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3일 이후, 우리는 모두 조금씩 변했다. 그날 밤 비상계엄 선포 소식을 듣고 여의도와 광화문, 한강진을 포함해 전국 각지에 모인 시민들, 특히 색색의 응원봉을 든 2030 여성들은 광장을 만들었다. 민주주의를 믿었던 여성들은 왜 광장으로 향했고, 어떻게 서로 이어졌을까. 변화를 쟁취하기 위해, 또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광장에 모인 여성들을 만나고자 한다.
‘분노를 노래하소서, 민중이여’라는 <일리아스>의 첫 구절을 변형한 문구에 트위터(현 X)의 많은 이들이 반가워했다. 닉네임 ‘하길’에게 이 깃발은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외친 흔적이자, 서양고전문헌학을 연구하는 교수님과의 덕후스러운 만남을 만들어준 고마운 물건이다. 세대의 교류이자 취향의 교류, 낯선 존재와의 만남. 닉네임 ‘하길’의 경험담은 그 자체로 광장을 의미한다. 하길과 12월 3일 이후의 사회적 경험을 이야기했다.
글. 황소연 | 사진. 주희

광장 자유발언에서도 ‘정체성 소개’가 대세다. 하길을 소개하는 키워드는?
아무래도 ‘오타쿠’를 빼놓을 수 없다. 광장 자유발언에서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작품의 대사를 인용하기도 하고, 응원봉도 덕질하는 대상에 대한 상징이지 않나(그는 ‘윤하’의 응원봉을 챙겨 광장에 갔다.) 최근엔 스스로 ‘꿘(운동권)’이라는 생각도 한다.(웃음) 이런저런 ‘진보적 활동’을 오래 하긴 해서. 시작은 세월호 참사였다. 내가 96년생인데 2014년 당시 재수생이었고, 참사 희생자와 생존자들이 나와 나이 차가 크지 않았다. 국가의 무책임함을 느꼈다. 대학에 입학한 뒤 학과의 진보적 자치 조직에 가입해 활동을 시작했다.
트위터 닉네임 ‘하길’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뮤지컬 <세종 1446> 중 제일 좋아하는 곡의 가사에 ‘하늘길’이라는 단어가 있다. 거기서 따온 닉네임이다. 우리가 소망을 말할 때 ‘~하길’ 같은 말도 하고. 중의적 의미다.
지난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당시를 회상해보자.
음악 들으면서 씻는 걸 좋아해서 스마트폰을 욕실에 갖고 들어가는 편이다. 한창 씻는데 진동이 계속 울리더라. 사실 이런 소식이 빠른 게 또 트위터이지 않나. ‘계엄’이 보이고, 타임라인은 온통 ‘속보’고…. 당황한 이들이 날것의 반응을 보였다. 욕도 많았고. 움직일 수가 없었는데 공포 반응이었던 것 같다.
겨우 씻고 나오니 국회 폐쇄에 대한 속보가 막 들리기 시작했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내가 가입한 진보당원 텔레그램에서 ‘전 당원 국회로 모여달라’는 요청이 왔다.
1인 가구인가?
맞다. 그래서 바로 뛰어나갈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가는 동안엔 차마 부모님께 말을 못 했고, 몇몇 친구들에게 텔레그램으로 ‘나 지금 국회 앞 가니까 혹시 무슨 일 있으면 이러저러하게 조치해달라.’고 전했다.
국회 도착 후엔 어땠나.
국회의사당 역 6번 출구에서 만나자는 청년진보당의 공지가 있었다. 내가 화곡에 살다 보니, 국회와 그렇게 멀진 않다. 국회 앞에 도착하니 11시 반 조금 전이었고. 이미 시민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계엄사령관이 포고령을 발동하고 그것이 보도되던 시간이다.
그렇다. 국회가 폐쇄되려고 하고, 국회의원들이 담을 넘고 있었다. 사람들이 “계엄 철폐, 독재 타도”를 외쳤다. 역사책에 실린 흑백사진 속 손으로 직접 쓴 현수막의 문구 아닌가. 7~80년대에 계엄을 직접 겪었을 법한 세대도 많이 보였다.
그런 위기 상황에서는 혼자 있으면 위험하지 않나. 인파가 북적여서 깃발을 올리지 않으면 당원들이 서로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근데 청년진보당 깃발을 걸면 너무 노골적일까 봐…. 나중에 당기를 올리기로 하고, 일단 목도리를 깃발 대용으로 매달아 올렸다. 누구 것인진 모르겠다. 그리고 텔레그램 방에 ‘빨간 목도리를 찾아와 달라’고 아직 도착 전인 당원들에게 전했다. 그때 한 중년 남성이 우리에게 와서 “이거 당장 내려라”라고 말했다. “너희들이 1번 표적이 되는데, 죽으려고 작정했어?”라고 화를 내더라. 처음에는 왜 화를 내지,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그분도 두려웠던 거다. 우리를 걱정해서 그러셨던 거다.
경험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반응이다.
맞다. 진심으로 화를 냈다. 우리는 우리 방식대로 깃발을 올린 거지만, 기성세대가 봤을 때는 되게 위험한 행동이었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때 머리 위로 헬기가 지나갔다.
몇 시쯤이었나?
트윗을 검색하면 나올 거다. (잠시 뒤) 11시 48분에 헬기가 지나가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트위터에 올렸다.

트윗이 짧고 간결하다. 매우 급했던 것 같다.
국회 앞에 오지 못한 사람들도 많지 않나. 지금 어떤 상황인지를 알려야 할 것 같았다. ‘군인이 국회에 진입하려고 한다’, ‘장갑차가 오고 있다’고 상황을 쭉 써서 올렸다. 그때, 감히 이런 비유를 해도 되나 싶긴 한데…. 5·18 민주화운동 당시 가두방송을 한 시민이 떠올랐다. 그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덜 위험한 상황일 수 있지만 많은 이들에게 주목해 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활동의 역사를 되돌아볼 때 중요한 기점은?
한의사로서 한의계 진료 모임인 ‘길벗’에서 활동하고 있다. 길벗에선 한의대 학생들과 ‘의활(의료 활동)’을 간다. 해마다 지역도, 공부하는 의제도 달라진다. 2016년엔 백남기 농민의 고향인 전남 보성에 갔다.
우리의 의제 중 빼놓을 수 없는 게 노동자 건강권이다. 일하면서 만나는 환자들도 대부분 노동자고, 아픈 이유도 일 때문이다. 산재도 흔하고. 길벗의 모토는 이렇다. 진료실에서 환자를 잘 치료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사실 사회를 개선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계속 병들고 아플 수밖에 없다는 것. 그래서 진정한 한의사라면 진료를 넘어서 사회구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의활뿐 아니라 요양보호사, 청소노동자들과 함께 일일 직업 체험을 하면서 ‘이래서 노동자들이 아플 수밖에 없구나.’ 깨달았다.
‘분노를 노래하소서, 민중이여!’ 깃발이 시민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다.
원본은 ‘분노를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이라는 <일리아스>의 첫 구절이다. ‘여신이여’를 ‘민중이여’로 바꾼 건, 도안 제작을 맡은 트친의 아이디어다.
그 아래의 ‘아카이아 노동조합 미르미돈지회’…. 설명하려니 부끄러운데(웃음), <일리아스>를 펼치면 독자는 뜬금없이 전쟁 중간, ‘아킬레우스’와 그리스군의 총사령관인 ‘아가멤논’의 말다툼을 접한다. 아가멤논은 전리품으로 받은 여인을 돌려줘야 하는 상황이다. 여인의 아버지가 하필 신의 사제여서다. 신은 모욕을 당했다고 느껴, 그리스군에게 역병을 퍼뜨린다. 죽어가는 그리스군을 보고 아킬레우스는 “이대로는 안 된다.”고 아가멤논에게 항의하는데, 아가멤논은 “그럼 여인을 돌려주는 대신 네 여인을 가져가겠다.”고 선언한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여성을 전리품 취급한 것이 후진적이다.(웃음)
아킬레우스는 또 본인의 여인을 뺏어가니 화가 나서, 전투를 안 하겠다고 선언한다. 나는 이걸 보고 ‘파업이다!’ 싶었다. 사측의 부당한 횡포에 화가 난 노조 지회장이 파업을 선언하는, 농담스러운 비유가 깃발에 반영됐다. 아카이아는 아킬레우스가 속한 민족, 미르미돈은 아킬레우스의 부족 이름이다.

깃발을 보고 먼저 인사를 하러 오셨다는 서양고전문헌학 교수님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정말 영화 같다. 교수님과의 덕후스러운 대화, 이 이야기를 트위터에 썼을 때 사람들의 반응까지 너무 즐겁다. 답답한 시국에 저한테도 굉장히 에너지가 많이 되어주고 있고 다른 분들께도 그런 것 같다.
12월 3일 이전과 이후, 광장의 다른 점은?
어렴풋하지만 박근혜 탄핵 집회 때는 탄핵 외의 이야기를 하면 ‘왜 그런 이야기를 하냐.’고 배척하는 분위기가 있던 것 같다. 근데 지금은 무대에 올라온 사람들이 자기의 정체성을 처음에 호명하고, 탄핵과 함께 본인이 관심 가지는 이슈를 함께 말한다. 내가 나로서 오롯이 존재하고, 이런 정체성을 가진 나도 인간으로서 살아가고 싶다는 자기표현, 존중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 훨씬 더 포용적이고 따스한 광장이 된 것 같다.

일상에서 소개하고 싶은 특별한 루틴이 있다면.
특징적인 근무가 하나가 있다면 원내 진료 4일을 하고 하루는 방문 진료를 한다. ‘한의 방문 진료’라고 보건복지부 시범 사업인데, 거동이 불편하신 환자분들이 신청하면 일종의 왕진처럼 방문하는 식이다.
과거와 현재, 나를 변화하게 한 사건은?
세월호 참사, 두 번째는 이태원 참사. 부끄러운 경험인데, 참사 소식이 트위터에 올라올 때 2차 가해성 발언을 했었다. 제 안의 꼰대가 ‘사람 많을 걸 아는데 간단 말이야?’라고 말하더라. 나는 여의도 불꽃놀이 같은 행사를 가본 적이 없다. 사람 구경밖에 못 한다고 생각해서. 다른 사람에게 “왜 가냐”라고 말하진 않지만. 참사로부터 하루가 지나고 경찰력 등 행정의 공백이 점차 드러나면서 ‘내가 말을 진짜 잘못했구나.’ 깨닫게 된 거다. 나를 딱 치고 지나갔던 말이 ‘놀러 가서 죽는 게 당연한 게 아니지 않냐.’였다. 이태원 참사 초반에 그런 말을 했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심했다. 많이 반성했다.
12월 3일 이후 개인의 일상에서 변화한 것은?
12월 11일 비상행동이 출범하기 전까지는 어딘가 소속되지 않은 개인이라면 집회 참석에 필요한 정보를 알기 어려웠다. 나는 진보당 소속이라 빠른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그 정보를 트윗에 올리는 역할을 했다. 12월 7일엔 집회 장소도 광화문이었다가, 전날 여의도로 변경되고 했었는데 트위터에서 아마 가장 빨리 정보를 날랐을 거다.
광장에서, 또 평소에 ‘인류애’를 느끼나.
사실 사람을 그렇게 썩 좋아하지는 않는데,(웃음) 요즘은 깃발을 보고 먼저 인사 오시는 분들에게 반가움과 감사함을 느낀다. 또 무대에서 발언자들이 자신의 소수자성을 밝힐 때 환호하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다. 진료실에서 환자들을 매일 보고, 저도 사실 ‘쉽지 않은 환자다’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웃음) 대면하면서 한층 누그러지는 게 있다. 직접 이야기하면 마냥 미워할 수 없다.
<일리아스>에서 광장에 나온 시민들에게 공유하고 싶은 구절이 있다면?
“제발 신들을 두려워하시구려, 아킬레우스, 부디 그대의 아버지를 떠올리며 나도 가엾게 여겨주오. 아니, 더한 연민이라도 받아 마땅한 사람이 바로 나라오. 이 땅 위에 사는 어떤 사람도 감히 하지 못할 일을, 내 새끼들을 죽인 사람의 입가에 손을 뻗어가며 내 무릅썼으니.”
“이 둘이 기억을 떠올리자, 그이는 사람을 잡아 죽이는 헥토르를 두고 쉴 새 없이 통곡하며 아킬레우스의 발치에서 뒹굴었고, 아킬레우스는 때로는 제 아버지를 두고, 그러다가 또 파트로클로스를 두고 통곡하였으니, 이들의 흐느낌이 집 안 가득 솟구쳐 올랐다.”
분노가 연민과 슬픔으로 변하는 장면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파트로클로스가 트로이의 전사 헥토르의 손에 죽자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시체를 마차에 묶어 끌고 다니는데, 헥토르의 아버지가 아킬레우스에게 찾아와 손에 입을 맞춘다. 서로 굉장한 원수지만 소중한 사람을 상실했다는 인간 본연의 슬픔 앞에서 하나 되어서 우는 장면이 연민과 사랑의 감정을 말해준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