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진미
그녀가 드디어 홈리스로서 불안했던 지난날을 떨치고 안전한 홈에 안착하게 된 듯하다. 그녀에 대해서는 언젠가 이 지면에서 젊은 홈리스 여성의 삶을 다룰 때 짧게 소개한 적이 있다. 초등학생 때 이미 가정을 떠나 시설로 향해야 했던, 엄마의 아동학대로 가정에서 분리되어야 했던, 그렇게 너무 일찍 홈리스였던, 성인이 된 후에도 여전히 위기를 경험하던 젊은 홈리스 여성에 대해. 그녀는 중학생과 고등학생 시절도 모두 청소년 시설에서 보내고 성인이 되어서 작은 원룸을 얻어 독립했었다. 처음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씩씩하게 잘 지냈었다고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우울이 찾아왔었단다. 일을 유지하지 못했고 두문불출하기를 여러 달. 그 사이에 월세가 밀려 보증금도 다 까먹고 다시 홈리스가 되었다.
일찍이 시설 경험이 있었던 그녀는 스스로 정보를 탐색해 내가 있는 여성일시 보호시설에 찾아왔다. 20대 중반의 젊은 여성이 다양한 연령대의 다양한 사연을 가지고, 게다가 누구 하나 같지 않은 생활 습관을 가지고 있는 여성들 틈에서 지낼 수 있을까, 한 방에서 여럿이 지내야 하는 생활을 견딜 수 있을까 걱정했었다. 그런데 어떤 면에서는 기우였다. 어릴 적 경험으로 그녀는 공동생활이 어떤 것인지 잘 아는 듯했다. 아주 사소한 생활상의 이슈로 다툼이 있곤 하는 곳이 시설인데, 그녀는 그런 스트레스를 견디는 연습이 되어 있었던 것 같다. 시설에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하지 않았고, 아르바이트를 찾아 일하려고 노력했으며, 일이 잘 구해지지 않을 때는 그저 주저앉아 있지 않고 시설이 소개하는 자활근로 일이라도 열심히 하려고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두 달의 시설 이용기간이 다 되었는데 그녀는 아직 독립할 준비가 안 됐다며 재이용을 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알고 봤더니 그녀는 보육시설에서 나온 청년들에게 우선순위가 있는 전세임대주택 입주를 원해 신청을 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후 전세임대주택 입주 자격을 취득하자 집을 구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하여 이용 기간은 또 연장되고 말았다. 시설 생활을 너무 힘겨워하지 않을까, 지겨워하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점점 그녀의 시설 생활이 너무 길어지는 건 아닌가, 동료들과 그런 얘기를 나눠야 했다. 집을 구하는 게 너무 진척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그녀가 집 구하기를 서두를 생각이 없는 게 아니냐고.
사실 많은 홈리스 여성들이 일시보호시설의 일시적 이용 기간을 무척 불안해한다. 처음 시설을 이용할 때도 제일 먼저 묻는 게 얼마나 이용할 수 있느냐는 거고, 그 다음부터는 수시로 찾아와 자신이 있을 수 있는 날이 언제까지냐고 달력을 펼쳐놓고 날짜를 짚어달라고 하는 예도 있다. 불안해하지 말라고, 독립 거처를 마련할 형편이 안 된다면 홈리스 여성들이 거주할 수 있는 시설들이 있다고, 빈자리가 있는지 알아봐드릴 수 있다고 설명해도 마음 편히 돌아서는 분들은 적다. 누구는 그 자리가 빨리 안 나오면 어쩌냐며 초조해하고, 누구는 또 다른 데를 가야 하는 것이냐며, 겨우 선생님들 얼굴 익히고 방 식구랑도 익숙해졌는데 정말 가야 하냐며 탐탁지 않아 한다.
혼자 사는, 안전한 집
홈리스 여성 거주 시설에 입소할 생각은 없다고, 곧 고시원을 얻어 나갈 생각이라는 여성들도 이용 기간에 민감하기는 마찬가지다. 한 방을 이용하는 여성들과 마음이 안 맞아 수없이 방을 바꿔 달라면서도 막상 고시원을 알아보고 있느냐 물어보면 아직 이용 기간이 안 끝났는데 왜 채근하냐는 투로 기간이 끝날 때쯤 알아보겠노라 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형편에 맞고 마음에 드는 고시원이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니니 이런 경우는 필시 며칠만 더 있다 나가면 안 되냐고, 고시원을 아직 못 찾았다고 하는 호소로 귀결되곤 한다.
젊은 그녀의 집 구하기가 너무 지체되는 것 같아 집을 구하는 데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면 고시원 같은 임시 독립 거처라도 얻고, 여유 있게 찾아보면 어떠냐 제안했다. 처음에 그녀는 난감해했다. 집을 구해 독립하면 여러모로 돈이 들어갈 거라면서, 생활용품도 마련하자면 돈을 좀 모아두어야 하는데 고시원비를 지출하는 게 부담된다는 거였다. 도움받을 가족도 없는 젊은 여성이 살아보려고 하는데 규정만 읊어댈 수는 없었으나, 실은 그녀의 사정처럼 다른 많은 홈리스 여성들도 다 저마다의 처지와 이유가 있을 터이니 그녀에게만 무한정 허용적인 것도 바른 처사라 하기 힘들었다. 결국 그녀에게 고시원비를 지원하기로 했고, 그렇게 두 달이 지난 시점에서 원하는 집을 찾아 계약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몇 달을 시간만 나면 집을 보러 다닌다고 했는데 도대체 어떤 집을 얻었느냐 물었다. 서울 외곽에서 작은 오피스텔을 찾았다고 한다. 그간 그녀가 찾던 집은 뭐니 뭐니 해도 ‘안전’한 곳이어야 했다고. 그래서 도로변에 있는 문단속이 잘될 것 같은 집을 찾아다녔다고. 전세임대주택 입주 지원금이 1억 2000여만 원이어서 큰돈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서울에서는 그런 전셋집을 찾기가 참으로 어렵더라고 했다. 전세금을 지원받는 대신 그녀는 전세금 이자를 매달 내야 한다. 20여만 원쯤 내면 된다니 사실 주거비 부담 때문에 생활이 너무 빡빡한 젊은이들에게는 꽤 괜찮은 주거복지 서비스라고 할 법하다. 감당할 만한 수준의 주거비를 부담하고 본인이 원하는 그야말로 안전한 집을 찾았다니 너무 축하할 일이라고, 오래 발품을 판 보람이 있다고 함께 안도하고 격려했다.
짐이 워낙 없어서 이사는 어렵지 않게 금방 했단다. 좋은 꿈을 꿨냐 했더니 함박 웃었다. 아마 단잠을 자느라 꿈은 만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사한 지역에서 새로운 일을 찾아보겠다며 인사하는데 어느 때보다 표정이 환했다. 오랜 그녀의 홈리스 생활이 이제는 끝날 수 있을 것 같다.
김진미
여성 홈리스 일시보호시설 ‘디딤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