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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23 빅이슈

홈리스 여성 이야기 - 퍼플 님은 또다시 홈리스가 되었다

2024.07.22

글. 김진미

퍼플(가명) 님이 다섯 살이 채 안 된 딸과 함께 내가 있는 일시보호시설에 왔다. 퍼플 님은 먼저 나를 알아본 듯하다. 자기 얘기를 하며 그 이야기에 등장한 아무개, 아무개 씨를 내가 알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일시보호시설을 처음 이용한다고 했으므로 아마도 우리 시설을 거쳐 간 홈리스 누군가를 다른 곳에서 만났나 보다 했다. 일시보호시설은 홈리스 상황이 되었을 때 긴급한 보호를 요청하러 왔다가 다른 서비스를 찾아갈 때까지 지내는 일종의 플랫폼 같은 곳이어서 센터를 거쳐 간 누군가를 또 다른 시설에서 만났을 수 있다. 시설에 오기까지 1년 전, 2년 전, 그렇게 그녀의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며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내가 전에 일했던 노숙인자활시설에 입소하여 생활했던 여성이었고, 연도를 따져보니 내가 그 자활시설의 실무자로 있을 때 그녀도, 또 다른 아무개, 아무개 여성들도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10여 년 전 일이다. 나는 그녀가 왠지 낯설지 않다는 느낌이 있었지만 그녀에 대해 한 조각 기억도 떠올리지 못했다. 그녀가 홈리스로 처음 시설을 찾았을 때는 20대 중반의 젊은 미혼 여성이었을 터이다. 어느덧 시간이 훌쩍 흘러 그녀는 엄마가 되었고, 여전히 주거와 생활의 위기에 놓인 모자가족 홈리스가 되어 나타났다.

10여 년의 세월 동안 왜 그녀의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을까.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녀가 들려준 그간의 상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홈리스 여성을 위한 자활시설에 입소할 때 그녀는 더부살이하던 곳을 나와 갈 곳이 없는 상태였다. 지방의 한 도시에서 성장한 퍼플 님은 성인이 되자마자 집을 떠났다. 집에서 지낼 때는 늘 불만이 컸다고 한다. 부모님이 이혼하며 조부모 밑에서 오빠와 함께 살았는데 늘상 오빠만 위해주고 자신은 차별을 받았다고 한다. 학교에서는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었고, 왕따였기 때문에 친구가 없었으며 그러다 동네 후배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모두가 가혹하기만 했던

집을 나와서는 고향 후배들과 일종의 가출 패밀리를 형성하고 4, 5년 정도 생활했다. 노래방 도우미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는데 후배들이 퍼플 님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일이 많아 그 생활도 쉽지 않았다. 가출 패밀리를 나와 조부모 집에 들어간 적도 있지만 곧 다시 나와 후배들과 어울렸고 그렇게 가출과 귀가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홈리스 여성 자활시설 정보를 얻고는 입소하여 1년 좀 못 미치게 생활했다. 그때 자활시설에서 알게 된 동료 중 한 명이 퇴소한 후 지방 어디에서 남자 친구와 지내고 있으니 내려오라는 연락을 했고, 또 다른 동료가 그리로 합류하고, 자신도 그쪽으로 갔었다고 한다. 그렇게 모여 지냈으나 분란이 생겨 곧 헤어졌다.

또다시 고향 후배와 연락이 닿았고 후배가 소개한 남성과 혼인신고를 하고 후배 부부와 자신 부부가 함께 지냈으나 진짜 가족은 아니었다. 그들은 겨우 1주일 후쯤 헤어졌고, 서류로만 남은 결혼은 1년 뒤 이혼으로 정리되었다. 그다음에는 다방 종업원으로 일했다. 당시 만난 남성과의 사이에서 임신을 했는데 상대 남성은 ‘누구 아이인지 어떻게 아냐.’며 모른 척했고, 결국 미혼모 시설에 입소해 딸아이를 출산해야 했다. 조부모에게 연락하니 아이는 왜 낳냐고 잔소리만 하더라며, 다시는 연락하지 않겠다 했다.

출산 후 모자원에 입소해 1년 반쯤 생활했다. 이때 시설의 도움으로 검사를 해 퍼플 님은 지적장애가 있다는 판정을 받고 장애인 등록을 했다고 한다. 시설을 퇴소하여서는 이번에도 자활시설에서 알게 된 동료 집에서 1년쯤 더부살이를 했다. 그러나 장기간 더부살이를 하기 힘들었기에 딸과 지냈던 모자원에 재입소했고 그때로부터 몇 달 전까지 1년 반쯤 잘 생활하고 있었다. 모자원에서 연계한 공장을 다니며 생활비를 벌었고, 별도의 호를 주었기 때문에 밥을 하고 반찬을 사서 아이를 챙기며 꽤 독립적으로 지낼 수 있었다. 딸아이가 말이 좀 늦었는데 주변에서 아무래도 검사를 해보는 게 좋겠다고 해서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다. 아이는 발달장애 진단을 받았고 몇 달 전까지는 언어치료를 받았다.

괴롭히는 나쁜 애들보다도 못한 가족

몇 달 전, 이번에도 고향 후배가 연락을 해왔다고 한다. 시설에 있는 게 뭐 좋냐며 LH 임대주택에 들어갈 수 있게 해줄 테니 나오라고 꼬드기더란다. 그 말을 듣고 후배가 있는 지방으로 이사해 보증금 50만 원짜리 방을 얻었다. 생활은 수급비와 장애인 수당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후배 부부는 동남아에 놀러 가자며 수백만 원이 필요한데 우선 자신들이 내겠다고 해 자신과 딸, 후배 부부와 지인이 함께 여행을 다녀왔다. 그리고 여행비를 갚아야 하기에 자신의 이름으로 대출을 받아 후배에게 주었다. 후배는 자신이 대출금 이자를 내니 돈을 더 주어야 한다고 했고, 그래서 이번 달 수급비를 받자마자 그들에게 몽땅 주었고, 생활비가 없어 살기 힘들어지자 서울로 무작정 상경했다가 일시보호시설에 오게 되었다고 했다.

오빠만 위하고, 아이는 왜 낳느냐고 잔소리하는 조부모에게는 가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차별을 심하게 받아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정이 없다고 한다. 이혼 후 만난 적이 없는 엄마에게 갈 수도 없고 재혼해 새엄마와의 사이에서 남동생, 여동생을 낳은 아버지도 자신에게 잘 대해준 적이 없어 연락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동네 후배들이 비록 폭력을 가하기도 했지만 어릴 때는 친구가 없어서 그들과 어울렸고 나중에는 동네 후배가 결혼도 했다고 해 좀 바뀌었나 보다 생각했었다고 한다. 여행비보다 훨씬 많은 돈을 갚았는데 앞으로도 돈을 더 갚아야 한다고 강요하는 그 후배들이 하는 행동은 범죄에 가까운 것을 아느냐 묻자 겸연쩍게 웃을 뿐 답을 하지는 않았다.

퍼플 님에게 집과 가족은 따뜻한 곳도 지지 자원도 아니었다. 퍼플 님 말로 “나쁜 애들”인 고향 후배, 혹은 시설에서 알게 된 비슷한 처지의 여성들과 어울리고 교류하는 것은 익숙하면서 또 생존을 위해 필요한 때도 많았던 듯하다. 그러나 장애가 있는 딸을 키우고 살아가야 하는데, 그동안 고향 후배들과 어울려 살 때 오히려 힘든 점이 많지 않았느냐 물으니 가만히 고개를 숙인다. 수급비와 수당을 받아 아이 잘 키우고 살아가려면 정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는 게 좋겠다고 했더니 전에 지냈던 모자원에 다시 들어갈 수 있는지 전화를 해보겠다고 한다. 다시 입소할 수만 있다면 살 수 있는 기간을 꽉 채워 지내겠다고. 그렇게 살아가길 원한다면 그 방향으로 지원하겠다고 알리고 퍼플 님이 지냈던 주소지 주민센터와 통화해 복지시설 입소 신청을 돕기로 협의했다.

가족 지지의 취약함과 장애를 가진 엄마와 딸은 뿌리가 깊지 않은 나무처럼 쉬 흔들리다 홈리스가 되었다. 홈리스 상황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버팀목을 세우고 좀 더 깊이 뿌리를 내릴 때까지 보살피며 기다려주어야 할 듯하다.


김진미

여성 홈리스 일시보호시설 ‘디딤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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