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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14 빅이슈

건대입구역 김동훈 빅판 (1)

2024.01.11

그는 참 열심히 살았고, 지금도 열심히 살고 있다. 빅이슈 판매원(이하 빅판)이 되기 전 그는 평일에 찹쌀떡을 팔고 주말에는 아이스크림을 팔았다. 갑자기 생활이 곤궁해졌고, 문득 《빅이슈》가 떠올랐다. 빚을 지고 길에 나앉는 것보다 무슨 일이라도 하는 게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빅이슈 사무실에 전화를 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빅판이 된 후에는 오전에 공공근로를 하고 오후에는 《빅이슈》를 판다. “낮에는 초록색 조끼 입고 공공근로를 하고, 저녁에는 빨간색 조끼 입고 《빅이슈》를 팔아요.” 이렇게 말하며 구김살 없이 웃는 김동훈 빅판을 만나기 위해 건대입구역에 다녀왔다.


건대입구역 김동훈 빅판

오후 늦게 판매를 시작하시지요? 오전에는 《빅이슈》 판매가 아닌 다른 일을 하신다고요?
네, 구청에 나가서 공공근로를 해요. 보건행정과 방역반에서 일하고 있어요. 어린이집이나 노인정 이런 데 가서 모기나 해충 같은 걸 없애는 작업을 해요. 보통 정화조나 하수구에 살충제를 뿌리죠. 공원의 정화조 같은 데에도 뿌리고요. 또 방역 요청 민원이 들어오면 그곳에 가기도 해요. 가정집에 나가서 해주는 건 아니고요. 취약 지구 하수도라든가 이런 공공 목적 시설이 있는 곳에 가서 작업하죠.

오전에는 공공근로, 오후에는 빅판으로 하루를 꽉 채워 열심히 사시네요.
지난해 7월에 구청 공공근로에 지원했거든요. 만약 공공근로에 자리가 나지 않으면 본격적으로 《빅이슈》를 팔아야겠다고 생각했었어요. 아침 9시부터 밤까지 하루 종일 판매할 결심이었는데, 7월 17일부터 공공근로를 시작하면서 투잡을 갖게 되어 오후에만 《빅이슈》를 팔고 있죠. 공공근로를 오후 3시까지 하거든요. 《빅이슈》 판매는 4시쯤 시작해서 밤 9시까지 해요. 잘 팔린다 싶으면 10시까지 할 때도 있는데, 그런 날은 너무 피곤하더라고요. 다음 날 아침 9시에 또 구청으로 출근해야 하니까요. 토요일은 공공근로를 안 가잖아요. 그래서 금요일 밤은 11시까지 판매하기도 해요. 아, 공공근로는 다른 일에 비해 좋아요. 공무원들도 다 잘 대해주시고요. 제가 공공근로 하면서 《빅이슈》 판매도 한다고 하니, 더 좋게 봐주시더라고요.

투잡을 하기 힘들진 않으세요?
제가 원래 혈압이 좀 높아요. 건강검진할 때마다 고혈압으로 나와요. 그래서 몇 달 전부터 고혈압 약을 먹기 시작했어요. 피곤하면 혈압이 더 올라가거든요. 두 가지 일을 병행하다 보니 아무래도 몸이 피곤하고 힘들어요. 토요일, 일요일에도 판매를 나가거든요. 그래서 술도 줄이고 몸을 덜 피곤하게 해서 혈압이 오르지 않게 하려고 노력해요.

《빅이슈》를 판매한 지 얼마 안 되셨죠?
지난해 5월 4일에 빅판이 되기 위한 첫 교육을 받았어요. 종각역하고 고속터미널역에 가서 이틀간 신입 교육을 받고 5월 초부터 판매를 시작했죠.

빅판으로 일하기 전에 《빅이슈》를 알고 계셨어요?
네, 원래 알고 있었어요. 지하철 타고 다니면서 많이 봤죠. 《빅이슈》가 우리나라에서 발행되기 시작할 때부터 봤어요. 다니다 보면 눈길이 가는 잡지가 있잖아요. 《빅이슈》 이미지가 좋더라고요. 어쨌든 홈리스들이 마음을 잡고 일해보려고 판매하는 거니까요. 막연히 괜찮은 잡지가 있구나, 이런 생각은 했지만, 제가 이걸 판매할 거라곤 상상도 못 했었어요.(웃음)

직접 판매해보니 어떠세요?
봄에 판매 시작하고 초반에는 좀 잘 팔렸어요. 본격적인 여름이 오기 전까지는 괜찮았죠. 금요일에는 밤 11시까지도 판매했거든요. 그때까지도 팔리니까요. 여름에 무더울 때는 아무래도 판매량이 떨어졌죠. 그래도 가을에 찬 바람 불면 또 괜찮겠거니 하고 기대했거든요. 근데 판매가 나아지지 않고 있어요. 제가 혼잣말로 “사주시던 독자님들 다 이사 가셨나 보다.” 그랬어요.(웃음)

빅판이 되기 전에는 무슨 일을 하셨어요?
찹쌀떡 장사를 했어요.(웃음) 새벽에 주택가나 아파트 단지, 유흥가 이런 데 돌면서 찹쌀떡을 팔았는데 저녁 6~7시에 시작해서 새벽 2~3시까지 팔았어요. 평일에 그렇게 일하고 토요일, 일요일에는 산에 올라가서 아이스크림을 팔았어요. 금요일 새벽 3시에 찹쌀떡 장사가 끝나면 한두 시간 잠깐 눈 붙였다가 새벽에 아이스크림 짊어지고 산에 오르는 거예요. 아이스박스를 개조해서 배낭처럼 만든 게 있어요. 거기에 아이스크림이 한 300개 정도 들어가거든요. 드라이아이스까지 넣어서 등에 짊어지고 산에 올라가요. 무게가 어마어마하죠. 그걸 짊어지고 산 정상까지 올라요. 관악산부터 용인의 광교산, 의왕에 있는 모락산, 이런 산에 가서 팔았어요.

이 글은 '건대입구역 김동훈 빅판 (2)'에서 이어집니다.


글. 안덕희 | 사진. 김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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