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없고 콘텐츠는 너무 많다! 매번 어떤 콘텐츠를 볼까 고민만 하다 시작조차 못 하는 이들을 위해 일단 시작하면 손에서 놓지 못하는 웹소설을 소개한다. 키워드가 취향에 맞는다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5화’만 읽어보자.
글. 김윤지
그때 그 시절 X세대의 감성을 느끼고 싶다면 여기 주목하자. 때는 1995년, 한여름의 열기가 한풀 꺾인 주말의 밤. 이태원의 웨스턴 바는 이국적인 분위기를 즐기러 나온 청춘들로 발 디딜 틈 없다. 안드레 드 라파이예트는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존재. 정작 그는 어디에도 관심이 없지만 아무리 그라도 옆 테이블에서 선명하게 들려오는 목소리까지 무시하지는 못한다. 한국말을 못 알아들을 거라 생각하는 건지, 외국 남자는 남자로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여자의 감상도 지나치게 잘 들린다는 게 문제지만.
여자에게 시선이 머무른 것은 단지 그 때문이었다. 타깃, 연장, 완전범죄. 들려오는 단어들이 심상치 않은 게 범죄 모의라도 하는 건가 싶지만 상관없다. 가문의 전통에 따라 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육군 소위로 임관해 초고속 승진을 거듭한 그는 최근 육군 대위를 마지막으로 퇴역 의사를 밝힌 참이었다. 2주 후면 한국 생활을 완전히 접고 뉴욕으로 돌아가 다시 가문의 유일한 후계자로서 의무를 다해야겠지. 이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기에 애들 장난에 휘말려줄 생각 따윈 없었다. 가방을 소매치기당한 자신의 앞에 그 여자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마이 네임 이즈 미란 강. 캔 아이 헬프 유?” 자신이 남자로 보이지 않는다고 할 땐 언제고, 어설픈 영어로 말을 걸어오는 여자에 어이가 없어 “노 땡큐.”를 외치는데, 뭔가 이상해 고개를 드니 여자가 곧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끝내 안드레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오케이.”였다. 자신의 한마디가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모르고.
한편, X세대답게 남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주인공 미란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있다.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지가 벌써 6개월인데 오디션을 보는 족족 떨어진다는 것. 조연은커녕 단역조차 따내지 못하는 신세다. 그래서 믿지도 않는 사주를 보겠다고 사주카페에 찾아갔는데, 글쎄 역술가가 한다는 말이 한국에서는 못 살 팔자라고, 무조건 해외로 나가야만 한단다. 비행기 한번 못 타봤는데, 외국인이랑 결혼을 하라고? 뒤이어 배우로서의 제 전망을 묻자 악담이나 해대는 역술가에 화가 난 미란은 돌팔이라며 박차고 나온다. 그리고 그 역술가가 돌팔이란 걸 증명이라도 하듯 곧 오디션 합격 전화를 받는 미란. 비록 대사 몇 줄 없는 단역이지만 유명 감독의 신작이다. 분명 이건 신이 주신 기회인데, 합격 소식에도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그 감독의 소문이 좋지 않으니 조심하라는 선배의 말 때문일까?
그 역술가는 돌팔이가 맞는지, 감독에 대한 소문은 사실일지 궁금하다면 5화까지는 지켜보자. 삐삐, 클럽 줄리아나 등의 소재와 더불어 당시 유행하던 드라마와 영화까지 대사에 녹여내 그 시절의 향수를 진하게 느낄 수 있다.(그 시대를 잘 모르더라도 댓글에서 ‘90년대 해석본’을 찾아볼 수 있으니 걱정은 말자.) 아날로그적인 삶과 디지털 시대가 충돌하던 1995년. 겁은 많지만, 마음먹은 건 어떻게든 해내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는 X세대 미란과 몸에 ‘블루 블러드’가 흐르는 안드레의 레트로 로맨스에 빠져보자.
장르: 현대로맨스
회차: 75화(24년 5월 24일 기준)
플랫폼: 리디북스
키워드: #90년대 #외국인/혼혈 #재벌남 #순진녀 #로맨틱코미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