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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23 에세이

옆에서 - 몰랐던 것, 알아야 할 것

2024.07.22

날씨 좋은 날 산책을 나가면 개도 좋아한다. 2024년 봄날, 촬영한 사진.

글 | 사진. 유지영

몰랐다. 정말 몰랐다. 2021년 10월 한 마리의 개를 입양하고 난 뒤로 나를 둘러싼 세상이 이렇게 바뀔 거라고는 짐작하지 못했다. 나는 그저 개 한 마리를 집에 들이는 결정을 했을 뿐인데, 내 삶의 모든 부분이 재편되기 시작했다. 단순히 하루에 두 번 개에게 밥을 주고, 산책을 두 번 이상 시키는 정도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내 눈에 개가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입양한 개만이 아니라, 그 개의 친구인 개와 그 개의 보호자, 그리고 온갖 보호소에서 안락사되는 수많은 개들, 집 마당에 플라스틱 개집 하나 갖다놓은 데서 목줄로 묶여 평생을 음식물쓰레기를 먹으면서 사는 개들, 번식장에 갇혀 평생 강아지를 낳는 ‘번식 기계’처럼 살다가 버려지는 개들, 때로는 한국에서 더이상 입양처를 찾기 어려워 해외에서 가족을 찾기 위해 영문도 모른 채 열 시간이 넘도록 비행기를 타고 화물칸에 실려 떠나는 개들, 그러다가 간혹 해외에서 운이 좋게 살아남거나, 생을 마감하는 개들, 그 수천, 수만 마리의 개들이 막 원래부터도 그렇게는 넓지 않은 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현기증이 일 정도의 변화에 간신히 적응하면서 정신을 차리고 나니 내가 입양한 개는 쑥쑥 자라 한 살이 넘자 20kg 이상으로 커 있었다. 그러나 내가 정말 몰랐던 건 또 있었는데, 큰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할 때면 개를 싫어하는 타인들로부터 자주 거리에서 시비가 걸린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겪은 시비의 종류라면 정말 다양했다. 다른 시민들과 작은 개들도 버젓이 지나다니는 길을 “어린이집이 옆에 있다”라는 이유로 큰 개랑 지나다니지 말라고 주장하거나, “입마개를 하라”면서 고함을 치거나, “무섭게 생겼다”라면서 자신이 키우는 작은 개에게 “넌 한입거리다”라고 말하거나, 그냥 아무런 이유 없이 큰소리를 지르면서 달려오는 등의 일이 산책 때 자주 일어났다. 이런 일은 너무 다양한 형태로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대처도 쉽지 않았다. 하루는 목줄을 붙잡고 길거리에서 시비를 거는 상대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일도 있었다. 주변에 버스정류장이 있었기 때문에 지나다니는 시민들이 모두 소리를 지르는 나를 보았다. 화가 나서 온몸이 떨렸다. 전례 없는 일이었다.

놀랍게도 개도 푹신한 흰 이불을 좋아한다. 이불을 교체한 날에는 가장 먼저 올라가서 누워서 깊이 잠든다.

개가 자라면 보호자도 같이 자라난다

그때쯤부터는 서서히 이 개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내가 감내해야 하는 것이 있다는 걸 깨달아가기 시작했다. 처음에 나는 개 한 마리를 입양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 개를 둘러싼 맥락까지를 모두 입양해야 했던 것이었다. 그러니까 한국에 있는 보호소에서 가장 흔하고 주로 안락사되는, 잡종(믹스)의, 흔히 실내에서 키울 거라고는 상상하지 않는, 혈통은커녕 부모견이 누군지조차 모르고 그저 “똥개”라고 불리는, 내가 우연히 보고 예쁘다고 생각해 입양하기로 결심해서 끝내 같이 살게 된 개는 바로 그런 개였다.

하루는 마당이 있는 지인의 집에 방문했는데, 대문을 열자마자 “개는 마당에 두고 (실내로) 올라오라”라는 말을 들었다. 그 집에는 이미 작은 개가 실내에서 살고 있었다. 내가 입양한 개도 실내에서 키우는 개고, 그렇기 때문에 마당에서는 잘 수는 없다는 걸 한참 설명한 후에야 간신히 실내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 개는 실내에서 키우는 작은 개와 똑같은 개라는 걸, 단지 체중만 다르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넘실거리는 슬픔이 하고자 하는 말을 먼저 막아 세웠다. 나는 대신 화장실로 황급히 들어가 눈에 고인 눈물을 닦아냈다.

다음 달이 되면 이 개는 세 살이 된다. 생후 3개월에 입양했을 때는 6kg이었던 개가 이제는 21kg이 됐다. 처음 산책을 시키러 집 앞에 데리고 나갔던 날, 무서워서 주저앉은 채로 몇 시간을 버티던 그 개가 이제는 곧잘 행인들을 스치고 씩씩하게 공원까지 걸어가서 친구인 개를 만나 환하게 웃기도 하고 재밌게 놀기도 하면서 사는 재미를 알아간다.

과연 지난 3년간 개만큼 보호자도 자랐을까. 중요한 건 나 역시 이 개를 입양하기 전에는 아무것도 몰랐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리고 모르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거리에서 나는 간혹 과거의 나와 마주친다고 생각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큰 개라면 모두 입마개를 해야 하는 게 아닌가, 모두 공격성이 있는 게 아닐까, 실외에서 키워야 하는 게 아닐까, 라는 수많은 질문에 열심히 대화하고, 설명하고, 때로는 필요하다면 최선을 다해서 잘 싸우기로 한다.

나는 그것이 개와 발맞춰 보호자의 자라는 방식이라 생각한다. 날이 갈수록 커지는 나를 향한 개의 사랑에 응답하는 방식이라 생각한다. 내가 남편과 입양한 개 ‘밤이’의 세 살을, 그리고 ‘우리’라는 이름으로 다가올 수많은 나날을 앞두고 몇 가지 다짐을 적어보았다.


유지영

<오마이뉴스> 기자.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함께 만들고 동명의 책을 썼다. 사람 하나, 개 하나랑 서울에서 살고 있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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