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층으로 이어진 좁고 가파른 경사, 디딜 때마다 미세하게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 사랑받은 것들이 응당 그러하듯 구김살 없는 표정으로 허공을 나는 책들. 계단의 끝에 서서 잠깐 숨을 고른 후 책으로 묶인 도르래를 당.긴.다. 토끼 굴로 쓰윽 내 몸이 미끄러져 내려가는 순간. 공기의 색이 일순간 주황빛으로 바뀌고, 저기 구석에 미친 모자 장수의 길쭉한 실루엣이 비친다.
내 유년 시절의 아랫목

여름방학 때마다 우리 남매는 강원도 동해에 머물렀다. 짧으면 2주, 길게는 한 달.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방학만 되면 어김없이 도시에서 탈출해 동쪽 끝 외갓집으로 향했다. 거기서 우리는 싱그럽고, 풍요롭고, 또 안전했다.
안전하긴 했지만, 바다 빼고는 서울만큼 놀거리가 풍부하진 않았다. 놀이터도, 게임기도 없던 외갓집에서의 일상은 외려 우리 남매를 창의적으로 만들었다. ‘눈만 크고, 코는 작고, 수염이 난 옆집 아저씨. 눈만 보면 쏟아질까 나는 매일 걱정하지요’가 가사의 전부인 동요 〈옆집 아저씨〉를 작사·작곡한 것도, 신문에 딸려오는 전단지 속 물건들, TV나 오디오, 각종 과일과 채소 등을 오려서 우리만의 실사판 종이인형 놀이를 시작한 것도 여기서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엉성하기 그지없는 보드게임도 자체 제작해 동네의 순박한 또래 어린이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기도 했다.

그렇게 하다하다 할 게 없어 지루해진 순간, 내가 빠지기 시작한 건 바로 외할아버지의 책장이었다. 아래쪽에는 여닫이문이 달린 하부장이, 상단에는 유리 미닫이문이 있는 4단짜리 짙은 호두나무 책장. 벽면에 그 책장 두 개가 나란히 붙어 있었는데 안에는 낡고 눅진한 오래된 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모든 책을 다 들여다봤지만, 특히 빛바랜 진녹색 양장 커버의 낡은 책을 나는 좋아했다. 책 표지와 내지 연결 부분이 살짝 갈라져 있어서 항상 조심조심 꺼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니 〈한국 근대소설집〉이었는데 당시에는 한문으로 쓰여 있어 책 제목이 뭔지도 몰랐다. 〈표본실의 청개구리〉, 〈메밀꽃 필 무렵〉, 〈봄봄〉, 〈B사감과 러브레터〉 같은 소설을 그 책을 통해 처음 읽었다.
생전 처음 본 세로쓰기 글들을 하나하나 집중해서 읽어가다 보면 소설 속 문장들이 형태와 색을 입고 눈앞에 펼쳐졌다. 그 입체적인 이야기를 만나는 재미는 종이인형 놀이나 보드게임의 재미와는 차원이 달랐다. 초등학교 4학년 입장에서 뭔가 어른스러운 다음 단계의 이야기를 만난 기분이랄까. 돌이켜보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오래된 책들에 관한 호감의 태도가 생긴 건. 나달나달해진 책 모서리에 가만히 내 손을 포개며 문학청년이었던 젊은 시절 외할아버지가 넘겼을 책장을 상상하고, 밑줄 쳐진 문장들을 보며 그의 생각이 왜 여기에 머물렀을까 추리하기도 했다. 그렇게 오감을 동원해 책을 읽은 기억들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대로 내 몸에 남아 있다. 누군가의 손을 거친 오래된 책은 새로운 세계로 안내하는 내밀한 초대장 같은 거였다.
느릿느릿 한가롭고 품위 있는 헌책방
까맣게 잊고 있던 외할아버지의 책장이 다시 떠오른 건 녹번동에 자리 잡은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에서였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그곳. 2007년부터 지금까지, 17년간 은평구에서 자리를 지켜온 동네 아지트 같은 헌책방이다. 퀴퀴한 오래된 책의 냄새, 쌓아놓을 데가 없어 통로까지 책이 침범한 일반적인 헌책방을 떠올린다면 오산이다. 여기에 모인 헌책들은 느릿느릿하고 한가롭다 못해 어떤 품위마저 있어 보이니까.
이제 막 씻은 말간 얼굴로 조만간 조우할 운명 같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책의 표정들. 오래된 책들이 반듯하게 꽂혀 있던 그 옛날 외할아버지의 책장도 이런 느낌이었지. 열한 살짜리 꼬마가 의자를 딛고 올라가 손 닿지 않는 책들과 기어이 눈을 마주쳤던 것처럼, 일단 여기에 오면 출입문 가까이에 있는 첫 번째 책장의 맨 위부터 찬찬히, 꼼꼼히 훑으며 책등에 쓰인 제목들을 읽는다. 대부분 문학과 역사, 철학 분야의 책들이다. 자, 오늘은 여기서 또 어떤 책들을 만나게 될까.

“보이차 한 잔 드릴까요?” 어떤 때는 페도라를, 어떤 때는 헌팅캡을, 볼 때마다 모자를 쓰고 있어서일까. 주인장 윤성근 씨를 보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미친 모자 장수가 떠오른다. 실제 루이스 캐럴이 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책으로 헌책방의 이름 역시 거기에서 출발했다. 어린 시절 강원도 태백의 탄광촌에 살았던 그는 폐광이 되어 막힌 어두컴컴한 갱도를 보면서 두려움과 호기심을 동시에 가졌다고 한다. 앨리스가 토끼 굴에 들어갔다가 펼치는 모험담에 매료된 것도 그때 그 갱도를 보고 느꼈던 경험과 연결된다. 실제 그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각기 다른 판본들뿐 아니라 작가 루이스 캐럴의 모든 것을 모은다. 책방 한쪽에는 그가 수집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영역이 따로 마련되어 있을 정도.


평소에는 서점 안쪽 그만의 공간에서 책을 읽거나 작업을 하지만 손님과 한번 대화가 시작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2주 전 방문한 날도 그랬다. 직관과, 형식, 주체성, 운명, 의식에 관한 이야기를 막 두서없이 나누다가 그의 입에서 흥미로운 책 이름이 툭 튀어나왔다. 1979년 미국의 인지과학자 더글라스 호프스태터가 쓴 책 〈괴델, 에셔, 바흐〉. 도서관에서 먼저 읽어보고 마음에 들면 책을 구매하라는 말도 덧붙였다. 애서가인 그의 책 큐레이션은 촘촘하고 해상도가 높다. 실제 자신이 읽은 책만 책방에 들여놓는다는 원칙을 2007년부터 지금까지 지켜오고 있기도 하다. 집에 돌아와서 〈괴델, 에셔, 바흐〉의 책 정보를 찾아보니 20세기 과학 교양서의 전설이라 불리는 책이다. 세상에는 왜 이렇게 내가 모르는 좋은 책들이 많을까. 아이쿠 이런, 1,000페이지 짜리 벽돌책이잖아. 퓰리처상을 받은 책이라니 어느 정도 읽을 수는 이…있겠지? 여기만 오면 이렇게 독서 리스트가 묵직하게 늘어나니 즐거우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이걸 다 언제 읽나 아득해진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손님에게 차를 내주는 것은 용산역 근처의 헌책방 ‘뿌리서점’에서 배운 매출을 위한 고급 스킬(뿌리서점 사장님은 손님에게 믹스커피를 내어줌)이라고. 그 스킬에 보기 좋게 넘어간 나는 노곤노곤해진 마음으로 애거사 크리스티 전집 9번, 35번을 비롯해 무려 11권의 책을 데리고 왔다. 당분간 그 어떤 책도 들이지 말자, 다짐했지만 나는 죄가 없다. (윤성근 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순전히 그 책들이 나에게 말을 건 것이니까.
책에 담긴 사연을 수집하는 탐정 사무소
언뜻 보면 그저 깔끔하게 정리된 헌책방 같지만 사실 여기는 책에 관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사연들을 수집하고 그 사연에 등장하는 책을 추적하고, 그 과정을 글로 엮어내는 탐정 사무소 역할도 함께 수행하고 있다. 윤성근 씨는 그간 절판되었거나 희귀한 책을 찾아주는 대신 그에 얽힌 사람들의 사연들도 함께 수집해왔다. 〈헌책방 기담 수집가〉와 재작년 12월에 발간한 〈헌책방 기담 수집가: 두 번째 상자〉는 그 사연들을 각색해낸 책이다.
“진실은 소설보다 더 기묘하다. 왜냐하면 소설은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일을 그려야 하지만, 진실은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 마크 트웨인, 〈Following the Equator〉(1897)
〈헌책방 기담 수집가〉 맨 앞에 인용된 마크 트웨인의 문장처럼 실제 윤성근 씨가 수집한 사연들은 로맨스에 코믹에 미스터리까지 그 장르도 다양하다. 29편의 사연들은 어느 것 하나 평범한 것이 없지만 어쩐지 누군가는 꼭 경험했을 것 같은 실재의 이야기들이다. 책이라는 물성의 이 네모난 존재는 어쩌자고 인간의 삶에 이런 깊은 자국들을 남기는 걸까. 〈헌책방 기담 수집가〉를 다 읽고 나니 그가 사랑하는 것이 책보다는 그 책을 매개로 한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확신이 든다. 일본, 중국, 태국 등 세계 곳곳에 이 책의 판권이 팔린 걸 보면 국적과 상관없이 그 이야기들은 힘이 센 듯하다. 지금 쌓여 있는 저 책들을 다 읽고 나면 〈헌책방 기담 수집가: 두 번째 상자〉를 펼쳐 봐야지.

나에게도 헌책방에서 길어 올린 소중한 책들이 있다. 고등학생 시절 경기도 부천에 있는 지하 헌책방에서 산 한강 작가의 첫 소설집 〈여수의 사랑〉. 나에게 영향을 많이 주었던 한 학년 선배가 읽어보라고 추천했던 책이었다. 보라색 직사각형을 중심에 둔 기하학적인 패턴의 표지, 무려 문학과지성사에서 발행한 초판본이다. 이 책의 날개에는 20대 중반의 앳된 한강 작가의 얼굴이 담겨 있다. 1995년 당시 새 책 가격은 6,000원이었는데 헌책방에서 절반 정도의 가격에 팔아 냉큼 구매했던 기억이 난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이 초판본이 수십만 원에 거래된다고 하니 어쩐지 세계적인 작가를 미리 알아본 것 같은 우쭐한 마음이 들고 마는 것이다.(물론 그때도 한강 작가는 이미 유망 작가였지만.) 몇십 년간 내 책장의 가장 후미진 곳에 있던 이 책은 수상 발표가 있던 10월 10일 이후 가장 보기 좋은 자리로 옮겨져 있다. 흠흠.

또 하나는 일본의 고서점(www.kosho.or.jp)을 뒤져서 찾은 〈만선여행안내〉다. 당시 나는 한참 1930년대 잡지에 관한 책을 쓰고 있었는데 1931년에 발행된 한 여행 기사에 이 책 이름이 등장한 것을 보고 책 제목 하나만 단서 삼아 1년간 〈만선여행안내〉를 찾아다녔다. 그러던 중 일본의 고서점 사이트에 이 책 정보가 뜬 것. 나가노현 우에다시에 있는 헌책방에서 이 책을 가지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는 온갖 번역기를 돌리며, 문의한 끝에 겨우겨우 이 책의 실물을 만났다. 〈만선여행안내〉는 만주, 조선, 내륙 철도 시간표와 경성, 부산, 원산 등의 도시 정보를 다루고 있다. 육로로 북한과 중국, 러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갈 수 있었던 시절의 지형 감각이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 1930년도에 발행한 100년 가까이 된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나 혼자만의 시간 여행을 한다. 이 책을 옆에 낀 채 만주로, 중국으로, 러시아로 향했을 사람들, 책 속에 적힌 여행지 소개를 읽으며 동선을 계획했을 사람들을 떠올린다. 서글픈 발걸음도, 설레는 마음도 있었을 테지. 또 어딘가에는 비장한 다짐도 있었을 시절이다. 오래된 책에서만 느낄 수 있는 세로 시간 축의 감각. 100년 가까이 살아남은 이 책은 실리카겔을 넣은 지퍼백 안에 고이 보관 중이다.
나에게 의미 있는 책들을 떠올리다 보니 불현듯 책에 담긴 사연을 수집하고, 어딘가에서 숨 쉬고 있는 그 책들을 추적하는 윤성근 씨의 삶이 부러워진다. 오후 3시에 문을 열고 클래식이나 재즈 음악으로 공간을 채운 뒤 느릿느릿 헌책들을 매만지는 어느 애서가의 하루. 물론 안다. 17년간 같은 결로 이 자리에 있기까지는 크고 작은 풍랑이 쉼 없이 있었으리라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성근 씨는 오늘도 몸을 움직이는 노동의 과정으로 헌책들을 데려오고, 빼꼼히 문을 열고는 소설보다 더 기묘한 사연을 들려줄 누군가를 기다린다. 이따금 나 같은 사람들이 토끼 굴로 쓰윽 미끄러져 내려오면 한참 동안 수다를 떨기도 하면서.
글. 김선미 | 사진. 양경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