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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30 컬쳐

SEASONAL - 다크 무비리즘│잔혹한 현실에도 크리스마스는 온다

2024.12.30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23일에 잠들어서 26일에 깨는 것이지만, 이미 낮잠을 충분히 잤다면 영화를 보며 시간을 죽이는 것도 괜찮다. 번개 모양 흉터를 가진 금수저 나르시시스트의 좌충우돌, 자기 집에 가둬놓고 패는 소년에게서 살아남는 2인조 도둑의 끈질긴 생존기, 결혼한 친구 아내의 집까지 찾아가서 하는 통보식의 스케치북 낭비, 그런 건 이미 너무 많이 돌려 봤다. 영화에서든 현실에서든 잔혹하고 비참한 일들이 일어난다. 그럼에도 크리스마스는 온다. 그것을 배경으로 하는 다소 기이하고 특별한 영화들을 추천한다.


글. 조은식 | 스틸 제공. IMDB

ⓒ(주)한영필림

〈야수의 날〉(1995)

25년간 요한계시록을 연구해온 신학자 엔젤 베라투아 신부(알렉스 앙굴로)의 계산대로라면 당장 내일인 크리스마스 새벽에 세계 종말이 찾아온다. 그는 적그리스도의 탄생을 막기 위해 가능한 많은 죄를 저질러 악마를 직접 만나기를 결심한다. 그래 놓고 하는 짓이 길거리에서 공연하는 사람들을 밀치고, 열쇠로 차들을 긁으며, 서점에서 책을 훔치는 것. 그는 어이없는 여정을 거듭하면서 헤비메탈 마니아 오세 마리아(산티아고 세구라)와 사이비 오컬트 TV쇼 진행자 카반(아르만도 드 라자)을 만난다. 언러키 동방박사들은 우여곡절 끝에 악마를 부르는 의식을 거행하는데. 그들의 경범죄는 점점 돌이킬 수 없는 중범죄가 되어간다. 〈야수의 날〉은 알렉스 드 라 이글레시아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이며, 이 작품으로 스페인 장르 영화의 부활을 알렸다. 그의 필모그래피는 늘 어둡고 뒤틀린 현실 사회를 반영하지만 동시에 우스꽝스럽게 풍자하는, 그러니까 ‘웃픈’ 매력이 장점이다. 영화를 통해, 크리스마스를 앞둔 세기말의 마드리드는 어떤 믿음들로 파괴되고 채워지고 남아 있는지 간접적으로 체험해볼 수 있다.

© (주)팝엔터테인먼트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2003)

어째서인지 아이를 돌보는 것에 능숙한 중년의 ‘긴’, 모성애가 충만한 여장 남자 ‘하나’, 10대 가출 청소년 ‘미유키’는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홈리스 생활을 한다. 크리스마스에 미유키의 선물을 찾기 위해 쓰레기장을 뒤지다가 우연히 버려진 아기를 발견한다. 긴은 아기를 경찰서로 데려가려고 하지만, 하나는 지금 데려가면 매년 행복해야 할 크리스마스가 아기에게 최악의 날이 될까 봐 반대한다. 하나는 아기에게 키요코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직접 부모를 찾아주자고 한다.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에서 주인공들은 말도 안 되는 우연들을 겪으며 그들 또한 자신이 잃어버렸던 것들을 기적처럼 마주한다. 그렇게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기적은 영화에서만 일어나는가. 수년 전 방구석에서 우연히 이 영화를 보고 난 이후로 매년 극장에서도 볼 수 있기를 소망했다. 그리고 올해 12월 극장 재개봉 소식이 있다.

© 엠베서 픽쳐스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1960)

거대한 보험 회사의 직원인 C.C. 백스터(잭 레몬)는 월세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문제는 들어가고 싶을 때 들어갈 수가 없다. 회사 경영진들이 바람을 피우는 용도로 백스터의 집을 숙박업소처럼 빌리고 있기 때문이다. 불편한 게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업무 평가와 승진에 반영하겠다는 탓에 거절하기가 어렵다. 끝내 승진한 성공한 백스터는 회사에서 크리스마스 파티가 열리는 날, 자신이 좋아하는 엘리베이터 안내원 프랜 쿠벨릭(셜리 맥클레인)이 자신의 집을 빌리던 직장 상사 제프 쉘드레이크(프레드 맥머레이)와 불륜 관계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후로도 제프는 프랜과 만나기 위해 백스터에게 아파트 열쇠를 요구하는데.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는 의지대로 흘러가지 않는 상황 속에서 인물들이 그다음에는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주인공이 말하는 것처럼 삶은 그저 “쿠키가 부서지는 방식처럼 흘러간다.”는 명대사를 이해하고 품을 수 있을 것이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토이즈〉(1992)

모두에게 기쁨을 주는 장난감을 만들고 싶은 마음으로 공장을 세워 운영해온 ‘제보 장난감 회사’의 사장 케네스 제보(도날드 오코너). 그는 죽기 전에, 자신의 꿈을 이어가는 아들 레슬리 제보(로빈 윌리엄스)가 아닌, 전쟁광 동생 릴랜드 제보(마이클 갬본) 장군에게 회사의 후계를 맡긴다. 레슬리는 장난감과 장난감 만드는 일을 사랑하지만 회사를 운영하기에는 너무 아이 같고 천진난만하다는 이유에서였다. 회사를 인수한 릴랜드는 전쟁 장난감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나아가 전자오락으로 아이들을 속여 실제 전쟁에 활용하려고 한다. 이를 눈치챈 레슬리는 지켜야 할 것을 지키기 위해 그의 장난감 인형들과 함께, 릴랜드와 그의 장난감 무기들에 맞선다. 〈토이즈〉는 장난감 공장 내부에서 열린 성탄절 공연으로 시작한다. 무대를 즐기는 아이들과 구성원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순수한 기쁨은, 영화가 허구인 것을 알면서도 그 순간이 진짜이기를 바라게 된다. 더불어 환상적이고 다채로운 미감의 장난감 공장 세계관은 보는 맛이 있다. 무엇보다 얼룩지지 않는 동심을 연기하는 로빈 윌리엄스를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가 짓는 미소는 그야말로 크리스마스이다.


조은식

소개말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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