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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34(커버 B) 에세이

[뉴 뮤직, 뉴 라이프] 광장에선 노이즈캔슬링이 되지 않는다

2025.04.22

어플로 모르는 음악을 찾고, SNS에서 타인이 추천해준 음악을 캡처했다 실타래처럼 풀어내며 듣는 게 취미인 에디터가, 신곡은 아니지만 듣기 좋고 재미있는 음악을 추천한다. 새롭지 않지만 누군가에겐 새로울 음악으로, 조금은 일상을 즐겁게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글. 황소연 | 앨범 아트워크. 벅스뮤직‧스포티파이

3월 21일 현재, 매일 저녁 광장의 소식을 전하는 뉴스를 본다. 온라인 뉴스로 핵심을 빠르게 훑는 게 대부분이었던 지난해 12월 3일 전에 비하면 영상 뉴스를 보는 시간이 현저하게 늘었다.(그렇다고 온라인 뉴스를 끊지도(?) 못했다) 앰프에서 흘러나오는 자유발언과 사람들의 함성, 구호가 기자의 리포팅을 뚫고 들린다. 다소 복잡하다. 광장은 그렇게 좀 정신없고, 가끔은 어수선하다.

광장에선 다양한 소리가 엉키고 풀리기를 반복한다. 긴 시간 착석해 있으면서 무대 위 진행과 자유발언에 끝까지 집중하기는 쉽지 않다. 일행과 수다도 떨고, 당이 떨어지면 뭔가를 먹기도 한다. 주변에선 간간이 통화 소리도 들려온다. LTE가 잘 터지지 않을 땐, 누군가가 가져온 라디오에 소식을 의지하기도 했다. 행진 시 소리의 양상은 또 다르다. 한목소리로 구호를 외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근처에서 새로운 외침이 시작되어 마치 돌림노래를 부르는 모양이 될 때가 많다. 그러다 대오를 이끄는 트럭과 멀어지면, 트럭 앰프에서 나오는 구호와 내 주변 구호가 달라지기도 한다. 그럴 땐 큰 목소리로 구호를 ‘교통정리’ 해주는 이들을 따르곤 한다.(내향인이 하기는 쉽지 않다) 건물과 버스 안에서, 인도에서 응원해주는 시민들에겐 환호로 응답한다. 계엄 이후 방문한 광장이 서울에 한정되어 다른 공간은 어떤지도 궁금하다.

이번 광장의 상징 중 하나가 된 ‘다시 만난 세계’ 등 케이팝을 부를 때도 그렇다. 내 귀에 들리는 건 일치한 목소리로 내지르는 맑고 깨끗한 음정이 아니라, 구호를 외치느라 쉰 목소리, 음정이나 가사를 잘 몰라서 작아지는 목소리, 틀린 가사를 크게 외치거나 맞는 가사를 독백하듯 조용히 읊조리는 목소리들이다. 그 목소리가 한데 모여서 ‘떼창’이 된다.

습관적 집회 참석자의 케이팝

어느 날, 경복궁 동십자각으로부터 안국역 방향으로 행진하는 트럭 앰프에서 ‘위플래시’, ‘그대에게’, ‘질풍가도’ 등이 재생됐다. 이번 광장에서는 시민들을 이끄는 트럭 위 진행자도 많은 응원을 받았다. 진행자들은 선곡과 코멘트의 완급 조절을 하면서 호응을 유도하고, 시민들이 따라 할 수 있도록 구호를 선창한다. 이날도 진행자는 시민들의 흥을 돋웠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내란 세력을 채찍질해서 쫓아내야 한다는 얘기로 시작됐다. 그리고 이어지는 회심의 한마디. “여러분, 채찍질이 영어로 뭔지 아십니까? 위플래쉬입니다!”

ⓒ 에스파 'whiplash' 뮤직비디오 캡쳐

지젤에게 모든 시선이 집중되는 위플래쉬의 ‘그 부분’에 익숙한 1020 중엔, 여러 ‘올드 케이팝’을 광장에서 처음 들은 이들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되던 날의 진행자도 “젊은 분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고 박미경의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소개했다. 물론 노래를 처음 알았든 아니든 그날 국회 앞 축제 분위기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에스파의 ‘쇠맛’ 박자에 익숙한 젊은이들이 우렁차게 ‘탄~핵 탄핵 윤석열 탄핵’을 외칠 때, 그 ‘무드’를 열심히 귀담아들었을 기성세대의 마음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광장에선 노이즈캔슬링이 되지 않는다

2024년 12월 21일, 유튜브를 켜놓고 잤다. 볼륨을 한 칸이라도 높이지 않으면 조회 수 등에 카운트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날 알았다. 동짓날 밤과 추위로 새파랬던 다음 날까지, 유튜브 채널 <전농TV>는 남태령에 모인 농민들과 2030 여성들을 중심으로 한 시민들의 모습을 중계했다. ‘Tears’와 ‘촛불하나’를 비롯한 가요와 자유발언이 앰프를 타고, 유튜브와 SNS를 타고 시민들에게 닿았다.

그러고 보니, 한동안 집회에 가지 못하면서 구글폼 형태의 서명운동에 참여했는데 거기에도 자유발언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 사람이나 집단이 놓인 부당한 법적, 사회적 처지를 알리고, 그 원인을 비판하며 개선하기 위함이 목적인 운동이다. 나는 그 서명운동을 볼 때마다 취지에 공감했기에 거의 서명을 해 왔다. 주로 트위터(현 X)에서, 인스타그램 스토리에서 링크를 접한다. 먼저 단체 혹은 이름 입력. 개인 자격 서명이기에 이름만 넣는다. 이후 시, 군, 구, 동까지의 주소 및 연락처를 넣고,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에 동의한다.

구글폼의 마지막 순서는 개인정보 동의이기도 하고, 대부분은 재판부 등에 올바른 판단을 촉구하거나 원인을 만든 기관 등을 규탄하는 ‘한마디’, 일종의 ‘자유발언’이다. 나에겐 지금 광장의 자유발언이 ‘비고’, ‘기타’, ‘그 외 하고 싶은 말’에 적혔던, 정확히 말하면 적기 망설여졌던 이야기로 느껴졌다. MBTI부터 성 정체성·성적지향, 소속, 경력, 나이, 신체 조건, 병력, 학력, 고용 형태와 거기서 출발한 이야기들, 평소라면 꺼내기 어려웠을 말들이 광장에서 터져 나온다. 자기 자신에 대해, 또 자신이 사랑하는 무언가에 대해 말한다. 그 자리에 서기까지의 고민도 털어놓는다. 나도 당신과 같은 사람이고 당신 주변에서 살아가고 있다, 인지해달라는 요구다. 동시에 그것은 광장에 있는 사람들을 신뢰한다는 표시이기도 하다. 그들은, 또 그 얘기를 들은 시민들은 ‘말벌 동지’로 뭉쳐 광장으로, 투쟁 현장으로 향한다. 매일 ‘소음’을 만든다. 광장은 단언컨대 노이즈캔슬링이 될 수 없는 시공간이다.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그대에게’ 같은 곡은 최신 케이팝과 달리 일부러 찾지 않으면 길이나 카페에서 들릴 일이 적다.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나는 그대 숨결을 느낄 수 있어요.” 가사에 녹아 있는 완벽한 저항시 서사가 SNS가 당연한 세대와 그렇지 않은 기성세대를 연결한다.

가끔 ‘먹고살 만해서’ 집회에 간다는 말을 듣는다. 여유가 있어서 광장에 간다고도 한다. 집회에 한 시간, 아니 단 3분만 있어도 그 정반대라는 걸 알 수 있다. 먹고사는 게 위협받아서, 안전하지 않다고 느껴서, 자유가 갈급해서. 집에 있으려니 뭐라도 해야 할 것 같고, 괜히 미안해서 광장을 찾은 그 마음이 이심전심이다.

광장을 마무리하는 곡으로 ‘다시 만난 세계’를, ‘질풍가도’와 ‘그대에게’를 듣는 이들에게 그 멜로디는 어떤 의미일까. 핫플이나 카페, 성수동 등에서 듣기 어려울 곡. 그래서 어딘가에서 인트로가 들려오면 광장의 기억을 저절로 소환할 노래. 누군가는 술 마시고 들른 코인노래방에서 ‘그대에게’ 번호를 찾고, 햇살 가득한 봄날 ‘다만세’를 흥얼거리게 될까. 일상의 자유와 생계를 걱정하면서도, 추운 겨울 광장의 가요를 추억으로 생각하게 될 날이 올까. 똑같은 표정으로는 만나지 못한다 해도, 훗날 우리는 이 곡들을 멋진 노이즈가 섞인 버전으로 기억한 채 살아갈 것이다.

[소개된 앨범]

소녀시대 <다시 만난 세계> (2007.08.03.)

에스파 (2024.10.21.)

무한궤도 <88 MBC 대학가요제> (1988.12.24.)

유정석 (2005.07.28.)

소찬휘 (2000.03.23.)

god (2000.11.03.)

박미경 <박미경> (199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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