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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13 에세이

남미새 아니고 춤미새 (1)

2023.12.24

© pixabay

올해 들어 부쩍 이 단어를 많이 본 것 같다. 남미새. ‘남자한테 미친 새끼’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언제 어디서 탄생된 말인지 궁금해서 구글에 검색해보니 2020년에 작성된 글이 보였다. 내게,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는 2023년에 도착한 단어이지만 그 전부터 만들어졌고 쓰인 말인가 보다.

쓰인 맥락을 보니 남자를 너무나도 좋아해 이기적으로 행동하며 피해를 주는 존재를 뜻하고 있었다. 구체적인 행동의 예는 다음과 같다. 모든 생활과 사고의 중심이 남자인 것. 그러다 보니 여러 사람들과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은 안 궁금해하는 자신과 관련된 남자 얘기(‘썸남’, 연인, 남편, 아들, 덕질 대상 등등)를 계속 얘기하는 것. 교제 대상이 별로라 주변 사람이 말리는데, 주변인을 감정을 분출하는 용도로만 쓴 뒤 정작 안 좋은 연애는 꿋꿋이 지속하는 것. 남자를 안 만나고 있을 때도 티가 나는데, 예를 들면 연인이 없을 때만 연락이 잘 되는 것. 그러다 또 누군가가 생기면 두문불출하는 것 등등….

읽다 보니 상당히 찔렸다. 아무래도 나도 남미새였던 것 같은데?

남미새의 심리
그 사람은 왜 그 모양으로 살고 있을까? 개인의 특성도 이유가 되겠지만 사회적, 시대적 배경을 무시 못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20대였던 2000년대 중반에서 2010년대 중반의 한국 사회는 연애 지상주의자를 대량생산하는 시공간이었다. 각종 방송 프로그램에서 온통 사랑을 노래했고, 일상생활에서는 첫 만남에 연애 여부를 질문하는 게 당연했다. 대답이 ‘하지 않는다’이면 문제 있는 사람 취급하는 분위기가 분명 존재했다.

물론 이런 시대에 내가 특히 취약했던 데에는 개별적인 특성도 있을 것이다. 성장 과정에서 양육자의 방임, 그로 인한 마음의 구멍을, 커져갔던 애정 결핍과 인정 투쟁의 성향을 이제는 인지한다. 하지만 20대에는 그것을 언어화하지 못했고 막연히 마음의 구멍을 채울 수단만을 갈구했다. 그렇게 연애는 돈과 경험이 부족하고 취향은 빈곤했던 내가 상대적으로 쉽게 위안과 즐거움을 누리고자 선택한 수단이 됐다.

사실 연애 초기의 정신착란 상태는 꽤 재밌다. 종일 그 사람만 생각하게 만드는 호르몬 파티! 도파민과 페닐에틸아민, 노르에피네프린의 대향연! 그것은 자신이 특별한 존재가 된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알다시피, 중독 증세와 관련된 호르몬이다. 그때 나는 거의 연애 중독 상태였다. 나를 좋다고 하는 남자로부터 작은 장점만 발견해도 연애에 돌입했다. 그리고 그렇게 만난 남자가 알고 보니 형편없을 경우는, 불행히도 상당히 많았다.

하지만 남미새라면 단호하게 상대를 잘라내지 않지. 일단은 불행을 탐닉해야 한다. 밋밋하고 지루한 일상에서 자신의 평범함과 초라함을 견디느니 자극적인 고민과 역동이 있는 불행을 택하는 것, 그것이 남미새다. 남미새가 그 상태에서 벗어나는 방식은 대체로 ‘환승’이다. 당연히도, 회피적이고 수동적인 문제 해결 방식이며 그를 아끼는 친구들이라면 그 꼴을 보기까지 상당히 복장 터질 것이다. 당시 나를 지켜본 친구들도 얼마나 속 터졌을까? 역시 이 새는 해로운 새다.

이제는 제법 남미새의 사고방식과 욕망을 벗어던졌다고 생각한다. 서른이 된 뒤 점점 그렇게 됐다. 아마도 서른 전의 초조함과 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지위가 남미새의 증세를 강화한 것은 아닐까? 서른을 넘기자 오히려 초조함에서 벗어나 침착하게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었다. 2015년 한국 사회를 흔든 페미니즘 뉴웨이브도 사회구조와 스스로를 성찰하는 데 큰 자극을 줬다. 성별에 따른 고정관념과 그로 인해 억압받는 개인을, 노동과 가사, 돌봄을 병행하기 어렵게 만드는 문화와 구조를 깊이 생각했다. 또한 온라인 커뮤니티뿐만 아니라 대중매체와 일상생활에서마저 만연했던, 연애 중인 여성을 스스로 검열하고 억압하게 만들었던 ‘김치녀’, ‘된장녀’ 같은 언어가 얼마나 혐오적이고 모순적이었는지 여실히 깨달았다. ‘그런 연애’를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스스로와 약속했다. 조건 없는 정서적 지지를 경험하지 못해 평생 애정 결핍으로 허덕인 여자를 남은 삶 동안 다독이며 가장 아끼고 사랑해줄 존재는 바로 나 자신이라고.

이 글은 '남미새 아니고 춤미새 (2)'에서 이어집니다.

소개

최서윤
재미있고 의미도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게임 <수저게임>, 영화 <망치>를 만들었다. 저서로 <불만의 품격>, <미운청년새끼>(공저) 등이 있다.
인스타그램 @monthlying


글. 최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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