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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16 에세이

<서울의 봄> 단상

2024.02.06

ⓒ 영화 <서울의 봄> 스틸

12·12군사반란을 소재로 한 영화 <서울의 봄>이 천만 관객을 훌쩍 넘어섰다. 한겨울에 15도까지 올라가는 미친 날씨처럼 얼어붙은 극장가에 갑자기 밀어닥친 훈풍이었다. 부디 변덕스러운 날씨처럼 며칠 지나지 않아 그 훈풍이 영하 15도로 떨어지지는 않길 빈다. 이미 볼 만한 사람은 영화를 다 봤을 것이고, 안 봤더라도 12·12 자체는 알고 있을 테니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생략하도록 하겠다.

영화를 보면서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이 영화가 악역을 악역답게 만들었다는 점이었다. 혹자는 범죄자(전두환, 극 중 전두광)를 너무 카리스마 넘치게 그린 것 아니냐며 불쾌감을 표시하기도 하지만, 이야기가 구성되려면 악당은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건 단순히 영화 문법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는 적을 좀 적답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어차피 다 욕하는 거 전두환을 예로 들어보자. 사람들은 전두환 하면 ‘단순’ ‘무식’ ‘과격(탱크로 밀어버려)’ 같은 것들을 떠올린다. 반대자든 지지자든 이 이미지 자체에는 별 차이가 없다. 반대자들은 나아가 ‘무식해서 아는 게 없다’, ‘민주주의를 군화발로 뭉개버린 야만인’, ‘군인이 세계정세(혹은 경제)에 대해서 뭘 알겠느냐’ 이런 식의 첨언을 곁들인다. 하지만 한번 차분히 생각해보라. 진짜 그렇게 멍청하고 판단력이 흐린 사람이 쿠데타를 성공할 수 있을까? 이 영화는 그 지점을 포착한다. 전두광은 냉철하고 카리스마 넘친다. 그는 주저하는 하나회를 반란이라는 절체절명의 행위로 내몰아 기어코 승리를 거머쥔다.

전두환이 실제로 어떤 인물이었는지는 만나본 적이 없으니 단정할 수 없겠지만, 어쨌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의도였든 아니든 그는 현재 한국의 시스템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신자유주의로의 전환이 세계적으로는 영국 대처 총리와 미국 레이건 대통령 시절에 이루어졌다면, 한국이 지금 같은 자본주의 국가로 탈바꿈한 것은 신군부 시기였다. 보수는 흔히 자신들의 상징으로 박정희 대통령을 꺼내들지만, 사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경제는 국가가 주도하는 체제였다. 보수가 주장하는 시장자유주의하고는 정반대에 있었고, 오히려 중국 공산당이나 북한과 비슷했다. 체제 전환이 본격적으로 일어난 때는 신군부 시절이었고, 이 시기에 만들어진 경제체제는 지금 한국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그런 면에서 전두환은 현재 한국 경제의 메이커(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이자 보수의 사상적 근간이다.

그리고 이런 경제적 변화는 단순히 시류에 떠밀려 벌어진 것이 아니다. 12·12 반란 자체는 즉흥적이었을지 모르지만 권력을 잡은 이후 신군부는 나름의 플랜을 가지고 한국을 경영했다. 전두환은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이전부터 유명 경제학자들을 불러 개인 교습을 받았다. 그는 확신에 찬 시장주의자였으며 신군부는 이를 한국에 강제 정착시켰다. 그가 뿌린 씨앗은 노태우 정부 시절 동구권과의 소통으로 꽃을 피웠다. 한국은 자유 진영에서 동구권과의 소통이 가장 빨랐던 국가 중에 하나였다. 체제 경쟁보다 경제가 더 중요하다는 확실한 메시지였다. 그리고 이후 집권한 김영삼 정부는 군부(하나회)를 숙청함으로써 자본을 억압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제거한다. 군사 쿠데타로 이룬 체제가 역설적으로 군을 몰아내는 바탕이 된 셈이다.

나는 전두환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사람들이 그와 신군부를 너무 단순하게 평가하는 바람에, 그가 벌이고자 했던 일이 정확히 무엇이고, 그것이 지금의 한국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적을 넘어서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상대방을 무조건 악마화하거나 능력을 깎아내리곤 한다. 종종이라고는 표현했지만, 주변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거의 대부분 그러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행위는 자신의 스트레스를 조금 풀어주는 것 외에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사실 스트레스가 줄지도 않을 것 같다. 그 무능한 상대에게 졌다는 사실이 좋은가? 그 정도가 당신의 적인 것이 만족스러운가? 상대방을 무시하지 마라. 싸울 상대로 인정해야 싸울 수 있고, 나아가 이길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묘하게 전두환과 닮은 구석이 있다. 실제로 닮았다는 것이 아니라 반대자들이 인식하는 모습(단순, 무식, 과격)에서 동일한 측면이 있다. 스스로 후보 시절에 전두환 옹호 발언을 해서 논란이 되기도 했으니 완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최근 사석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멍청하다며 잘근잘근 씹는 지인이 있었다. 나는 “그런 태도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을 것”이라며 면박을 줬다. 그가 정말 혹자들이 평가하듯 단순, 무식하기만 한 인물이었다면 거대 정당에 들어가 당을 장악하지도, 대통령이 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반대 진영 지지자들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을 무조건 부패하고 타락한 비리 집단으로 규정한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 본질은 건드리지도 못한 채 입싸움이나 하고 서로의 감정만 상할 뿐이다. 놀랍게도 양당의 지지자들은 동일한 이유로 상대를 싫어한다.

공교롭게도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박정희를 소환했고,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전두환을 소환했다. 그 지도자들이 가지고 있는 어떤 이미지를 자신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어필하고 싶어서 한 행동이겠지. 물론 나로서는 박정희나 전두환 같은 리더십은 지금 한국 사회에 전혀 필요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기에 두 후보 모두에게 투표하지 않았다.

각설하고, 오늘의 결론. 적을 적답게 생각하고, 상대를 인정하라. 그건 상대방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더 나은 전략이다.

제목: <서울의 봄>
포인트
워치차고 인증 플렉스: ★★★★
악역의 카리스마: ★★★☆
묘한 현실 고증: ★★★

소개

오후(ohoo)
비정규 작가. 세상 모든 게 궁금하지만 대부분은 방구석에 앉아 콘텐츠를 소비하며 시간을 보낸다. <가장 사적인 연애사> <나는 농담으로 과학을 말한다> 등 여섯 권의 책을 썼고 몇몇 잡지에 글을 기고한다.


글.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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