생존을 위한 투쟁 중인 거고, 술 먹고 떠드는 건 그저 더 재밌자고 그러는 거잖아요. 이걸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떠든다’는 그 행위에 꽂힌다면 그건 일종의 문맹자죠. 근데 이걸 누가 가르치나요? 아무도 안 가르쳐주지만 감각적으로 내가 아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공정‘감각’이라고 제목을 붙인 거예요. 이런 감각이 내 안에 있을 때 비로소 우리 사회가 공정해지는 거예요.


글. 김윤지 | 사진. 김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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